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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는 토요일 수원 화성에 갔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나는 쓸데없이 또 들떴다. 라디오에서는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배따라기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서정적인 노랫말, 차창을 두드리는 규칙적인 듯 불규칙한 빗소리가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다. 화성으로 가는 내내 즐거웠다.
비를 맞고 있는 수원 화성은 안개에 반쯤 가려져 있어 운치를 더했다.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을 보러 갔다. 길가에는 연초록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춤을 추는 연분홍 벚꽃들, 노랑, 빨강, 초록, 진분홍색의 연등이 길가에 일렬로 줄을 서서 봄 꽃길을 걷는 우리를 반겨주었다. 안개를 머금은 신선한 봄 공기가 향기로웠다.
팔달문은 축성 당시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공사 감독과 석공의 이름을 새긴 현판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벽돌로 잘 쌓은 성곽과 기와지붕, 처마 끝의 단청, 지붕 위의 조각물이 조화를 이루어 웅장하고 멋스러웠다.
행리단길을 걸었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정다웠고 예쁜 카페가 많았다. 빨간 벽돌집 담장 안에 우아하게 피어있는 백목련꽃을 보면서 하얗게 웃던 그 아이가 그리워 슬퍼졌다. 보고 싶었다. 머나먼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 아이를 꼭 만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애써 아픈 마음을 다독이며 길을 재촉했다.
화서문을 시작으로 성곽길을 걸었다.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문으로 단아하면서 예뻤다. 조선 시대 건축은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었다. 같은 성문이지만 장안문과 팔달문은 높은 격식을 갖추었으나 창룡문과 화서문은 한 단계 격을 낮춘 형태였다. 창건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알 수 있었다.
장안문 서쪽에서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방어시설인 북동적대, 북서적대를 지났다.
빨간 우산을 함께 쓰고 팔짱을 끼고 비 내리는 성곽길을 걷고 있는 다정한 연인의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비 내리는 화성 성곽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만 해도 행복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성곽길을 걸으며, 화성 안에서 살았던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조선의 평범한 하루는 늘 그랬듯 조용히 그러나 분주하게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폈고, 아버지는 소여물을 끓여 날랐다. 동생은 뒤뜰에서 닭장 문을 열고 계란을 꺼냈다.
행궁에서는 왕이 잠시 머무는 날이면 평소보다 더 긴장이 감돌았다. 행궁 앞 넓은 마당에는 경비를 서는 군졸들이 줄을 맞추어 훈련을 했고, 아이들은 그 틈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까르르 웃었다.
밤이 되면 성 안은 조용해졌다. 달빛에 물든 성곽 위로 호위병이 지나가고, 집집마다 등잔불이 하나둘 꺼져갔다. 아이들은 다락에 누워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 · 들으며 꿈나라로 향했다.
그 시절의 삶은 소박했고, 다소 불편했으며, 때론 고단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정과 질서, 그리고 따뜻한 연대가 있었다. 성벽이 그들을 지켜주었고, 사람들은 서로를 품어주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조그만 연못인 용연이 나타났다. 연못 중앙의 동그란 정원에는 하얀 오리 한 마리가 비를 맞으며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빗방울이 연못물에 떨어져 생긴 파동은 화선지에 그린 담백한 수묵담채화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맑은 날 연못가 나무 의자에 앉아 이 멋진 정경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
방화수류정은 화성 요충지에 세운 군사 시설이다. 아름다운 연못이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군사 시설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온돌방을 만들고 창문을 설치했다. 옛날 사람들의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졌다. 멀리서 바라본 방화수류정은 높은 곳에 우뚝 서서, 수려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방화수류정 아래에는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고 더러는 지고 있었다. 완연한 봄이 왔고 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비가 머문 자리, 성곽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본다. 빗물에 젖어 차가웠지만 따뜻함으로 내 가슴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