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작
모든 것은 작은 이물감에서 시작되었다. 무심코 만져진 멍울 하나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2022년 여름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출근했고, 일과를 무사히 마친 후 퇴근의 달콤함에 안겼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커뮤니티 골프 연습장으로 향했다. 이틀 후에는 후배와의 스크린 골프 약속, 삼일 뒤에는 라운딩이 예정되어 있었다.
요즘 들어 공을 더 잘 치고 싶다는 열망이 커져 급행으로 맹연습 중이었다. 또한 동반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마음과는 달리 공이 잘 맞지 않았다.
‘연습만이 살길이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마치고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침대에 누워 뉴스를 보았다.
그러다 무심코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었다. 왼쪽 가슴 어디쯤에서 미세하게 무엇인가가 손끝을 스쳤다. 느낌이 이상했다. 천천히 쓰다듬어 보았다.
살갗 아래, 콩알만 한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말캉하거나 흐물흐물한 느낌이 아니었다. 단단하고 명확하게, 작은 동그란 덩어리가 있었다.
'이런 게 예전에도 있었나?'
다시 만져보았다. 같은 자리에 같은 크기로 또렷하게 잡히는 멍울이 있었다.
거울 앞에 섰다.
겉으로 보기엔 평소와 똑같았다. 통증도 없었고, 붓지도 않았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애써 넘기려 했지만, 불길한 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멍울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존재감이 더 뚜렷해졌다. 불안이 엄습해 왔다.
"이게 뭐지? 암인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심장이 "덜커덕" 둔탁한 소리를 냈다.
금요일인 다음날
평소에 다니던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 문 앞에 A4용지 크기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여름휴가로 휴원합니다, 월요일부터 진료 시작합니다.’
다른 병원을 가볼까 하다가 급할 거 없다는 생각에 월요일 다시 병원에 가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스크린 골프를 함께 하던 후배에게 내 상태를 말하고 만져보라고 했다. 빨리 병원을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후배 얼굴에 근심이 겹겹이 내려앉았다. 후배의 걱정이 나에게 닿아 불안을 키웠다.
월요일,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갔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진찰한 후 초음파를 권했다.
어두운 방 안, 차가운 젤이 피부 위에 발라지고 검사기가 나의 의심스러운 부위를 스캔했다.
검은색 바탕의 초음파 사진에 희끗한 원이 보였다. 하얀 부분이 멍울이라고 했다.
의사는 모양이 나쁘지 않아 암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며 초음파 사진과 소견서를 써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꼭 붙들고 싶었다.
막상 대학병원을 가려고 하니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막막했다. 이런 경우, 외래로 가야 하는지, 예약을 먼저 해야 하는지부터 난감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뭐부터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 온 보통의 사람이었기에, 이런 절차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암가족력도 없어서 어떻게 내원을 하는지 간접경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모임에서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던 언니가 떠올랐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빨리 병원에 예약부터 하라고 했다. 멍울이 만져진다고 해서 다 암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병원을 하나 추천해 주었다.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태를 설명했다. 다음 날 바로 진료 일정이 잡혔다. 병원에서는 다시 촉진, 초음파, CT 검사를 했다.
사진을 들여다보던 대학병원 의사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산부인과 의사와는 달리 모양이 좋지 않다며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의사들은 이 멍울을 모양이라고 표현했다. 유방외과 의사는 암 임상경험이 많아서인지, 초음파 사진만 봐도 딱 암인지 아닌지 아는 것 같았다.
조직검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국소마취 후,
"많이 아플 거예요."
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가운 주사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묵직한 통증이 몸 안 깊숙이 퍼져나갔다.
왼쪽 가슴 세 군데에서 조직을 떼어냈다. 곧이어 왼쪽 겨드랑이에서도 림프절 다섯 개를 떼어냈다.림프절 전이 유무를 검사하기 위해서였다
내 몸에서 ‘무언가를 떼어낸다’는 느낌은 묘하게 불쾌하고 두려웠다.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올 거예요.”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은 곧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그날
의사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 표정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놓칠 수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인생에서 가장 긴 기다림이었다.
밥을 먹으며, 아이와 대화하며, 출근을 하고, 일상을 보내면서도 무거운 마음은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듯 답답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심각했던 의사의 얼굴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목에 생선가시가 박힌 듯 불편했다.
‘별일 아닐 거야’ 안심과 ‘혹시…’라는 불안이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
"암인가?, 아닐 거야."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가고 있었지만, 내 안에는 이미 거대한 의심과 불안이 자라고 있었다.
작은 이물감은, 단순한 멍울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 들이닥칠 불청객을 암시하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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