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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발 닦아주기

by 불꽃

성경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밤에 저녁 먹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 발을 씻은 것 같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 일을 하신 후에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도 사이에서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예식을 한다. 고대 중동의 사막에 가까운 기후와 풍토는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에게 발을 씻을 물을 주었다. 종이나 하인이 발을 씻겼다. 종이나 하인이 없으면 그 집 안주인이 이 일을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섬긴다는 의미가 강하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복종한다는 의미가 깃들여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남의 발을 씻는 행위가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풍습에서 발을 씻어주는 것에 대해서 별로 큰 의미를 주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조선 시대 유교적 의식에서 남에게 속살 보여주는 행동은 상당히 꺼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목욕을 자주 하면 몸의 기가 빠져나간다고 할 정도였다.


서울역 광장에는 노숙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분이 한 분 계시다. 중년의 작은 몸집을 가진 이 여자분은 물 담은 분무기와 비누 수건을 들고 노숙자 앞에 앉아서 발을 씻어주신다. 그냥 시늉만 내는 것 하고는 사뭇 다르다. 꼼꼼히 구석구석 정성 다해서 씻는다. 일면식도 없는 노숙인들의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어려운 일이고 존경받을 일이다.

내가 보는 것만으로도 몇 년째 같은 모습으로 섬기고 있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에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서 성함을 여쭤봤더니 그저 웃기만 하신다. 노숙자는 잘 씻지 않는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내게 노숙자의 발을 씻긴다는 것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부모님의 발을 씻어 드려 본 적이 있나 생각해 보니 없다. 부모님의 손을 씻어드린 예도 없다. 아내의 발을 씻어본 적도 없다. 교회에서 행사나 예식으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본 것 외에는 아무리 기억해 봐도 없다.



아주 오래전 군대 시절 아픈 기억이 생각난다.

나는 일반병사로 징집되었지만, 병사가 아닌 하급 지휘관이 되는 일반 하사로 차출되었다. 일반 하사는 징집된 병사처럼 의무복무를 하되 계급은 하사로 군 복무하는 제도였다. 모자라는 하급 지휘관을 확보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24주간의 부사관 후보생 훈련을 원주에서 받았다. 불침번을 하던 날이었다. 경계근무 순찰을 마치고 온 구대장(훈련병들을 교육 지도하는 부사관)이 불렀다. 가서 세숫대야에 물 떠 오라는 지시였다. 물을 떠다 주니 닦으라고 그의 발을 내게 내밀었다.

그날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부당한 처사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고, 형제들로부터도 손찌검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던 나였다. 배우지도 못한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울부짖었다.

“캑캑, 콜록콜록.”

“이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캑캑”

하지만 나는 그를 죽이지 못하고 제대했다.


서울역에 봉사하는 사람 중에 온누리교회 청년들이 격주로 와서 찬양으로 봉사했다. 2~30대의 젊은 이들이었다. 젊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젊음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어느 날 이들이 물통과 세숫대야를 들고 왔다. 세족식으로 섬기겠다는 것이다. ‘설마 너희들이?’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그들을 주시했다.

내 의심스러운 눈초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주섬주섬 의자를 놓고 대야를 늘어놓고 물을 부었다.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한분 한분 노숙자들의 의견을 물어보면서 원하는 분들을 모셔다가 발을 씻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들은 소위 MZ 세대라고 하는 청년들이 아닌가? 집에서 부모님의 발 씻기기는커녕 발 씻을 물도 안 떠다 줄 청년들이 아닌가?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겠다고 하는 순수한 마음,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사람들을 섬기려는 마음을 보며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행사도 아니었다. 몇 달 지나 잊을 만하면 또 노숙자들의 발을 씻어주었다.

여자분이 노숙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을 볼 때도 가슴 찡한 감동이 있었지만 젊은 MZ세대의 행동을 보며 이들의 순수함이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나약하고 제멋대로 사는 젊은이들로 알았는데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용돈을 털어 사 온 캔 음료수를 한 개씩 나누어주며 같이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예쁘게 보였다.




나이가 든 지금, 젊은 시절과 같은 상황이 되면 어떻게 행동할까? 자존심에 상처 입은 모습으로 불같이 화를 낼까? 아니면 기꺼이 웃으며 씻어 줄 수 있을까? 웃으며 씻어줄 자신이 없다. 다만, 엄마 품에 싸여있던 여린 아들을 강력한 적과 맞설 수 있는 사나이로 훈련하고 있는 그 노고를 고마워해 볼 수 있으리라. 감사한 마음으로 바꾸면 발도 씻어줄 수 있지 않을까? 죽이겠다는 분노는 녹일 수 있을 게다.


집에 가면 나를 위해 오늘도 도시의 온갖 오물을 밟고 다닌 아내의 발을 씻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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