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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2. 2022

독서와 학습 간의 상관관계

동화책에만 빠져 있는 아이, 문제집을 풀게 해야 할까?

큰 아이는 문자 중독이다.

연초, 만화만 읽으며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집에만 있으려는 아이에게 처음 책을 권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짧은 기간 내 문자 중독이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언젠가는 문자 중독이 될 거라는 기대조차 없었다. 워낙 모든 세상에 의욕이 없던 아이였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어부가 되겠다며 온갖 어른용이고 어린이용이고 가리지 않고 물고기 도감이란 도감은 종류별로 다 사다 날라서는 횟감인 물고기와 그렇지 않은 물고기들을 기가 막히게 분류하던 아이 었다. 수족관에서 물고기만 봐도 어떤 물고기인지 종류며 특징까지 척척 알아맞히며, 이것도 물고기요 저것도 물고기인 다른 아이들을 압도하던 아이 었다. 하지만 엄마의 복직과 함께 학습 부진을 겪으며 코로나까지 직격탄을 맞은 아이는 아무도 없는 돌봄 교실을 홀로 지키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하지만 엄마의 휴직과 함께 아이는 다시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고, 매일같이 도서관 두 세 곳을 돌며 책을 날라 거실 바닥에 쏟아부은 나의 노력 속에 다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지금엔 화장실에 가든, 놀러 외출을 나가든 상관없이 책을 몇 권씩 꼭 챙겨가야 직성이 풀리고, 도서관에 가는 것을 즐거워하며, 도서관에 가지 않더라도 매일 2~6권의 책을 읽는 아이가 되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책을 들고 오는 통에 밥 먹는 시간만 3시간까지 길어지기에 빨리 먹으라는 나의 성화에 옥신각신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책이 재미있다며 슈퍼땅콩 VS 붕어빵 같은 생활동화, 푸른 사자 와니니 같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들을 거쳐 호흡이 제법 긴 박 씨 부인전 같은 우리나라 고전, 동물농장, 페스트 같은 다소 어려운 주제의 서양 고전, 톰 소여의 모험 같은 세계명작을 거쳐 최근에는 용 선생 과학교실이나 전통문화를 다룬 지식 동화책까지 그 영역이 다양해졌다. 곤충에 열광하며 다시 이런저런 곤충도감도 섭렵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 안에는 물론 매일매일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출석도장을 찍고, 매일매일 새로운 책 볼 만한 게 무엇이 있는지 검색해서 도서관에 없는 책은 주문하거나, 도서관에 있는 책이면 거리에 상관없이 상호대차를 통해서라도 악착같이 구해다 놓는 나의 노력도 한몫 했을 터다.



처음엔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몰라서 저학년 책 중 방귀, 똥 같이 아이들이 가볍게 읽을 만한 주제의 가벼운 책과 김영진 같은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작가의 그림책 중심으로 골랐다면 이제는 도서관 위치를 달달 꿰뚫는지라 아이의 흥미에 따라 생활동화, 명작동화, 고전동화를 적당히 고르고 거기에 아이가 읽었으면 좋겠을 법한 책들도 한 두 권씩 슬쩍슬쩍 끼워 넣는 여유까지 생겼다. 처음엔 자기가 관심 있는 책만 보던 아이도, 언젠가부터는 "엄마 추천해줄 만한 책 없어?"라고 물으며 내가 추천해준 책에서 기분에 따라 골라 읽곤 했다. 물론 읽은 책 권 수가 늘어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만의 동화책 유형을 찾아나가다 보니, 역사동화를 좋아하는 나와 취향이 달라 서로 이게 재미있다며 다투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이와 동화책을 공유하는 관계가 되다 보니  나와 아이 모두 좋아하는 작가나 동화의 시리즈물이 나오면 재빠르게 주문해서 제일 먼저 읽곤 했다. 그럴 때면 아이는 따끈따끈 초판 작가 사인본이라며 즐거워하기도 했고, 그 덕에 밥상머리 대화의 내용도 훨씬 풍성해졌다.



여기까지는 아이의 독서로 인해 변화된 긍정적인 변화였다면 이젠 개선해야 할 점을 짚어보고 싶다. 독서가 무슨 나쁜 점이 있냐며 혹자는 말할지 모르겠다. 저 엄마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책 한권만 읽으라면서 이젠 책 읽는 게 나쁘다고 얘기하다니, 초심을 잃은 거 아니냐며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성적으로 귀결되는 암기식 공부가 아니라 책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더 넓은 범위의 독서를 즐겼더라면 내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아이에게 늘 말했지만 내가 시험 준비를 위해 늘 달달 외우곤 했던 "이순신-난중일기"라는 단어 넉 자가 아니라 그 내용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면 세상을 보는 나의 시야가 조금은 더 넓어졌을 것 같은데, 아이는 시험에 매몰되기 전에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공부는 시기가 있다. 기초가 있어야 조금 떨어지더라도 나중에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기초지식조차 없는데 나중에 집을 짓고 싶다며 급히 뚝딱거려봐야 방법을 몰라서 금방 포기하게 될 테다. 평소에 건축에 대한 기초지식을 차근차근 갖춰놓고 직접 설계를 해 본 경험까지 갖춰놓아야 나중에 집이 급히 짓고 싶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그동안 쌓아왔던 지식과 경험을 떠올리며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기초지식과 설계까지 한꺼번에 익히는 것보다 오랜 기간 꾸준히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실수를 줄일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이듯, 공부도 그 시기마다 거쳐야 할 필수 코스만큼은 탄탄히 밟아두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 영어는?

