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키운 아들

아들의 특별한 초대

큰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이야기이다,

대학 입시가 끝나갈 무렵 아들로부터 갑작스러운 초대를 받았다.


장소와 음식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양식 레스토랑이었던 것 같다.

초대받은 자리에는 아들의 친구 두 명과 중년의 여성 두 명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들끼리는 진지하게 부모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선언을 하기 위해 만든 특별한 자리였던 것이다.


“어머님들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음악을 하고 싶고, 재백이는 배우를 하고 싶고 승윤이는 모델을 하고 싶어 합니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신 서울로 가서 아티스트를 찾아 공부를 하며 일도 하겠습니다.”

아들은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은 어디서 읽었는지 당돌하게도 “20살 성인이 되면 금전적, 육체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제가 알바로 200만 원을 모아 두었으니, 독립 자금으로 300만 원만 보태 주시면 친구들과 함께 서울 생활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들의 친구들도 각자의 꿈을 밝히며 각자의 다짐을 이야기했다.


엄마들은 기도 안 차고 웃기기도 했지만 아이들만큼은 진지했다.

배우를 하겠다는 아이를 둔 엄마는 이 초대가 영 내키지 않는지 반대를 했고 또 모델을 하고 싶은 아이의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사실 재미도 있고 귀엽기도 했어 아이 편을 들어주었으며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고민 끝에 아들의 독립을 허락하기로 했다. 사실 아들의 성격상 허락을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지만, 세상에 부딪혀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힘들면 돌아온다는 단서를 붙이고 결정한 일이었다.

지치고 힘들면 1년쯤 고생하다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아들은 쿨하게 서울행을 선택해 떠났다.


아들을 서울로 보내고 난 후, 내 마음은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전화가 닿지 않을 때면 불안에 떨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고, 아들의 SNS를 뒤져 근황을 확인하기도 했다.


가끔 집으로 내려온 아들의 초췌해져 가는 모습에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살이 찌고, 담배 냄새가 배어 있는 냄새나는 옷과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낡아버린 지저분한 신발은 힘든 서울 생활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듯했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보내지 말걸 어린애가 하는 말에 의미를 두고 말리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어느 날은 아들의 가방을 몰래 뒤지다 약봉지를 발견했다. 몇 주 분량의 약뭉치가 들어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인터넷으로 약 이름을 검색하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본인이 아니면 알려줄 수 없다는 차가운 응대에 내가 보호자인데 ~~~ 내가 엄마인데 ~~~라고 우겨보았지만 아들은 이미 나의 손을 떠나 혼자의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묻지 말까 물어볼까 고민을 수없이 하다 아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공황장애로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나약했어 의지가 부족했어 약에 의존한다는 생각에 서울로 보낸 그 순간이 후회스럽고 화도 나고,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혼란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들의 상태를 걱정하기보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과 세상의 시선을 감당하기 싫었던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들은 성인으로써 부모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스스로 몸의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아가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이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코로나로 세상이 혼란스러웠던 2021년 아들이 22살이 되던 해, 갑자기 친구와 함께 최전방으로 동반 입대를 하겠다며 또 통보를 해왔다.


입대하는 날 내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였는데 전화기 넘어 울고 있는 여자친구를 달래느라 정신없는 아들은 우리에게 "갔다 올게." 짧은 인사만 하고 내려버렸다. 코로나로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는 군인을 원망하며 안아보지도 못하고 깊은 산속에 내려놓고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얼마 후 담당 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영준 어머님 되십니까? 영준이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만, 영준이가 정신과 약 복용 이력이 있던데 알고 계십니까? 대학을 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자 친구는 언제부터 사귀였습니까? 그들은 아들을 ‘관심병’으로 분류하며 지켜보겠다 하였다.

그들의 말투에서 아들에 대한 편견 가득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 아이가 왜 관심병이냐며 그 사실과 무슨 관계가 있냐며 따져 물었지만 대답은 단순했다.

단체생활에 문제가 될 수 있고 여자친구랑 헤어지면 탈영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내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알게 되었고, 나 스스로도 아들을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담당 부사관에게 아무렇지 않게 “네, 관심 많이 가져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순간,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눈물이 나 견딜 수 없었지만 한편으론 아들이 나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도 처음 자식도 처음인 인생을 살면서 서로가 서로의 역할이 처음인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20살짜리 아들의 초대는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비장한 독립 선언이었으며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다.


늘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만, 그 모든 선택이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음을 이젠 믿는다.

무사히 군대도 마치고 음악활동보단 음악으로 먹고사는 길을 선택해 열심히 살고 있는 이젠 25살이 된 아들

여전히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들이 음악인으로 거듭나길 오늘도 부족한 엄마는 기도를 한다.


그리고 나는, 다음 초대장을 기다린다.


은혜사의 봄 2022년 진달래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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