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청령포
열한 개의 달을 다 주어도 바꾸지 않는다는 계절의 여왕 오월이 찾아왔다. 하늘빛을 닮아 해맑은 청령포는 가슴 아픈 역사를 품은 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연둣빛에서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녹음은 푸르름을 하염없이 내뿜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청령포는 마치 거대한 뱀이 기어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서강은 지형을 따라 구불구불 느리게 흐르고 있다. 봄의 풍요로움을 안고 있는 청령포는 단종에게는 절망의 이름이었다.
단종이 유배되었던 땅. 서쪽은 깎아지른 암벽이 솟아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들이 살았을지도 모를 깊은 산중, 세상과 고립된 이곳은 누구든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천연 감옥이었다. 이곳이 유배지로 지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단종에게 가해진 단절과 폭력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이토록 멀리 떨어진 영월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청령포로 그를 보낸 건 누구의 결정이었을까? 한양에서 청령포의 존재를 알기나 했을까? 유배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정치의 잔혹함은 그 어린 생애를 산산이 부숴 놓았다. 열일곱의 어린 왕이 느꼈을 외로움과 공포가 바람결에 묻어 있었다.
1457년, 조선 왕조 비극 중 하나. 어린 왕 단종은 겨우 열일곱 살에 이 외딴곳으로 내몰렸다. 조선 6 대왕이자 세종의 손자, 문종의 아들로 태어나 적통의 상징이던 그가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왕좌를 빼앗긴 비운의 왕이 되었다.
3분 남짓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니 단종의 마지막 궁궐, 단종어소가 보였다. 고풍스러운 기와집이었다. 숲 속에 외따로 놓인 단종어소는 적막감이 맴돌았다. 본채는 단종이 지냈던 공간이었고, 행랑채에는 궁녀와 관노들이 머물렀다.
담장 안 마당은 생각보다 넓었고 그 주변을 고고한 소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소나무마다 ‘명승 제50호 영월청령포 255 번목’, ‘256 번목’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몇 백 년을 지나온 소나무들이 단종의 마지막 시간을 묵묵히 지켜본 증인처럼 서 있었다.
천연기념물 관음송을 비롯한 오래된 송림들이 서강의 물결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 안에 묻힌 역사는 잔인했다.
어소 한편, 관음송이 서 있다. 600년을 넘게 살아온 소나무 한 그루. 사람들은 이 나무가 단종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하여 ‘관음송’이라 불렀다. ‘볼 관’, ‘소리 음’ 자를 따서 단종의 고독과 비탄을 지켜보고 들었다는 이름이다. 관음송 앞에 서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관음송은 단종의 곁에 있어 주었고, 단종이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줄기가 둘로 갈라진 관음송. 단종은 종종 두 갈래 줄기 사이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전해진다. 누구를 기다린 것도 아니고, 어디를 향한 것도 아닌 막막한 시간을, 고독을 안고 살아야 했던 어린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무껍질을 쓰다듬는 손끝이 저렸다.
산길을 오르면 노산대와 망향탑이 나타난다.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긴 곳이다. 낮은 돌탑인 망향탑은 어린 왕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정순왕후와의 이별, 한양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돌 하나, 또 하나 올렸을 것이다.
그 작은 손이 쌓은 돌탑 위에는 아직도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얹혀 있는 듯하다. 혹시라도 이 탑이 하늘에 닿으면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어린 믿음이 단종의 손끝을 붙들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고 했던가 권력의 세계는 차갑고 냉엄했다.
때로는 단종 주변을 맴돌던 청설모와 다람쥐, 사슴들이 잠시나마 그의 친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망향탑에 오를 때마다 슬금슬금 마중 나오던 뱀조차도 반가웠을 것이다. 말없이 곁에 있어 준 존재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그 적막 속에서 함께 숨 쉬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으리라.
관음송 주변 땅에는 질경이가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들기름에 볶아 주시던 질경이 나물이 떠올랐다. 고소하고 씁쓸한 그 맛이 단종에게는 그리움이었을까. 따스한 밥 한 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간절했을지 생각하면 내가 밟고 있는 이 풀잎 하나도 애틋하게 느껴졌다.
매표소 앞에는 동상이 하나 있다. 소녀와 소년이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맞잡고 있다. 어린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서려 있다. 사람들은 이 동상을 “천상재회”라고 부른다. 살아서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 하늘에라도 닿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영월 군민들이 세운 상징물이다. 그 마음은 지금도 청령포의 강바람에 실려 흐르고 있다.
강가에는 누군가가 쌓아놓은 돌탑이 여러 개 있었다. 기도하는 마음, 위로의 마음, 그리고 기억하려는 마음이 담긴 돌이었다. 나 역시 단종의 안녕을 빌며 작은 돌 하나를 얹었다. 그 돌 위로 내 마음도 가만히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