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 우리 가족이 된 작은 요정

by miso삼삼

"엄마 요즘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요."


"여자 친구를 사귀어, 연애를 해야 사는 게 신나고 재미있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장난 아니에요. 창업하고 싶어요.”

“그래도 월급 받을 때가 제일 속 편한 거 알지? 요즘 경기도 안 좋은데~~ 인건비 임대료 재료비 공과금 세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얼마나 되겠니. 또 사업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거 알잖아”


“강아지나 키워볼까?”

“강아지 키우는 것도 쉬운 일 아니야. 목욕시키고 산책도 데리고 나가줘야 하고 각종 예방접종에 사료비와 간식비 장난감 비용 등등 돈도 많이 들어가고, 강아지 털 날리는 거 청소해야 하고 그런 거 네가 다 알아서 할 거면 키워도 돼.”


기를 팍팍 꺾는 꼰대 대마왕 같은 엄마의 처방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엄마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낀 건지 외롭다는 투정도 강아지 얘기도 한동안 잠잠했다.


입춘대길이 세상에 나온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밖은 아직 겨울 티를 벗지 못한 3월 말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아니 아들보다 아들 품에 안겨있는 손바닥만 한 작은 생명체를 보고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어머나, 이게 뭐야?” “얘 이름은 베니 에요.” 아들이 조심스레 품에서 꺼낸 작은 생명체는 털보다 눈이 먼저 들어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파란 동그란 눈이 신비스러웠다. 꼭 외계 고양이 같달까. 아니면 요정?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현실적인 모습의 생명체였다. 영화 아바타의 여주인공 네이티리가 연상되었다. 작은 얼굴에 귀가 너무 커서 박쥐 같기도 했다.



커다란 눈과 뾰족한 큰 귀, 미세한 분홍색 작은 혀가 앙증맞았다. 길쭉한 몸에는 갈색과 미색 털이 조화롭게 그러데이션 되어 소심하게 말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동그란 파란 눈망울이 진짜 예뻤다. 묘한 매력을 풍기는 아주 작고 사랑스러운 녀석이었다.


우리 집에 출몰한 지 10분도 안 돼 이 녀석에게 홀딱 반했다. 마치 이효리의 ‘ten minutes’ 노래 가사처럼 10분도 안 돼서 나와 남편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암컷 고양이라고 했다.


날렵하고 가녀린 베니는 사람들도 집도 낯설지 않은지 오자마자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활달하고 밝은, 성격이 좋은 녀석임이 틀림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호기심이 발동한 녀석은 탐험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나와 남편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구석구석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틈이란 틈은 다 기어들어 가서 난데없이 집 안 대청소를 하게 만들었다. 구석에 쌓인 먼지를 들이마실까 봐 청소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좌충우돌 겅중 뛰어오르다가 벽에 부딪히고 뒤로 굴러가고 화장실 모래에 얼굴 박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양말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발끝 양말에 코를 들이박고 킁킁 냄새도 맡고 혀로 살살 핥기도 한다. 그 작은 발로 소파를 타고 기어오르다가 툭, 떨어지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들 어깨에서 놀다가 이제는 내 어깨를 차지했다. 책상? 점령 완료. 소파 등받이? 본인의 전용 휴식처. 식탁 위? 호기심 천국 충족정원. 내 머리? 말해 뭐 해.


베니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작은 요정이다. 양치질하면 세면대에 와서 빤히 쳐다본다. 화장실에 가면 따라오고, 샤워하면 욕조 앞에서 나올 때까지 감시한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키보드 위에 눕는다. ‘나만 바라봐 줘!’라고 시위한다. 내가 먹는 간식까지 다 공유(물론 눈빛으로… 압박)하게 되었다.


물건에 관심이 많고 어디든지 올라가 보고 들어가 본다. 내 지갑도 열어볼 기세다. 외출하려고 나가면 현관문 앞까지 와서 나가는 나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혼자 두고 나가기 망설여질 정도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베니는 사랑 덩어리였다. 똑똑하고 애정도 많고 털도 안 날리고… 아주 위험하다. 왜 위험하냐고? 한 번 빠지면 못 헤어 나오는 마력을 지녔으니까.


베니가 몸을 한껏 낮추고 기는 자세로 납작 엎드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오면 나는 황홀해져서 도파민이 터진다. 이게 이렇게 설렐 일인가.


