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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2. 2022

남편과의 대화

서울 도성 낭만 드라이브

우리 가족은 저녁이 일러 시간 여유가 되면 드라이브를 하곤 한다. 서쪽으로 도는 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철길 건널목에서 운 좋게 땡땡땡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걸 지켜보기도 하고, 북쪽으로 도는 날은 남산을 끼고돌며 화려한 도심 속을 활보하기도 한다. 어제처럼 가끔 운 좋은 날엔 잠든 아이들을 태우고 성북동 북악 스카이 한양도성길을 따라 드라이브하곤 하는데, 그런 날이면 반짝이는 야경에 심취해서 남편과 "우와" "우와"를 외치며 둘이 어린애처럼 좋아하기도 한다.

반대편에서는 드라이브 온 연인(아마도?)들 차로 밤늦은 정체가 빚어지기도 하는데 우린 다행히 반대편에서 와서 수월하게 도심 한가운데 산길을 훌러덩 넘어 성북동 쪽으로 향했다.  도란도란 대화를 하느라 미처 우회전을 못 했는데, 그러다 보니 늘 내리막길에서 보던 평창동 부촌이 아닌 서민 아파트촌이 나타난다. 오호라. 그래서 아빠와 아이가 이 시간에 손 잡고 걸어 올라가고 있었구나 얘기하며 큰 아이와 다음에 채집을 오면 좋겠다고 남편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그 순간 우리 눈앞에 처음 보는 한양 도성 야경이 펼쳐졌다.

"와"

할 말을 잃고 야경을 바라보는 나를 위해 남편이 도로 한편에 차를 세워주었다. 아침 내 밥투정하는 큰애와 투닥거리며 속상해하던 마음도, 낮 시간 내내 깍두기와 물김치 담그느라 부엌에서 종종거리던 마음도 어느새 사르르 녹아버리고, 오로지 몇 백 년을 홀연히 그 자리를 지켰을 한양도성의 아름다운 야경과 우리 가족만 이 세상에 남은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체감 45도(?)의 급경사로 무섬증에 휩싸인 나는 남편을 재촉해서 경사길을 내려왔다. 정말이지 한참을 가도 끝없는 경사길은 예전에 수안보에서 천문대에서 내려올 때  "브레이크 파열 주의" 표지판을 따라 조마조마하게 내려왔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심장 쫄깃했던 그때 기억을 소환할 만큼 엄청난 경사였다. 역시 성북동이구나. 그렇게 살고 싶다는 본능만으로 성북동 경사길을 내려오며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전에 읽은 책 내용을 자랑하느라 뜬금없이 남편한테 "직지"가 뭔지 아느냐 질문한 적이 있다. 지식이 풍부한 남편이지만 내 말 뜻을 몰라 의아해했고, 난 당당하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200여(?) 년이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라고 자랑했더랬다.(사실 몇 년 앞서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숫자에 약한 나는 이래서 늘 내가 가진 지식의 진실성을 의심받는다니까...) 남편이 발끈하며 그럼 직지심경이라고 해야지 하니 난 "직지심체요절"이야.라고 정정해주었더랬다. 당당하게 암기 지식을 뽐내는 내게 남편이 한 마디를 던졌다.

"그래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몇 백 년 앞서서 한 게 뭔데?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는 유럽 전역으로 전파해서 근대로의 시대 전환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직지는 무슨 역할을 한 거지?"

"..."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남편의 일갈에 단답형 시험문제에만 익숙한 나는 또다시 할 말을 잊었다.

(한때 전교에서 놀던 나지만 지식으로는 남편에게 절대 이길 수 없다. 시험 지식도, 그냥 지식도.....)

할 말 없던 나는 씩씩대며 남편에게 한 마디 했더랬다.

"그러니까, 그런 걸 토론 주제로 정해서 학교에서 공부시켜야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우리나라 직지를 비교 분석해서 역사에 가져온 영향력을 분석하는 것 말이야. 만날 직지심체요절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이라고만 가르쳐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추신) 아이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다보니 약 89년 앞서있다고 한다. 차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직지는 불법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 글을 전파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구텐베르크 활자는 말 그대로 글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 말 그대로 제작 목적의 차이일 뿐, 직지는 시대를 변화시키지 못했으니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거다. 흑. 그때 이걸 주장했어야 하는데! 아쉽다. 쳇!

그런데 프랑스에 소장된 직지는 왜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가!

이것도 토론해볼 만한 주제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 대화 주제는 아이들 교육 이야기로 넘어갔다.

남편은 요즘 엄마들 같지 않게 큰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내게 고맙다고 하며, 회사 후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편이 이직하기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인데 영어유치원과 온갖 사교육에 열광하고, 자신이 공부를 잘해서 이 직장에 왔으니 아이도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직원이라고 했다. 지금 그 직원은 타의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아이가 학습지에 학원으로 고생하고 있을 거라나.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결혼할 때만 해도 난 공부도 잘하고, 또 시험으로 번듯한(?) 평생직장에 왔으니 남편이 결혼 잘한 것이라고 착각했더랬다.(그래, 시험으로는 나도 남 부럽지 않았다. 몇 년 걸린다는 공무원 시험을 회사 퇴사와 함께 단 6개월 만에 응시한 3곳 모두 합격해버린 저력과 함께 합격수기가 고시 신문에 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오롯이 평생을 시험만을 위해 공부했던 나는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내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모든 지식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시험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서 책을 읽으며 지식을 습득한 남편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오랜 기간 폭넓은 지식책 숙독을 통한 남편의 깊고 풍성한 지식은 큰 아이가 질문할 때 위력을 발휘했다. 우물쭈물하며 부정확한 카더라 기억으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육하원칙에 의거 정확한 사실을 아이에게 전달해주었다. 가치판단도 감정적인 나와 달리 매우 논리적이었다. 그렇게 12년을 채우며 내가 느낀 건 100점짜리 시험지가 아닌 독서를 통해 습득된 배경지식(스키마)의 위력이었다.


책을 통해 습득된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폭넓은 배경지식을 활용한 나만의 논리 형성이 가능해지고, 정확한 지식에 기반해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설득력도 높아진다. 시험으로 형성된 지식의 유효기간은 고작 몇 년. 세계의 변화 속도가 빨라 우리가 아는 지식의 유효기간이 고작 3년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니, 고작 3년짜리의 지식을 위해 우리가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준한 독서를 통해 세상에 연결된 끈을 놓지 않고, 세상의 흐름을 읽으며 미래를 준비하는 감각을 키우는 능력.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엄마 아빠의 공부 철학이 아이에게 잘 먹혀들기만 한다면 뛰어난 영재는 못 되어도 사회의 부적응자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공부만 잘하는 사회 부적응자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아이가 도태되지 않고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 아이에게 문제집 한 장보다 공부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쥐어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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