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뻥쟁이글쟁이 Jul 16. 2024

인면수심 할매 / 흰둥이

끝까지 살아남기

오래전 주택에 살던 시절!

옆집을 지날 때마다 활짝 열린 쪽문 사이로 흰둥이가 어찌나 사납게 짖어대는지 혼을 쏙 빼놓았다.

그 집. 멍멍이는 목줄도 안 채우고 변변한 집 한 칸도 없이 마당에 그냥  내깔려 놓은 존재였다.

집을 지키는지  어쩐지 그 속을 알 수는 없으나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무대뽀로 짖어댔다.

잡아먹을 듯 싸납게 짖어대는 게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녀석과 좀 친해보려 무던히도 애쓰던 시간이었다. 하루는 그 집 할매가  긴 막대를 하나 들고 흰둥이 뒤를 몰래  밟고,있었다.

어디 가세오,? 물으니 어디다 새끼를 낳았는지 따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눈치 빠른 흰둥이는 잠깐 사이에 할매와 나를 따돌리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날부터  흰둥이의 일거수일투족이 할 일 없던

 날 백수  레이다에 걸려들었다.

창문 너머 수시로 내다보다 흰 동이의  움직임이 감지되는 동시에  나 또한 덩달아 분주해졌다.

늘 마당에 널브러 있던 녀석이  교묘하게 자리를 피할때면 아마도 새끼들을 보고 오는 듯 했다.

어느 구석에 몇마리를 낳아 혼자 오가며 애 쓰는지는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였다.

쥔장이라고 할매가 사료를  챙겨 주는 것 같지도 않았고

간혹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가 들어있었다.  주면 먹고 안 주면 굶는 듯 보였다.

 집구석도 쪽문이 항상 열려,있어 아무나 드나드는  구조였는데  화단 옆 수도지가 있어

그나마  천만 다행이었다.

밥그릇, 물 그릇을 내 맘대로 교체 해 남 집 마당을

발이 닳도록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럴때면 할매가 3층에서 내려다 보곤 했는데 고약한 생김과는 다르게 별 말이 없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무나 들어오이소~~아무리 열려있는 문 이라지만

왜  멋대로 남의 집을 드나드느냐 , 왜 밥을 챙기느냐

작정하고  태클을 걸기라도 하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도도하고 거만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할매는 그나마 이웃사촌이라고 봐주는 건지  쪽문 드나드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감시조가 되어  수시로 흰둥이 뒤를  쫒았으나 결국 은신처를 알아내지는 못 했다.

하지만 내 발소리에 귀 기울이며 간식을 받아먹기도 하고  밥그릇에 부어주는 사료를 보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억세고 드세게 왈 왈 짖어대던  목청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두어달 사이에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장족의 발전을 한  흰 둥이와 나는  진정한 이웃사촌으로 거듭났다;


구 믹스인지 팔 다리가  짧은 흰둥이는 영리하고 사납고  눈치도 많이 보는 눈치이백단 견공이었다;

주인의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 하니  악만 남아 더 사납게 구는 것 같았다.

1층과 2층을  전부 세 놓고 3층에서 혼자 거주하던 할매가 어느날, 마당에 멍멍 한마리를 더 늘렸다.

흰둥이도 어릴때 시골에서 데려온 거라 했는데 신입도 생김똑같은 암컷   검둥이였다.

막한 다리로  두 녀석이 마당을 가로질러 동네를 쏘다니다 보면  줄이 사탕처럼 남정네가 몰려들었다.

어느 새벽엔가 동네가 시끄러워 잠을 깼는데 흰둥이네 마당에  크고 작은 떠돌이 수컷 여섯 놈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점잖고 늠름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흰둥이 자매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형세였다.

흰둥이와 검둥이는 3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쪼그리고 있었고 불청객은 철퍼덕 주저앉아 요란하게 짖어댔다. 같은 상황이 며칠간 반복되다 보니 급기야는 민원이 들어갔고  매몰찬 할매는 검둥이를 다시 어디론가 보내버렸다.

시골에서 데려왔던 녀석을  다시 시골로 보냈다고 했는데 어디 나쁜곳으로  내몬 건 아닌가 싶어 음이

 영 편칠 않았다.

허연 얼굴로. 부티 줄 줄 나는 인상에 거만스런 느낌,

누구를 대하든 눈 아래 깔보는 듯한 재수없는 눈초리까지  주는 거 없이 밉상노인이었다.

다시 혼자 남은 흰둥이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는데 짤막한 팔 다리 탓인지 땅에 끌릴 듯 위태로웠다.

여전히 밥상대령은 내  차지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식음을 전폐하니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 날이 현충일이었던가, 연휴로 먼곳을 다녀 오자 마자 흰둥이를 찾으니 고새 배가 홀쭉해,있었다.

어디다 새끼 낳았냐 물어도 눈만 껌벅껌벅,  따돌릴 궁리를 하느라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날부터 다시 또 흰둥이의 뒤를 밟으며 눈에,불을 켜는

신세가 되었다. 산모이다 보니 황태국에 미역국에 순살을 삶아 극진히 대접했다.

밥 먹고 나면 꼭 자리를 뜨는 것 까진 알았는데 눈 깜짝 할 새에  사라지는 걸 보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몇 걸음,앞에서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 처럼

 번번히 놓쳐 버리던 찰나에  앞집 살던 이웃이 슬그머니 팔을 잡아끌었다.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소리와 함께  가리키던 곳은 그 언니네 계단 밑이었다.  현관까지 오르는 계단이 마당에서 딱 일곱개,  그 밑을 들여다 보니 흰둥이와 꼬물이들 솜뭉치가 보였다.