초4 아이인데 이제 색깔과 계절 등 기초 단어만 떠듬떠듬하는 한다면 기초지식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교과서를 최소한의 기초지식이라고 본다면 내 아이는 기초지식조차도 미달이라 집 지을 준비는 시작조차 못한 것일 테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하려던 것이 계속 아이 눈치만 보다 밀렸고,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겠다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영어 학습을 소홀히 한 점은 아이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물론 아이에게는 늦었다는 얘기는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가끔은 아이를 남들처럼 영어학원에만 제 때 보냈어도 지금 아이가 학교 영어 수업에서 이리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학교 수행평가 때 원어민 교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 못 했다는 아이의 말에 내 잘못을 통감했다. 적어도 영어 노출만큼은 학원이든 책이든 꾸준히 시켰어야 한다는 후회도 든다.(물론 이마저도 아이 앞에서 내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어공부를 뒤늦게 했어도 원어민만큼 뛰어난 언어를 구사하는 영어 학습 전문 강사들의 책이나 유튜브 강의를 들어보면 내 아이가 늦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전문가의 말인즉슨, "국어를 잘하는 아이가 또 다른 언어인 영어도 잘한다."는 것.


내 아이가 책을 풍성하게 읽으면서 어휘력과 문해력을 키운다면, 영어를 남들보다 조금 뒤늦게 시작하더라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믿고 싶다.



4학년 1학기 동안 하루 세장씩 문제집을 풀며 3학년 2학기 복습부터 시작해서 4학년 1학기 분량까지 마친 아이는 학기 막바지 제법 자신감에 차 있었다. 수학 시험을 보아도 예전처럼 낮은 점수가 아니었던지 아이는 엄마에게 점수를 알려주면서 문제집 풀이 덕분에 수학 시간이 즐거워졌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앞전에 말했듯 여름방학 내내 문제집과는 담쌓는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아이는 어느새 1학기 때 배운 나눗셈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선생님의 백신 접종 때문에 동영상 수업만을 진행하던 날, 나는 아이의 학습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려고 아이에게 오늘 동영상 수업 때 풀이한 문제지를 가지고 오라 했다. 오랫동안 학습을 쉬었기에(放學) 당연히 못 풀고 빈 곳이 듬성듬성 보여야 할 문제지에는 깨끗하게 답이 적혀있었다. 채점했냐 물으니 채점도 동영상 통해 다 했단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해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눗셈이라 분명 지저분하게 계산식이 적혀있어야 할 부분마저 몫과 나머지가 깨끗하게 적혀있었다.


아이에게 어찌 계산했냐 하니 잠시 당황하던 아이가 암산으로 했다며 거짓말을 한다. (엄마도 암산 못하는 세 자릿수 나누기 두 자릿수 나눗셈이다.) 아이가 암산으로 했다면 정녕 공부가 필요 없는 천재였을 터. 그럴 리 없는 내 아이에게 다시 풀어보라며 새 종이에 문제를 적어주니 아닌 게 아니라 아이는 나눗셈 식을 곱셈식처럼 적어놓고 어찌 계산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다시 캐물으니 역시나 아이는 인터넷에서 계산자료를 참고해서 답만 적었노라고 이실직고했다.

나는 아이에게 차라리 못 풀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다.

사실 공부는 아이 몫이기에 내가 화낼 필요는 없다. 공부를 못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훗날 아이가 직접 지게 될 테니 지금 공부를 하느냐 안 하느냐는 아이가 결정하도록 하는 게 맞을 듯하다. 게임을 하면서 학습이 밀린 것도 아니고, 책 읽는 게 좋아서 학습이 밀렸다는데, 그걸 알고 있는  나 또한 왜 안했냐며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 공부 그릇이 부족한 아이는 아니니 당장 고픈 책들을 읽어치우고 나서 그 책에서 읽은 내용을 교과서에서 보게 되는 기쁨을 알게 되는 날 부족했던 학습 수준을 단번에 뛰어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아이의 짧은 경험으로 볼 때 단기적으로는 독서가 학습에 획기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닌 듯하다. 물론 책을 읽게 되면서 아이가 국어시간을 예전보다 흥미로워하게 되었고, 단원평가에서 95점을 맞으며 반에서 1등 했다며 자랑하기도 했지만 자신감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효과일 수 있기에 독서의 직접 효과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장기적으로 아이의 사례를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책 육아로 아이의 학습 성적이 올랐다는 책들도 있는 걸 보면 수업을 겨우겨우 따라잡을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이를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어야 할 것 같다. 지랄 발랄 하윤맘이나 달팽이 책 육아의 저자 모두 책으로 아이를 키운 책 육아의 산증인들이며,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롯이 책으로만 아이 셋을 영재로 키웠다는 서안정 작가의 사례 등, 학원을 통해 빠른 학습효과를 노리는 엄마들이 대다수인 현실 속에서도 나처럼 문제집과 학원의 힘이 아닌 책의 힘을 믿는 별종 엄마들도 아주 없지는 않은 듯하다.



