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바람과 꽃의 섬을 걷다.
소무의도는 첫눈에 마음을 빼앗는 자연미인을 닮았다. 화장기 없는 청초한 얼굴을 한 태곳적 자연 그대로의 눈부신 매력을 지녔다.
초록 숲이 부드럽게 능선을 그리고, 거친 듯 부드러운 해안선과 투명한 바다는 기분 좋은 설렘을 선사한다. 바닷바람이 쓸고 간 바위와 모래는 자연이 빚어낸 선물이다.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전설에서 지어진 이름 무의도. 그 곁에 조용히 서 있는 ‘소무의도’는 본연의 이름 없이 커다란 섬 무의도에 속해 그저 ‘작은 무의도’라고 불렸다.
약 300년 전 ‘박동기’라는 이가 딸 3명과 함께 섬에 들어와 정착하면서부터 소무의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박동기는 유씨 성을 가진 청년을, 데릴사위로 들여 유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소무의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영종도와 무의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배를 타고 가야 섬에 닿았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여서 쉽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영종도와 무의도를 잇는 다리가 새로 놓였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막연히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소무의도로 떠났다. 광명항에서 섬 도보여행을 시작하였다.
소무의도 전체를 아우르는 바다 누리길을 걸었다. 8구간으로 구성되었고, 풍광이 뛰어난 바닷길이다. 시계방향으로 걷도록 길을 조성해 놓았다.
1구간 소무의 인도교길
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잇는 인도교를 건넜다.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자전거나 도보로만 건널 수 있어서 한적하였다. 고요한 아침, 다리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내려앉았다.
까마귀 몇 마리가 다리 난간 조명 위에 한가로이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인도교 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아침 햇빛을 받아 은빛 윤슬로 반짝였다.
2구간 마주 보는 길
다리를 건너 소무의도 입구에 도착했다. ‘일상이 반짝이는 섬, 소무의도’라는 문구가 적힌 포토존을 만났다. 먼저 온 사람들은 다양한 포즈로 ‘인생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해안가에는 감성 가득한 카페와 발길을 붙잡는 음식점들이 이어져 있다.
3구간 떼무리길
떼무리길은 소무의도의 자연이 온전히 보존된 길이다.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는 ‘당산길’로 이어진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오히려 걷는 재미가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4구간 부처깨미길
‘부처깨미길’로 접어들었다. 예전 소무의도 주민들은 이곳에서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며 소를 제물로 바치는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소무의도는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형상으로 생겼는 데 바로 이곳이 뱀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부처깨미길에는 가까이 접근할 수 없어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해안절벽이 온종일 꽃처럼 피었다.
5구간 몽여 해변길
전망이 탁 트인 몽여해변길은 모래와 하얀 굴 껍데기, 몽돌로 이루어진 작은 해수욕장이다
몽돌로 물수제비 놀이를 하는 가족의 모습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따뜻한 풍경을 그렸다.
황금색 금계국과 하얀 개망초가 만발한 작은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 시간마저 향기로웠다.
6구간 명사의 해변길
명사의 해변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작고 아담한 해변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7구간 해녀섬길
다정한 흙길을 따라 걷다 보니 소무의도에서 가장 높은 안산 정상에 있는 정자 ‘하도정’에 도착했다.
여섯 개의 나무 기둥 위에 기와지붕을 얹은 단아한 모습은 마치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각시처럼 아리따웠다.
정자에 놓여있는 망원경을 들여다보니 바다 위에 동그란 빵처럼 생긴 섬 하나가 보였다. ‘해녀섬’이다.
해녀들이 깊은 바닷속을 넘나들며 전복을 채취하다 힘에 부치면 한숨 쉬어가던 장소였다.
하도정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순간, 친구 연이가 떠올랐다.
연이는 바다를 정말 좋아하던 친구였다. 대학시절 마음이 심란할 때면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기차를 타고 동해나 남해로 향하곤 했다.
친구와 함께 바라보던 바다는 매번 새로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십 대 후반 우리는 각자 반한 남자와 연애를 했고, 차례로 결혼을 했다. 연이는 남편 따라 먼 나라로 이민을 갔다.
버거운 삶을 살아 내느라 서로 연락이 뜸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 갔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늘 그 친구가 살아 있었나 보다. 이런 조용한 섬이나 바다를 보면 언제나 연이 생각이 났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해변가, 웃으며 바다를 향해 소리쳤던 기억. 순수했고 해맑았고 싱그러웠던 그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말랑해졌다.
‘다음에 또 꼭 같이 오자’고 했던 연이가 아마 이 풍경을 보면, 예전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 여기 진짜 좋다!"며 좋아했을 것이다. 한국에 오면 여기 꼭 함께 오자, 마음속으로 연이와 약속을 했다.
해녀섬을 바라보며, 바람을 따라온 야생화 향기를 맡았다.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잠 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8구간 키 작은 소나무 길
경사로인데 힘들지 않은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푸른 숲길이 나타났다. 길가에는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어 뽀얗게 말간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해풍에 적응한 키 작은 소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눈부셨다. 숲이 드리운 그늘과 상쾌한 바닷바람 덕분에 오월의 더위는 한발 물러서 있었다.
정겨운 마을로 들어서자 빨간 지붕 담장 안에 앵두나무가 있었다. 초록 잎 사이로 조록조록 달린 잘 익은 빨간 앵두가 유난히 탐스러웠다.
밤꽃이 하얗게 피어 아찔한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밭에 심어 놓은 더덕향이 진하게 풍겼다.
마을 곳곳에는 찔레꽃, 할미꽃, 금낭화, 붓꽃 등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었다. 황홀한 눈길이 한참을 머물렀다.
한 시간 남짓 소무의 바다 누리길을 따라 걷다 보니, 처음의 장소인 소무의 인도교가 보였다. 다리를 건너 광명항에 있는 식당에서 물회를 먹었다.
물회는 바다의 기억을 한 그릇에 담은 한여름날의 서사다. 새콤 달콤한 양념과 신선한 회, 아삭한 채소가 어우러져 혀끝에서 시원한 파도를 일으킨다. 소무의도 물회는 바닷바람과 여름날의 풍경, 오월의 햇살이 함께한 한 편의 시였다.
소무의도는 나직하고 조용했으며, 한가롭고 풍요로운 하루를 선물해 주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숨 쉬는 섬에서의 걷기는 일상에 지친 나를 위로해 주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