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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커피 장사

by 불꽃

제가 서울역 광장에 가기 전부터 서울역 광장에는 김필화 전도사님이 사역을 벌써 몇 년째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사역에 처음 동참할 때도 노숙자들이 상당히 거칠었는데 초창기에는 너무도 거칠고 삭막해서 사역하기가 참으로 힘들었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고, 보면대를 넘어뜨려서 반주기가 깨지게도 했습니다. 제 반주기용 노트북도 넘어뜨려서 한쪽 귀퉁이가 깨졌습니다. 욕먹고, 멱살도 잡히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할렐루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 축복이 있을지어다!’ (마 5; 10)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 즐거워할 일은 아니지만, 저의 흰머리는 서울역에서만은 힘을 발휘합니다. 술 먹고 와서 시비 걸고 행패 부리는 걸 보고 있다가 조금 도가 지나치다 심하다 싶으면, 붙들고 약간 강한 어조로 세게 말합니다. ‘어이! 그렇게 막말해도 되는 거야? 도대체 몇 살이야?’ 그러면 대부분은 내 얼굴 한 번 쳐다보고 흰머리 한 번 쳐다보고 수그러듭니다. 그럴 때마다 흰머리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저는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어도 염색을 안 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염색하는 번거로움이었습니다. 작은형은 18살부터 새치 때문에 염색을 했습니다. 가끔 형님을 도와주기도 했는데, 그 일이 보통이 아닙니다. 지금은 쉽게 염색할 수 있지만, 전에는 염색하기에 앞서 약 두 가지를 잘 섞어야 합니다. 다른 피부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으니 비닐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조심조심해야 합니다. 다 쓴 칫솔을 재활용해서 머릿결을 따라 잘 빗어 내려야 합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겨울에는 물을 데워야 합니다. 정성도 그런 정성이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노안이 오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리면 자주 염색하면 노안이 쉽게 온다더군요. 글을 읽고 써야 하는 입장에서 눈은 중요하니까요. 노안도 흰머리도 주름도 오는 세월 막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늦춰보려는 노력의 하나로 염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흰머리를 앞세운 장유유서는 그 힘이 대단합니다. 흰머리 만세!

‘너희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설지어다(레 19:32)

마침 그 무렵 김필화 전도사님이 노숙인들에게 요구르트라도 하나씩 주자고 하셨습니다. 빈손으로 와서 찬양만 들려줄 것이 아니라 먹는 즐거움도 같이 주자는 것이죠. 그들을 긍휼히 여기자는 말씀입니다.

처음엔 요구르트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커피와 초코파이로 변했습니다. 곤충이 변태 한다는 것은 학교 시험시간에 봤습니다만, 요구르트가 커피와 초코파이로 변하는 것을 못 들어봤지만 어쨌든 변했습니다.

교회에서 큰 전기온수기통에 물을 데우고 커피를 타서 가져갔습니다. 겨울에는 식지 않게 하려고 옷으로 물통을 둘러싸서 가져갔죠. 화단 위에 올려놓으면 어린 아기가 오리털 옷을 입고 앉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걸 보고 ‘나보다 더 따듯하게 입었네’ 하며 부러워하는 노숙자도 있지요.

겨울에 서울역 광장의 찬바람은 맹렬합니다. 실내에 있다가 밖에 나와서 잠깐 부딪히는 찬바람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루종일 광장에서 서성이는 노숙자에겐 뼛속으로 슬금슬금 들어와 몸속에 자리를 잡는 악성 종기와 같습니다. 이 불청객을 쫓아내는 일은 뜨거운 커피가 제일입니다. 두 컵 세 컵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여름에는 냉커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 일은 적잖은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아침에 물을 데우고 커피를 타서 오전 내내 식힙니다. 냉장고에서 미리 얼린 PT 생수병을 커피가 들어있는 온수기 통에 넣어서 가져가면 알맞게 찬 커피가 됩니다. 물론 물통에 옷을 입히는 것은 기본이지요, 겨울철과 반대로 따듯해지면 안 되니까요.

이들 중에는 항상 술에 젖어서 막무가내인 사람도 있지만, 커피 한 잔에도 굉장히 고마워해서 봉사자들이 민망할 정도로 과하게 칭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커피와 초코파이를 떠불로 가져다주기도 하지요.

서울역 광장에서도 기부 앤 테이크는 살아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노숙자들과 주고받는 것에는 작은 울림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런 정성이 통했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해 주셔서, 3년쯤 하니까 그들이 바뀌더라고요, 같이 찬양도 하고 시비 거는 사람들은 그들이 먼저 막아 주고요.

어떤 날은 강한 성령의 임재로 많은 사람이 어울렸습니다. 9시에 끝내는 사역이 춤추며 찬양하는 그들의 요청으로 10시를 넘겼습니다. 버거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 괴로움을 잊고 웃고 춤추는 때는 저희도 기쁩니다.

지금은 사이가 아주 좋은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땅바닥에 살아도 하늘의 기쁨을 맛본다면 이보다 더한 은총이 있을까요?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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