다섯 손가락
아버지는 늘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셨다.
늘 구두를 신고 다니셨기 때문에
현관에는 언제나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따금 용돈이 필요할 때면
나는 굳이 닦을 필요도 없는 구두를 꺼내
광을 냈다.
그러면 아버지는 말없이 웃으시며
용돈을 내어주셨다.
겨울이면
가죽장갑에 코트를 걸치고
목에는 머플러를 둘렀다.
계절이 바뀌어도
아버지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 년 내내
흐트러짐이 없어서
은행원이라기보다는
어쩐지
뉴스를 전하러 나오는
아나운서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말수는 적었고
언제나 절제되어 있었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농담을 하셨다.
크게 웃기려는 농담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늘 그 말이 재미있었다.
표현은 많지 않으셨지만
아버지의 품은 언제나 따뜻했고,
아버지의 말에는
묘하게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나와 동생은
주방에서 현관까지 달려가
서로 먼저라며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두 팔에 하나씩,
우리는 늘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의 아버지는
늘 보아오던 정제된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다음 날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 앞에 서서
무언가를 설명하며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펼쳐 보였다.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나.
아마 예상수익이 대단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신 거겠거니
그때 나는 알았다.
아버지가
은행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홉 살 아이가
어떻게 그런 걸 알아챘을까.
내가 특별히
눈치가 빠른 아이도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말했다.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는 꽤 살 만해졌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늘었고,
앞으로 더 경제가 발전해
선진국이 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애견 인구는
더 많아질 거라고.
그 말들은
설명이라기보다는
확신에 가까웠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열기가 서려 있었다.
그날의 아버지는
단정한 양복 속에
처음으로
다른 세계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