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보다 더 두려운 것, 내 삶을 흔드는 세 글자
기다림은 때로 진단보다 잔인하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의 일주일,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일주일은 느리게 또 빨리 지나갔다. 조직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첫 진료여서 아침 일찍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자동차 시동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없이 무거웠다. 일주일 내내 불길한 예감은 떨쳐버릴 수 없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한 줄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매우 건강했고, 활기찼으며, 아픈 곳이 전혀 없었다.
7개월 전에 한 건강 검진 검사에서 양호, 이상 없음 등 결과도 좋았다.
특히 유방은 초음파나 유방 촬영 검사에서 아주 깨끗하다는 결과지가 든든한 아군처럼 뒤에 떡 버티고 있었다.
진료실 문을 열기 전, 마음속으로 수없이 기도했다.
‘부디, 부디 암이 아니길.’
그러나
의사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아, 암이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조직검사 결과… 유방암입니다.”
"에휴!"
“에이 C!”
왜 나쁜 예감은 절대 틀리지 않는 걸까?
한숨이 나왔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서 방전된 배터리 같았다.
벼랑 끝으로 내몰려 천 길 만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심정이 되었다. 간절한 바람은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나뒹굴었다.
‘암 이래.’ 단 한 문장이 번개처럼 내 전신을 관통했다.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살아있지 않았다.
“유방암은 생존율이 높은 편입니다, 초기에 발견되어 다행입니다."
의사의 말은 분명 사색이 된 나에게 보내는 위로였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유방암.’ 세 글자는 내 삶을 산산조각 냈다.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유방암은 네 가지 유형이 있어요. 유방암의 유형에 따라 치료도 달라지는데, 여성 암은 호르몬 수용체가 있느냐, 없느냐, 허투(HER2, 사람 상피 성장인자 수용체 2)가 있느냐, 없느냐의 조합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나의 유방암이 어떤 유형인지, 암의 크기, 전이유무, 암이 몇 기에 해당하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치료 방향이 정해진다고 했다. 이 모든 데이터는 이 주일의 시간이 지나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도 했다.
또다시 이 주일이나 기다려야 하다니. 유방암이 한 가지가 아니라니
유방암은 단순히 그냥 하나의 유방암이 아니었다.
질문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진료실을 나서며, 내 몸이 허공에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다. 무거운 쇳덩이가 내 발을 땅 밑으로 자꾸만 끌어당겼다.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 왜 하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처음에는 암에 걸린 원인이 뭘까? 궁금했다.
'식생활? 운동을 열심히 안 한 것? 음주? 불규칙한 생활 방식?'
아무리 생각해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암 진단을 받은 후에는 원인을 아는 게 무의미했다. 이미 암에 걸린 걸.ᆢ 발병 원인을 알 수 있다 한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나.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자신을 추스를 필요를 느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정년퇴직을 6개월 남겨 놓은 시점이어서 생각할 게 많았다.
숨을 크게 쉬었다.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꽉 막혔던 속이 좀 시원해졌다.
쉬고 싶을 때, 비가 오는 날, 음악을 듣고 싶은 날 자주 가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좋아하는 옥수수빵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커피 향이 기분을 좋게 했다. 빵 한 입,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니, 방금 전까지의 일이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햇살이 빛났고, 사람들은 바삐 움직였다. 세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무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암 환자’가 되었다. 속이 쓰렸다.
'유방암', 내 삶을 흔드는 세 글자. 단어는 짧았고, 충격은 길었다.
기다림보다 더 두려운 건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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