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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돌려받는다는 또 다른 이름

by 불꽃

화정역 앞 광장은 늘 활기가 넘칩니다.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 들어가는 사람, 주변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호객하는 소리. 먼 곳에서 온 시외버스의 소음. 광장 벤치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바라다보는 엄마.

모금 찬양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일입니다. 모금의 목적이 아픈 어린아이를 돕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잘 뛰어노는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눈이 반달 형으로 변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나 할머니는 아이에게 돈을 쥐여 주면서 모금하게 합니다. 모금하는 아이들의 각양각색 모습과 표정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대부분 아이는 팔딱팔딱 뛰어와서 모금하고 갑니다. 쭈뼛쭈뼛 와서 모금하고 쏜살같이 엄마 치마폭으로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 번은 네 살쯤 되는 머리를 두 갈래로 묶은 여자아이가 엄마에게서 돈을 받아 들고 오고 있었습니다. 잘 오다가 10m 앞부터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 올수록 더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찬양을 하면서 이 아이가 어떻게 할 것인지 곁눈으로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가까이 오면서 어찌해야 할 줄 모르는 듯 뒤쪽 먼 벤치에 앉아 있는 엄마를 자꾸자꾸 쳐다봅니다. 엄마는 어서 앞으로 가라고 손짓합니다. 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저를 향해서 조금씩 조금씩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두 여학생이 모금하고 있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모금 통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통! 띵! 통! 하고 작은 북 치는 소리를 냅니다. 모금통과 여학생들의 꽃 마음이 공명하는 소리입니다. 반주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또 다른 예쁜 소리입니다.

아이 인내가 끝에 다다를 것 같아서 찬양을 멈추고 손을 내밀었죠. 환하게, 그보다 환할 수 없게 웃으면서 제 손에 모금 돈을 얹어 주고 쏜살같이 엄마 쪽으로 달려갑니다. 두 팔 벌린 엄마의 자랑스러운 웃음이 뛰어오는 아이를 향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저를 바라보는 아이 웃음이 엄마 웃음 위에 얹히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소아암환자돕기’ 모금 활동에 보람과 기쁨을 더더욱 느낍니다.


한 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자들을 데리고 광장에 나오셨습니다. 쌍둥이 같기도 하고 연년생 같기도 한 형제였습니다. 손자들의 재롱에 흡족해하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가 귀밑에 걸려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저희 모금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아이들 손에 돈을 들려서 모금함 쪽으로 왔습니다. 먼저 할머니와 같이 온 손자가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모금 통에 모금하고 갔습니다.

이번에 할아버지와 같이 온 손자 차례입니다. 모금 통 위에 손이 닿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아서 올렸습니다. 그런데 손자가 돈을 안 넣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넣으라고 하셔도 안 넣고 할아버지만 쳐다봅니다. 팔이 아파진 할아버지가 아이 손에서 돈을 빼앗다시피 해서 모금 통에 넣었습니다.

“왕!!!”

돈을 손에서 놓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얼른 아이를 품에 안고 벤치 쪽으로 갔는데 아이가 다시 모금 통으로 와서 모금 통에 매달려 웁니다. 할아버지가 달려와서 아이를 안고 갑니다.

저도 괜히 미안하고 계면쩍어서 눈길을 돌리고 찬양에만 열중하는 척했습니다.


저는 고향이 충청도 시골이었습니다. 학업과 군대와 기능공으로 해외 생활하는 것을 빼고 늘 고향에서 살았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고향 사람들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사업 한답시고 고향 사람들에게 못 할 짓도 많이 했습니다. 그랬어도 그분들은 늘 저를 따뜻하게 잘 대해주셨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때로는 쌀이 떨어져 난감할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누구한테 말도 못 했는데, 한밤이 지나면 마루에 쌀이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쌀을 가져오신 분에게 감사했습니다. 사정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 거지요. 때맞춰 일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한 번은 친하게 지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쌀을 이고 오셨습니다.

“웬 쌀을 가지고 오셨어요?”

“아무 소리 말고 받게. 우리 집이 어려웠을 때 자네 어머니에게서 받았던 걸 돌려주는 것뿐이라네”

저 아이도 알게 되겠지요.


왜 할아버지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지. 할아버지의 손길을 따라 자신의 손을 거쳐서 모금된 돈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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