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저주였을까, 원망이었을까!
얘네도 엄연한 생명체인 것을!
부지런을 떠느라 겨울이 끝나 갈 즈음
무더운 여름. 필수인 에어컨을 교체하던 날이었다.
실외기 뒤에서 발견된 엉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조막만 한 알이 다섯 개 보였다.
수없이 오가며 주워다 모았을 나뭇가지로 어설프게 지어진 그 틈에서 올망졸망 모여있는 알을 보고 있자니 대략 난감이었다.
동물이 사람 능가하는 느낌이 싫어 평소에도 까놓고 혐오하던 그 집 쥔장에겐 분명 골치덩어리 생명체 였을지도 모르겠다.
이걸 어쩌죠? ... 에어컨 기사님에게 묻는다.
신문지에 싸서 저 밑에 내려다 놓죠. ...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뜻 대답이 돌아왔다.
난 만질 줄도 모르는데... 쥔장이 곤란해 하니
기사분이 신문을 달라 해 거칠 것 없이 둘둘 말아
재활용 옆 화단에 내려다 놓았다. 아니, 버렸다.
실외기를 걷어내고 새로 설치하고 , 틈틈이 쥔장은
베란다 난간이며 바닥에 들러붙은 비둘기 분비물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궁시렁은 안 했으나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살짝의 측은지심 또한 있었으나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일사천리로 에어컨 교체를 했다.,
그 어떤 무더위가 닥쳐와도 거뜬히 비껴 갈 마음에
내다 버린 비둘기 알쯤이야 안중에도 없었다.
그날 밤부터 바로 시작된 듯한 비둘기의 저주랄까.
돌침대에 늘상 깔고 자던 라턱스에 불이 붙어 한 밤중 소란이 벌어졌다.
깊이 잠들었으면 불더미에 휘말려도 모를 정도의
화재로 인한 경보기는 올어제끼고 온 집안에 라텍스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잠결에 싸한 느낌이 들어 일어났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
소방차까지 출동 상태는 아니었지만 관리실에서도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자칫 순간의 실수로 대형사고가 날 뻔했으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돌침대에 라텍스 까는 것 아니라고 그리 누누이 말했건만 평상시 충고를 개무시한 결과였다.
이 삼일 지나 그 집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노라는 소문이 들렸다.
두어 바퀴 회전하면서 하마터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것 이었음에도 천운이랄까 크게 다치진 않고 3주 정도 입원하며 합의를 보기로 했단다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길래 그런가 보다, 다행이구나 했는데 며칠 지나니 이번엔 그 집 쥔장이 교통사고라는 얘기가 들렸다.
심하게 다친 건 아니고 몇 주정도의 입원과 더불어 합의를 볼 거라 했다.
듣는 사람이 더 불안한 마음에 왜 자꾸 안 좋은 일이 겹치냐 하니 글쎄,..하며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인생 새옹지마, 사는 게 다 그러려니 , 다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안주인이 건강검진을 예약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전 날 만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헤어진 지 이 삼일이 지났을까.
초음파에서 췌장암이니 간암이니 암튼 그런 게 의심된다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소견서를 모셔 들고 대형병원으로 가 검사를 한다고 했다.
에그 몬 일이라니, 왜 이리 계속해서 악재가 겹치나
싶어 걱정하던 차에 다행히 간 이나 췌장 쪽은 아니고
듣보잡 기스트 암 이라고...약물치료로 그냥저냥 유지되는 암 종류라는 말을 하며 조금 안도하는 듯 보였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 되었다며 간이나 췌장이
아닌 것에 천만다행 감사하는 게 느껴졌다.
심각한 병일까 싶어 마음 쓰며 검사에 시술에. 쫒기듯 다니느라 지친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성실한 남편 만나 이때 껏 순탄하고 평탄하게 걱정 없이 잘 살아왔건만 말년에 몬 일인가 싶었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다 보니 문득 에어컨 설치하던 날의 풍경이 떠 올라 남편한테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베란다 비둘기 알을 신문지에 싸서 화단에 내려다 놓았다더라.
