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어른 증후군

남에게만 다정한 어른 말고, 나에게도 다정한 어른으로

by 지해랑

나는 요즘 착한 어른 증후군에 걸린 것 같았다.
병명은 내가 붙였다.
진단 기준도 내가 만들었고, 치료도 어렵다. 왜냐고?
이미 주변 10명 중 7명은 이 병을 앓고 있으니까.


증상 1. “그래, 괜찮아”가 입버릇이다.

버스에서 발을 밟혀도 “괜찮아요”
회사에서 야근 떠맡아도 “제가 할게요”

영원한 내 편이라 생각했던 친구도 결국 안개처럼 사라질 때도

혼자 상처받으며 “그래. 뭐 괜찮아”
심지어 연애할 때도 기분 상한 티를 낼 수 없어 “괜찮아”

근데, 이게 문제였다.
괜찮지 않은 걸 괜찮다고 말하다 보면
진짜 괜찮은 게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증상 2. 거절은 죄가 아닌데, 죄악처럼 느껴져 안되어도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 애매하게 늘어놓아 결과는 더 나쁜 사람이 된다.

“혹시 시간 좀 괜찮으세요?”
아니요. 괜찮지 않은데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 밖으로 나가는 건 늘 똑같다.
“아, 네, 시간 괜찮아요.”

그리고는 머릿속에
'이 일 끝나면 다시 일어나야 해…'
'이번 주말도 글렀구나…'
라는 대사가 BGM처럼 흘러간다.

왜 우리는 거절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사수하려고 애쓰는 걸까.


증상 3. 혼자서 다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

도움 요청? 안 해.
“아, 제가 다 정리해 둘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니에요, 괜찮지 않아요. 나 이러다 뼈 빠져요…)

착한 어른들은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자기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만 참으면 되니까.”


왜 ‘착한 어른’이 되었을까 싶다.

어릴 때는 '말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고 배웠고
커서는 '눈치 빠른 어른'이 좋은 사람이라고 배웠다.

눈치 없이 할 말 다 하면 ‘무례하다’고 하고
감정 앞세우면 ‘이기적’이라고 하고
거절하면 ‘정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착한 아이의 업그레이드 버전,
"착한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괜찮아서, 정말 ‘착해서’ 그런 걸까?

사실은, 상처받기 싫어서, 거절당하기 무서워서
오히려 더 착한 척하면서, 자신을 지켜온 것 같다.


착한 어른을 졸업하는 연습을 해본다.

요즘 나는 혼자 이런 연습을 해본다.

택배 잘못 오면 정중하게 전화하기

회식 불참할 때 “저는 쉬고 싶어서요.” 말해보기

부탁받았을 때 “이번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해보기

이거, 생각보다 짜릿하다.
물론 처음엔 심장이 두근거리지만,
이게 곧 내 삶을 지키는 방법이란 걸 알게 됐다.

착한 어른 증후군을 고치는 첫걸음은
‘나는 모든 부탁에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리고 착한 어른은 대개 말한다.
“난 괜찮아. 그냥 다들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근데 말이야,
그 ‘다들’에 너 자신도 포함되어야 한다.

남에게만 친절한 어른 말고,
나에게도 다정한 어른으로 살아보자.
그게 진짜 멋있는 어른이더라.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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