대체 몇마리나 낳은겨... 궁금해 죽는 내게 그 언니가 하소연을 늘어놨다. 일년에 두번. 새끼를 낳을때마다 할매가 여기 저기 보내는지 다 어따 팔아 처 먹는지  

싸그리 없앤다고  했다.

목줄도 없이  온동네를 쏘다니다 새끼를 낳는 족 족

어디론가 다 빼돌리는 통에 매번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자기가 본 것만 해도  7년차라 가엾은 흰둥이 나이도  

꽤 있을 라며  할매 흉을 마구 쏟아냈다.

컹 컹 짖어 시끄러우니 어느날은 입마개를 해 놨는데

그날 마침 밤손님이 들어와 홀라당  털렸다는 얘기며

노인네가 유별나 같이 살던 아들 내외가 빈털털이로 쫒기듯 나갔다는  말을 덧붙였다.

짖을 땐 다 이유가 있는, 얘라고 괜히 잦어댈까

쌤통이네  .. 하는 내게  맞어,  맞어 맞장구를 치던 언니는 계단 밑에 한 살림 장만해 꼬물이 아홉을 건사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란 새끼들을  론가  또 싸잡아 보낸 모양인지 속절없는 세월과 더불어 흰둥이는 다시 마당에 덩그러니 혼자 남게되았다.

체념하는 눈빛으로  사납게 짖는것도 줄어들고 쥔 할매를 제외한 이웃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표정이

훨씬  안정되고 부드러워졌다.

장대비가 세차게 퍼붓던  어느 여름 날 ,할매의 딸이 출산 차 친정에 와  아들을 낳았는데 그 날 흰둥이도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쏟아지는 비를 다 맞으며 화단  한귀퉁이를 파다 말고 새끼를 낳고  또 다시 파고..가여워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빗소리에 달려나간 나를 보던 흰둥이는 애절한 눈으로 구원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닐을 처 주고 우리 멍멍이 집을 가져다 담요를 깔아 총 7마리 새끼들을,옮겼다

 덩달아 비를 쫄딱 맞으며 흰둥이를  건사하는데 할매가 빼꼼 내려다 보는게 느껴졌다.

어디 마땅치가 않은지 비 맞으며 화단에 새끼를 낳았네요..하니 시쿤둥한 표정으로 한마디 툭 내뱉는

게 역시 밉상스런 존재였다.

사람 자식 태어난 날 개가 새끼를 낳아 재수가 없다나.

뭐 이런 멍멍소리를 지껄이는지..

인정머리라곤 없는 늙은이였다.

지금 껏 그랬듯이 흰둥이 너만 불쌍한 존재구나 싶어 다시 산간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따뜻한 손길에 모든 것을 내 맡긴 흰둥이는 할매네 집

푸대접 받는  마당개가 아닌 내 반려견 같은 느낌이었다. 2층 이사 온  새댁이 같이  돌보아 주는 덕분에  한동안 꼬물이들과도 잘 지내던 중이었는데 못돼 빠진 할매가  새끼들을 몽땅 어디론가 또 보냬버렸다.  다시 사나워진 흰둥이는  마당을 빙빙 돌며 왈왈거리기 시작했고  대문앞에 쭈구리고 앉아 멍하니 있는 게 일상이었다.

,그 집에서 수십년을  살던  할매가 계단에서 고꾸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례를 치루는가 싶더니

 쫒겨난 아들이  들이닥쳐  집을 팔아치웠다.

마당에 덜렁  흰둥이만  남긴 채 쌩 하니 이사를 간 후에도  한동안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푸짐한 욕을 먹는 신세가 되었다.

뿌린대로 거두는 법 이라고, 인과응보라고!

하도 고약을 떨고 살아 죽어서도 좋은데로  못 갔을

꺼라는 악담이 이어졌다.

새로 온 집주인은 인상이   수더분한 여자였는데

부부가 ㅇ관장인지  매장을 하느라 밤늦게 오는 탓에

마당에 남겨진 옵션을 꺼려하진 않았다.

하지만  초등아들이 심심풀이로  마당에서 흰둥이와 놀아주는 것 까지만 선을 그었다.

내쫒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어느 날 마트를 다녀오다 보니 건너편 풀숲에서 손바닥만한 하얀 솜뭉치 넷이  너플거리는 게 보였다.

그 뒤를 이어 흰둥이가 새끼를 하나씩  풀숲으로

 물어 날랐다;

아니 ,언제 또  순풍순풍 새끼를 낳은 거니..


무늬만 주인이었던 할매도 없는 마당에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될것 같아  고심을 했다.

더 이상 떠돌이개로  새끼만 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버림받고 남겨진 존재인 중형견 쯤의 흔둥이는  2층 새댁과  나의 합심으로 중성화를 하는 동시에  2층으로 입성하여 진정한 반려견이 되었다.

평생을 새끼만 낳다 빼앗기고  방치되어  다시 또 반복되는 일상을 겪던 흰둥이는 위기를 기회삼아 견생역전을 한  흐믓한 케이스였다.

나 혼자였으면 감히,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새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니라는 예쁜 이름까지 갖게 된 흰둥이는 정기적인 병원진료는 물론 좋은사료에 깨끗한 환경에서 외동으로 듬뿍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최소한의  보살핌이,없으니 살아남기 위해, 버티기 위해 악으로, 깡으로  살던 악몽같은 시간은 아니었을까.

하니야 !너의 견생역언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남은 시간도 꽃길에서 맘껏 행복누리렴.

넌 그럴 자격 충분해!


끝까지 살아남는 게 진정한 winner. !




작가의 이전글 # 6. 대환장 가족입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