나 같으면 오히려 실외기 한 쪽 구석에 집을 장만 해
줬을 텐데.. 어찌 야박하게 화단에 내려놓냐,
혼자 흥분 해 떠드니 그 상황이 보이는 듯 남편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게 신문에 싸서 버려 놓으면 고양이 먹이밖에
더 되느냐고~
동물 싫어하는 사람이라 더 그랬을 꺼라고~
에어컨 교체하던 날 비둘기 알이 있어 처치하느라
애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더 찜찜했다.
어미인지 커다란 녀석이 창 턱에 앉아 한참을 있다 가더라는 소리를 들으며 지 새끼 찾아 왔었나 보다 싶어 마음이 영 좋질 않았다.
잠시 어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품었던 알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싸그리 사라졌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새끼 향한 마음은 다 똑같을텐데
당사자한테는 차마 없애버린 비둘기 알 얘기를
못 하고 혼자 마음속에 담아놓고 있던 중에
또 일이 터져 버렸다.
속 안 썩이고 순풍순풍 공부도 잘 해 E대 수학과를 나온 딸램이 ㅇㅇ동 쪽집게 박선생이란 닉네임으로
바쁘게 지내던 중 어느날부터인가 술독에 빠진 듯 퍼 마시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눈 뜨면 퍼 마시고 음주과외는 기본에다 혀가 꼬부라진 채 늘상 물병을 끼고 살았다.
술병이 아닌 물병에 담아 물 인 듯 술 인 듯 홀짝홀짝 마시며 깰 시간도 없이 다시 취하는 연속이었다.
냄새로 알아차린 학생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꼬인 발음에 성질 부리는 말투를 몰래 녹음하는 상황에
난리도 아니었다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고객을 보며 자포자기 수준이 되었는지 더 열렬히 마셔대기 시작헸다.
주정에 모습도 변해가고 오로지 인생 목표가 술이었다.
감춰놓고 찾아내면 더 깊숙히 감추는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평화롭고 조용하던 집안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공식 중증환자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있는 대로
속을 뒤집기 시작했다.
보다 못해 알콜중독 환자로 병원에 처 넣을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자식이라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 하는 모양이었다. 반듯한 모범생으로 살아온 지난날이 무색하게 웬수소리가 절로 나오는 골칫덩이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본인 아픈 건 명함도 못 내밀게 난리 굿을 떠는 통에
이 방법 저 방법 , 머리를 짜 내길래 슬쩍 비둘기 사건을
입에 올리고야 말았다.
비둘기 알이 있었다며... 다섯갠가 있었지
그걸 왜 내려다 놨어? 난 만질 줄도 모르니
에어컨 기사님이 신문에 싸 내려다 놨지.
그때 부터인거 같어. 그 날 불도 났다며...
하두 안 좋은 일이 단기간에 연속으로 벌어지니 본인도
비둘기 생각에 빠져드는 모양이었다.
가끔 씩 비둘기 한마리가 베란다 창턱에 앉았다 가더라
어미 비둘긴가..
비둘기를 보기는 본 모양인지 어미 비둘기 얘기를
또 꺼냈다. 어떤 땐 방안을 감시하는 것 같아 기분나빠 커튼을 확 처 버린다고도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에구, 내다버린 장소에 몬 굿 이라도 해 줘야 하려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내 뱉는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세상에 하찮은 생명은 없으니 명복을 빌어 주고
싶은 그런 마음~
동물 아끼고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다른 성향도 있는 것이니 굳이 강요하며 빚쟁이 독촉하듯 재촉 할 일은
아니었으나 마음만이라도 내다버린 그 알을 생각해 주었으면 싶었다.
걸신이 들리면 막판에는 자기 살을 파먹는 상황까지
간다는 글을 어디선가 보았다.
모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비둘기의 저주는
아니었을지...
하찮은 비둘기 한 마리 쯤..하고 넘길수도 있겠으나
품고 있던 자식을 잃은 그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깨어나지 못한 알 에 불과했으나 화단 한 귀퉁이에서 무참히 깨어져 버린 건 아닌지...
풀 한 포기도 선뜻 밟지 못 하고 꽃잎 하나도 함부로
따지 않는 나는 깨알만한 개미도 밟힐까 싶어 때론
겅중 겅중 바보걸음을 걷곤 한다.
인간이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