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名)강사는 명(明)강의를 한다
2017년 8월 15일 세계적인 팝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가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에 무대 퍼포먼스까지 탁월한 그녀의 첫 공연은 그 이름값만큼 비싼 티켓 가격을 기록하기도 했다. 팬들에겐 일생에 한 번 보기 어려운 슈퍼스타를 만나는 기회,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다른 입장객과 따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비용으로 65만원은 결코 큰돈이 아니었다.(Meet and greet 서비스 기준)
콘서트 당일, 팬들은 그녀의 이름값에 걸맞은 공연과 그 이상의 감동을 기대하며 공연장으로 향했고 그녀는 보란 듯이 그들의 순수한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고 말았다.
공연시작 2시간 전에 부랴부랴 입국한 것을 시작으로 정해진 공연시간 7시를 넘겨 공연을 시작했고, 65만원의 티켓을 구매한 팬들을 따로 만나는 이벤트를 뒤로하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거기에 공연당일 변변한 리허설도 없이 화장실에서 목을 푸는 모습을 자신의 sns 개정에 버젓이 올려 크게 공분을 사고 말았다.
이는 단순히 공연준비와 팬 서비스에 소홀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모습이었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공연장에서 훌륭한 가창력을 보여주었을지는 몰라도 유명 가수로서 청중에게 보답해야 하는 그 이름의 값을 다 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지난 글에서 남한산성 영화와 공자의 ‘正名(정명)’을 중심으로 그 이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시 이를 배경으로 가수라는 직업의 이름을 논해 보자.
가수 [singer, 歌手] 노래 부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대중문화인.
‘가수’는 노래를 직업으로 삼는 전문가를 말한. ‘직업’으로 노래를 하는 사람이니 취미 혹은 어떤 목적한 바로 음반 한 장을 내었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가수로 취급받을 수 없다.
그런 가수 중에 소위 ‘명가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영문 ‘a famous singer’로 표기한다.
우리가 ‘유명세’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 이런 의미인데, 정리하면 명가수는 이름이 난 가수(a famous singer)로서 청중이 기대하는 책임을 지는 행동, 그 ‘이름값’을 하는 직업적 가수를 말한다.
앞선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 사례처럼 유명한 가수가 자신의 이름값을 소홀히 하면 티켓 값은 벌었어도 결국 그 이름에는 먹칠을 하는 결과를 손에 쥐게 된다.
그럼 프로강사는 어떤 값을 가지고 어떻게 그 몫을 다할 수 있을까?
프로의 사전적 정의를 뛰어넘어 쉽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앞서서 진술한 글로 프로의 잘못된 정의들은 나름 지적하고 교정하려 했고 또 어떤 사람을 프로답다고 재 정의하고 또 지향점으로 제시할까를 깊게 고민했다.
이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읽는 독자로 하여금 논란과 혼란의 시간을 줄이고 앞으로 강사라는 업을 지속하고 발전시키는데 작은 도움이 될까하는 진정 ‘프로’다운 고민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의 마침표를 공자선생의 이야기로 찍어보려 한다.
공자선생은 군자(君子)라는 이상향을 설파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형태의 정의를 제시했다.
그 중 논어 위정편에 등장하는 군자불기(君子不器)가 가장 적합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군자불기(君子不器)’는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라는 뜻이다.
즉, 군자는 용도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적합한 그릇이 될 수 있어야 한다.’로 설명할 수 있다.
이를 ‘강사’에 대입해보면 좋은 강사란
다양한 고객사와 그만큼 다양한 학습자 유형, 그리고 트렌드에 따라 변하는 강의 프로그램을 필요에 따라 적합하게 만들고 맞추고 성과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프로강사는 자신만의 ‘차별화 된 강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강의, 학습자의 성과를 만드는 강의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기업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분석하고 설계한 뒤에 그것을 기반으로 강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사람이 진짜 프로강사이고 그런 강사가 그에 걸맞은 이름을 갖는 명(名)강사가 된다. 또 그런 강사가 결국 학습자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명(明)강의를 할 수 있다.
논어에서 공자의 가르침 역시 사람(제자)과 상황에 따라 내용을 달리하고 방식 또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간결하게 필요한 것만을 꺼내놓았다. 결국 공자 역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정치에 대한 밝은(明) 혜안을 발휘하는 사람이었고, 또 그에 맞는 이름 값(名)을 지니게 되었지 않은가?
명강사의 이름값은 교육 대상이 되는 학습자에게 필요한 것을 그들의 방식으로 설명할 때 발휘되고 그 값의 무게를 묵묵히 지고 가는 사람을 프로강사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점에 들러서 책을 골라보았다.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 양과 수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몇 권을 들고 펼쳤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움은 이토록 연속적인데 나의 배움은 그러한가?’
흔히 프로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강의'라는 방식으로 사람의 성장을 돕고 나누는 일을 하는 나는 과연 끝없이 반복되는 지식의 재생산과 확산의 속도를 따라 잡으려 노력하고 있는가?
그런 성찰의 끝에 만난 답은 ‘나의 직업(강사)에 완성은 없다.’ 였다. 더불어 현재에 머물러 새로운 지식의 충전과 지혜의 개발을 게을리 한다면 더 이상의 성장은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도 찾아왔다.
프로강사는 현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다.
교육활동은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의 합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선(先)학습과 성찰, 가르침과 배움의 공존을 유지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프로라는 이름의 그 값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당신은 과연 프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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