최근에 한 1타 수학강사가 7~8년 내에 수능이 없어질 수 있으니 학생들에게 너무 수능에 매몰되지 않도록 경고한 바 있다. 1년에 200억을 번다는 둥 청담동 모처에 집이 있다는 둥 하는 걸 보면, 대한민국 엄마들과 학생들(?)이 얼마나 학원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내 첫 근무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교육열이 심하다는 대치동이었다. 업무 처리 속도가 늦어 쌓인 문서를 처리하느라 녹초가 된 채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하곤 했는데, 퇴근하고 보면 늘 버스정류장 앞은 버스 조차 정차할 수 없을 정도로 승용차로 꽉 차서 말 그대로 대란이었던 기억이 난다. 버스정류장 조차도 학원이 끝난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부모 차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대치동 사거리는 때아닌 정체로 아수라장이었다.

 퇴근길에 버스가 정차하지 못해 위험천만하게 승용차들을 헤치고 많은 학생들과 함께 3차로에서 버스를 타며 빵빵대는 버스에도 뻔뻔하기 그지없던 학부모들에게 속으로 엄청 욕을 했더랬다. 그놈의 학원이 무엇이길래 버스를 타며 점잖게 가는 학생들의 안전마저도 위협하는 것인가.

아마도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낳으면 학원에 매몰시키지는 말자라고 다짐했던 게...



이런 엄마의 신념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학습지나 학원 숙제로 인한 걱정은 여전히 하고 있지 않다.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학원 셔틀버스가 오면 재빠르게 학원 셔틀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 아이의 동화책을 같이 읽다 보면, 대부분의 동화책 속 아이들은 당연스럽게도 학원을 한 두 군데 이상씩 다니고 있었고, 학원 때문에 엄마와 갈등을 빚는 내용의 생활동화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낯선 풍경인 것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엄마 입에서 놀이터에서 그만 놀고 학원 가자 할 일은 없을 테니....



난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의 학습에 집착하는 대한민국 엄마.

일전에 '공부가 뭐니'라는 프로그램에서 유명 연예인의 아이들 세명의 학습지와 학원을 합해 보니 34건이었더라는 내용을 본 적 있다. 아이 한 명당 무려 11곳 이상의 학원(학습지 혹은 과외)을 다니고 있었고, 가장 어린아이-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작은 아이 또래 혹은 1~2살 위였던 것 같다.-  조차도 수학 학습지, 한자 학습지, 국어, 영어 등 밤까지 계속되는 학습 시간으로 괴로워했다. 5살인 작은 아이는  또래보다 비교적 빠른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한글은 아직 시작도 안 했고, 관심이 많아 영어책을 종종 읽어주기에 영어 단어 몇 개 정도 아는 수준이다. 한글도 모르는 아이가 국어니 수학이니 학습지를 풀 수는 없으니 그 연예인의 아이가 또래에 비해 얼마나 수준 높은 학습을 강요받고 있는 짐작할 만하다. 게다가 그 아이는 수학 면에서 남들보다 높은 성취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수학 학습지 하는 걸 벌써부터 싫어하고 있었다. 아무 걱정 없이 놀아야 할 아이는 이른 나이에 학습을 강요받으며 학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난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늘 말한다. 공부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는 말라고. 하지만 그로 인한 책임은 오롯이 네 몫이라고.

어느 정도까지는 부모가 아이를 이끌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놀이로 인한 아이의 행복, 자존감 회복이 우선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실수, 나의 무관심으로 바닥까지 치달은 아이의 자존감을 어떻게든 살려주고 싶다. 학습에 대한 부담감을 주면서 아이와 다투기보다 차라리 나는 평화를 택하고 싶다. 그것이 설사 훗날 부메랑처럼 아이에게 더 큰 학습 부담으로 다가온다 치더라도, 그건 아이가 직접 깨닫고 고쳐나가면 될 것이다. 까다로운 내 성격이 아이를 학습으로 몰아넣고도 남을 거라 오해하곤 하던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내 신념을 들을 때마다 의아하다며 고개를 내젓곤 한다. 교우관계도 학교생활의 추억조차도 내던지며 학교에 똑떨어진 외딴섬처럼 오롯이 점수 1점에 울고 웃었던 그 시절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나의 깊은 속사정을 알 리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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