베니 가슴에서도 그렁 그르렁그르렁 하는 소리가 난다. 베니가 좋을 때 흥분했을 때 이런 소리가 난다고 아들이 말해주었다.


베니는 무엇보다 아주 똑똑했다. 태어나서 눈 뜨자마자 대소변을 가린다는 게 놀라웠다. 아들이 준비해 놓은 본인 전용 화장실 모래 위에 대소변을 본다. 모래를 파고 그 속에 대소변을 숨긴 후 다시 모래로 덮는다.


일련의 화장실 사용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어진다.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 참으로 기특하다.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으면 책 위에 냉큼 올라앉아 책 읽기를 방해한다.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으면 자판을 발로 건드려서 이상한 기호를 주욱 나열하게 만든다.


일을 할 수 없어서 바닥에 내려놓으면 기를 쓰고 무릎 위로 올라온다. “어허!” 화를 내면 내 등 뒤 침대 모서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다. 더 이상 방해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 영리한 녀석이다


아들이 출근하면 그 방에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내 방으로 쪼르르 달려온다. 아들이 퇴근하면 아들 방으로 눈 깜짝할 새에 달려간다.


베니는 내 배를 좋아한다. 아니 내 배 위에서 잠드는 걸 좋아한다. 배 위에 올라갈 때도 아주 당당하다. 마치 자기 지정석이라도 되는 양 조금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풀쩍 뛰어오른다. 숨을 쉴 때마다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움직임이 좋은가보다.


자장가 삼아 편안하게 단잠에 빠져든다. 나는 우리 베니가 잘 자라고 일부러 액션을 더 크게 열심히 숨쉬기 한다.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베니는 내 손가락 물기 놀이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손가락을 살살 물면서 간을 본다. 내가 약을 올리면 한껏 날카로워져서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제법 세게 문다. ‘나 화났어’라고, 귀엽게 표를 낸다.


처음에는 작은 당근 모형을 가지고 놀다가 점점 더 다양하고 큰 장난감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움직이는 물체에 강한 호기심을 보인다. 공을 던지면 공 있는 곳으로 잽싸게 달려간다.

“베니야” 세 번쯤 이름을 부르면 어느 구석에 숨어 있다가 저만치서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데본 렉스 품종인 베니는 1950년대 후반 영국에서 등장한 귀가 길고 짧은 털을 가진 고양이 품종이다. 마른 몸 물결 모양의 털, 큰 귀가 특징이다. 아들 말에 따르면 다른 고양이에 비해 털이 많이 날리지 않고 독립적인 성향을 보여서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 친화적이어서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따르는 중용을 지키는 총명한 고양이라고 했다.


베니를 바라보며 아빠 미소를 짓고 있는 아들이 자주 목격된다. 장가도 안 간 녀석이 아빠 미소라니 기가 차다. 엄마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살인미소이다. 아니 세 살 때쯤 아들에게서 보았던 것 같긴 하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아들이 베니에게는 아낌없이 돈을 쓴다. 우리 집에서 베니가 제일 부자이다. 장난감들이 넘쳐난다.


아들이 베니에게 보여주는 애정을 보는 엄마는 행복하다. 우리 가족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제일 먼저 베니부터 찾는다. 뭘 하며 놀았는지 밥은 먹었는지 화장실에는 갔었는지 궁금해한다.


4개월 차에 접어든 베니는 어느새 털이 더 풍성해졌고, 몸이 길어졌고 더 똑똑해졌고 점프도 더 높이 뛴다. 요즘 하얀 수염도 생겼다. 수염을 보니 알겠다. 베니 너 고양이가 맞구나.


사람들이 왜 반려견 반려묘를 키우는지, 이들을 왜 소중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를 못 했었는데 베니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베니는 아주 사랑스럽고 소중한 우리 가족이다.


우리 집은 베니가 오기 전과 온 후로 나누어진다. 베니가 우리 집에 온 후로 우리는 많이 웃게 되었고 활기가 살아났고 무덤덤하던 가족 간에 대화도 늘었다. 무채색이었던 우리 집안 공기는 무지개색이 되었다.


베니는 우리 가족에게 선물 같은 매일매일을 선사한다. 이 작은 요정은 우리 가족의 하루를 바꾸었고, 우리 가족은 이 작은 고양이의 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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