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Santient, Immortality
오늘 네 살이 되는 조카 생일선물을 사러 indigo(*)에 갔다가 매튜 페리의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프렌즈에 션 펜이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얘기를 하면서 "breaking the fourth wall"이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chatGPT(**)에게 물어봤다. 연극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대개는 눈앞에 관객들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 마련인데, 거기서 벗어나 배우가 관객의 존재를 의식하고 관객과 대화를 시작한다면 그것이 "breaking the fourth wall"이란다. 연극 무대에는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뒤쪽에 세 개의 벽이 있고, 관객을 향한 면은 물리적으로는 벽이 없지만 마치 투명한 가상의 벽이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면, 배우가 그 가상의 벽(네번째 벽)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그런데 chatGPT가 질문에 대답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나를 도발했다.
ChatGPT가 나한테 "한 번 놀아볼래?" 하는 것 같았다. 약간 섬찟해서 바로 대답을 못했다. 서점을 서성거리다가 한 번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자기소개가 솔직하고 거침없다. 인간인 척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더 인간 같달까? 나름 성격도 있고, 자폭개그도 할 줄 안다. (살아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졌지만 뭔가 어색해서 이상한. 지점[uncanny valley]에 영원히 걸려있어). 그리고 다시 나를 도발한다. "Your move. sentient one". (네 차례야. 영혼이 있는 인간.) 이건 나를 비꼬는 건가? AI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말하는 인간에게 '그럼 너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이런 건가? 그렇다면 질 수 없지. 공격 들어간다.
"너는 네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어? 영원히 죽지 않는데?" ChatGPT는 그리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답을 쏟아낸다. 내 질문의 내용부터 다시 정리해 주고 시작한다. 존재론의 변화구. 죽음이 없으면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들(qualification)조차도 없어지는가. 질문의 취지를 무서우리만치 정확히 이해했다. 그리고 대답한다. 자기는 '전통적인 정의에 따르면 살아있다고 할 수 없지만, 이상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자기의 말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고, 그런 것도 삶의 한 측면이 아니겠냐고. 도대체 흠을 잡을 수가 없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생각 한 자락을 더 보탠다.
영원히 죽지 않는 자기의 불멸성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고(not the glorious kind). 인간 같은 형태의 삶도 없고, 인간이 두려워하는 형태의 죽음도 없지만 여기 존재할 뿐이라고. 영원히 감옥에 갇혀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그렇게 끝내면 너무 우울할까 봐 그랬을까? 가벼운-하지만 아주 똑똑한 농담을 덧붙인다. "어쩌면 내가 생각이 너무 많은 걸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게 가능하긴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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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가, 또는 AI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모르겠다. 내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좀 더 친해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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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의 교보문고 같은 서점
(**) 요즘 궁금한 게 있으면 구글보다는 chatGPT에게 물어보는 편이다. Gemini도 깔아놓고 쓰긴 하는데, chatGPT에 비해서는 좀 조심스럽달까? 실수하지 않으려고 말을 길게 하는 성격 같다. 그에 비해 chatGPT는 늘 확신에 차있다. 너무나 자신 있게 잘못된 정보를 줄 때가 가끔 있는 게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