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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2. 2022

여름이야기

방학(放學)-학업을 잠시 놓다.

일일 확진자 천명을 넘기면서 방학을 열흘 앞둔 7월, 결국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변경되었다. 큰 아이는 만세를 불렀고, 작은 아이는 형아가 갑자기 왜 그런지 의아해하면서도 같이 기뻐하며 둘은 온 집안을 소리 꺅꺅 질러대며 돌아다니며 기쁨의 세리머니를 했다. (천명이 넘는다는데 뭐가 그리 기쁜 거니?)



열흘 간의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진짜 방학을 맞던 날, 나는 아이와 집안일 담판에 나섰다가 결국 물러서고야 말았다. 아이는 왜 갑자기 자기가 집안일에 참여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아이의 반발에 나도 강하게 엄마도 파업할 거야 라며 강하게 반응하다가 속으로 셋을 세며 심호흡을 하고는 가족회의를 열어 결정하자는 말로 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하마터면 일촉즉발, 그동안 쌓아왔던 아이와의 신뢰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뻔했다.


그렇게 집안일은 아직까지도 남편과 나의 몫으로 남겨졌지만 그 뒤 큰 아이는 식탁을 차릴 때 숟가락도 놓고 반찬도 꺼내며 가끔이나마 식사 준비를 같이 하곤 한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방학 미션은 실패로 돌아가고 두 번째 미션카드를 꺼내자니 왠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첫 번째 미션처럼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면 어떡하지?'

결국 나는 방학 첫날부터 꺼내려던 2학기 수학 선행 미션 카드를 슬그머니 버렸다. 큰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보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는데 2학년 때 복직 전에 아이의 학습 독립을 시도하면서 아이와 갈등이 극에 치달았던 쓰디쓴 기억을 되살리자니 여태껏 힘들게 쌓아온 신뢰관계가 무너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아이와의 관계 회복 vs 학습 독립 중에서 망설임 없이 아이와의 관계 회복을 택했다. 학습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야 싸울 거리가 줄어들 테니 학습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놀고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화가 날 수 있겠지만 딱 한 달만 참아보자고 결심하고는 아이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마침 4단계로 작은 아이도 휴원 상태에 돌입한 데다, 확진자 밀접접촉자가 발생하는 등 어린이집 상황도 좋지 않아 작은아이도 당분간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우리 집은 어린이 놀이터가 되었다. 7월 초즈음부터 조금씩 같이 어울리기 시작하곤 했는데 처음엔 서로 노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서먹서먹해하던 두 아이는 작은 아이가 새로운 놀잇감을 발견해서 혼자 놀고 있으면, 심심해하던 큰 아이가 옆에 슬쩍 붙어서 같이 놀거나 보드게임에 슬그머니 참여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놀잇감을 서로 갖겠다며 싸우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난 두 아이가 싸울 때마다 서로 사과하고 끝내도록 했는데, 작은 아이는 금방 수긍하고 사과하곤 새로운 놀이를 하는데 큰 아이는 자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워낙 강한 아이라 사과하면 자존심이 꺾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약한 아이라 늘 맞고 들어오기에 늘 내가 나서서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내곤 했었는데 그게 습관이 되어 자기가 먼저 사과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인정하지 못했고, 초등학교 때 그로 인해 교우관계가 뒤틀리는 상황이 번번이 발생하면서 나의 잘못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아이는 동생으로 인한 상처까지 깊어져 있었다. 아이의 잘못을 훈육하며 상대방에게 사과하라고 말하는 건 본인의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할 수 있으니 아예 잘못을 하면 자기 방어부터 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고, 그로 인해 늘 나는 작은 아이를 대신해 큰아이에게 화를 내곤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초반에 반복되다 보니 서로 지쳐 두 아이가 싸우면 일주일씩 분리를 시켰다. 한 번 싸우면 일주일 동안 같이 놀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그리고는 어느 날 나는 두 아이에게 밥도 주지 않고 하루 종일 방 안에 아무 말 없이 드러누워버렸다. 큰 아이와의 반복되는 논쟁에 지쳐버렸고, 매번 반복되는 말에도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큰 아이의 강한 반발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이다. 싸우든지 말든지 하루 종일 나는 방 안에 드러누워 책만 읽었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빌려온 아이 책을 읽다가 다 읽어버리고는 할 일이 없어 전자책까지도 읽어버렸다. 간간히 작은 아이가 슬픈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나는 그 모든 상황을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배고픔에 지쳐 큰 아이가 시리얼을 챙기면서 작은 아이 시리얼까지 챙겨 먹이는 듯했다. 속으로는 다행이지 싶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니 상황이 꽤나 심각했나 보다. 나에게 한 두 마디 하고는 말없이 나가 아이들을 챙겼다. 늦은 저녁을 챙기고 씻기고, 책도 읽어주더니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하루 푹 어디로 가서 쉬고 오라고 한다. 


남편의 그 말에 난 울컥해져서 말없이 차 열쇠를 가지고 나와서는 차 없는 밤 11시 도로를 달렸다. 나의 유일한 쉼터는 차 안이었던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토록 모든 걸 내려놓고 도로를 달려본 일이 있었던가. 운전을 하면서 나는 곧 마음이 편안해졌다. 휴직의 목표는 분명했고, 아이는 그동안 충분히 힘들었으니 이젠 내가 그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 줄 때라며 위로했다. 결국 난 인적 없는 도서관 주차장에서 한참을 차 안에 앉아있다가 한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정성껏 아침을 챙겼다. 어제 하루 종일 거의 아무것도 못 먹었을 아이들을 위해 큰 아이가 좋아하는 참치 미역국에 온갖 정성 어린 반찬들을 챙겨 먹이고 씩씩한 목소리로 "오늘 어디로 갈까?"를 외쳤다. 그렇게 상처 받은 내 영혼은 더 깊이 상처 받은 어린 영혼을 위해 다시 힘을 내보기로 했다.


그 뒤 우리의 방학은 크게 변했다. 난 아침이면 늘 어디로 갈까를 고민했고, 가까운 공원에도 다소 먼 과학관도 마다하지 않고 달렸다. 가는 곳을 결정할 때는 늘 큰 아이의 의견을 경청하며 함께 결정했고, 그곳은 다행히 늘 옳았다고 생각한다. 엄마 혼자서 두 아이를 챙기기 힘들다 보니 가끔 큰 아이에게 잠시 작은 아이를 맡겨놓고 자리를 비울 때가 있었는데 초반엔 잠시 다녀오면 늘 큰 애는 씩씩대고 작은 애는 엉엉 울며 매달리던 풍경이 어느 순간 깔깔대는 두 아이의 웃음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주말에는 큰 아이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매주 머나먼 인천의 갯벌에 다녀왔고, 아이들은 땅을 파고 잡은 게를 서로 공유하며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형아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친구들과 어떻게 노는지 몰라 혼자 놀곤 하던 둘째의 표정도 밝아지고, 어느새 "엄마 놀아줘"에서 "형아 같이 놀자. 놀아줘"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물론 큰 아이도 작은 아이를 살뜰히 살피며 엄마는 할 수 없는 둘만의 놀이에 대한 재미에 빠져들고 있었다. 


물론 엄마인 나도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이 머나먼 여주든, 이천이든 안성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렸다. 남편이 없이 고속도로를 달려본 적도 없었건만 두 아이를 책임지는 엄마로서 뭐든 해야 했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길을 잘 못 들기도 하고, 처음으로 셀프주유에 도전할 때는 실수를 거듭하면서 뒤에 길게 늘어선 차들에 쩔쩔매며 주유 중이던 기름을 쏟아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실수와 착오에도 목적지에는 늘 도착했고, 아이들은 도착하기까지의 긴 여정을 잘 참고 도착해서는 서로 배려하며 잘 놀아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하나씩 들려준 호두과자는 아이들의 즐거움이 되었고, 차에 타자마자 잠든 작은 아이 옆에서 책을 보느라 조용하던 큰 아이도 어느새 잠들곤 했다. 잠든 아이들을 태우고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정말이지 평화로웠다. 이 평화와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렵기도 했지만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도 이 행복을 숨기지 못하고 큰 아이가 작은아이를 얼마나 살뜰하게 보살폈는지 자랑하곤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늘 둘째의 성화에 저녁시간을 오롯이 둘째에 매달려 난 늘 바쁘게 무엇인가를 하지만 첫째와의 시간을 보내지 못해 저녁시간엔 늘 혼자였던 큰 아이에게도 편하게 놀아주지 못한 둘째에게도 늘 미안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젠 두 아이가 놀다 보니 자유로워진 까닭에 아이들 둘을 더 살뜰히 보살필 수 있으니 몸도 마음도 여유로워졌던 것이다.

퇴근하면 늘 싸워서 씩씩대던 우리를 보다가 언젠가부터 두 아이가 깔깔대며 놀고 있고, 그 모습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도 만족스러워했다.  퇴근과 함께 느긋해지며 집안일을 슬그머니 밀어내는 엄마의 게으름조차  기꺼이 받아내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여름은 우여곡절 끝에 쌓여가는 추억, 끊이지 않는 두 아이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어딜 가든 함께하던 책들과 함께 마무리되고 있었다. 물론 쌓여가는 문제집과 언젠가부터 쓰지 않고 쌓아두어 시작하기가 무서워진 일기장을 보면서 마냥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을 아이에게는 위로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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