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Earth Aug 29. 2022

나는 조선의 소년 비행사입니다.

천황에 충성하던 가미카제의 숨겨진 이야기.(한정영 지음/다른)

이 잔인한 나라가 너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평생 가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보내라.


소년은 멋진 비행사가 되고 싶었다. 아픈 어머니의 약값을 보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차곡차곡 훈련을 받으며 비행사가 되는 날만을 기다렸다.

'정신 나간 놈. 아직도 모르겠어? 왜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조선사람들 뼛속까지 발라먹을 놈들이야. 그런데 네가 아라와시가 되겠다고?'

'평생을 병신으로 사는 이 애비를 보면서도 몰라? 왜놈들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해'

'네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왜냐고? 너는 조선사람이니까!'


아버지는 소년이 비행사가 되는 걸 극렬히 반대했다. 삼일운동 때 일본인들에게 두들겨맞아 영영 못쓰게 된 한쪽 다리 때문에 그러는 걸까? 소년은 의아했다. 하지만, 일본사람이 차린 전당포에서 일하는 수금사원으로서 악착같이 사람들의 밀린 돈을 받아내며 왜놈 다 되어간다며 손가락질 받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라온 소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왜.


소년, 조안은 아버지의 반대를 뚫고 누나의 도움으로 일본의 비행병학교에 입학한다. 소학교 시절, 또래보다 자신이 만든 글라이더가 더 멀리 나는 걸 보며 일본인 선생의 칭찬을 받은 조안은 자신이 직접 하늘을 비행하는 걸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의 비행병 학교로 도피하듯 떠난 조안. 정말 바라고 바란 일이었기에 수백발이 넘는 실탄 사격훈련에서도 일등을 했고, 자신보다 몸집 큰 생도들이 오십리를 넘기지 못하고 쓰러지던 행군도 4~5등으로 행군 길을 앞서갔다.

'지독한 조센진!'

비행 기초훈련에서는 신이 나기까지 했다.

생도가운데 가장 멀리 날았고, 교관에게서 칭찬을 받았다. 정비훈련, 통신 훈련에서도 그의 성적은 늘 최상이었다. 누나가 마련해준 도쿄까지의 여행 경비에는 엄마의 폐병에 쓸 약값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비행사가 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던 아버지 앞에 보란 듯이 비행사로 당당히 서고 싶었다. 비행병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앞두고 비행사로 발령날 것이라고 기대했던 그에게 떨어진 소식은

'조안, 정비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조안을 괴롭히던 다카하라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은 들었다.

'조선인은 아라와시가 될 수 없다.'

'정비병도 조센징에게는 영광이니, 천황 폐하께 감사하도록 해!'

감사할 일이야 있겠냐마는 조안은 별수없이 그 뜻을 따랐다가 조용히 때가 되면 조선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칭다오의 비행장에서 조안은 정비병으로서 '하늘의 천황'이라 불리우던 전설의 비행사 이토준야의 비행기 '제로센'을 정성껏 돌본다.

이토준야 또한 조안을 무척이나 아끼지만, 이들에게 무시무시한 소식이 들려오니 이른바 '특공'

우리에게 '가미카제 특공대'로 잘 알려진 바로 그 특공대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천황에게 충성하라!'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이 참전하고, 연합군의 공세가 날로 심해져 일본 패전의 기운이 확산되던 1945년.

낡은 일본의 전투기로는 연합군의 최신 무기를 뚫기 어려운 일본 본토에서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구성해서 적의 함모를 향해 돌진하여 폭파시킴으로써 본토 공격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한 작전을 펼치게 된다.

16살의 소년병이었던 조안이 속한 부대에서도 '신풍특공대 지원서'를 받겠다는 공고가 나붙게 되고, 부대 내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비행사는 그러면 언제 탈출합니까? 제로센은 비행사가 탈출하려면, 조종석의 구조상..."

"제가 가장 먼저 특공에 지원하겠습니다. 천황폐하와 조국의 신민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겠습니다....(중략)...나는 열렬히 희망한다. 라고 쓸 것이다! 너희들은 어찌할 것인가?"

다카하라의 자신있는 말에 몇몇 특공을 자원하는 비행사들이 앞으로 나서게 되고, 암묵적으로 특공에 불응하는 비행사를 천황에 불복하는 것으로 매도하는 분위기 속에 조안도 어쩔 수 없이 특공대를 지원하게 된다.

그 뒤로 비행사로서 꿈꾸던 제로센을 타게 된 조안. 하지만 가슴속에는 늘 풀리지 않는 불안과 의문이 있다. 자신을 챙겨주던 이토준야에게 왜 죽음을 강요하냐며 반항하면서 활주로로 뛰쳐나가고, 그 순간 부대에 치솟던 미군의 폭탄세례. 공습이다!


죽음으로 뛰쳐나가려던 조안을 살려낸 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 상사 이토준야였다.

그저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고자 아끼던 부하들의 특공을 막지 않았던 이토.

미군의 폭격 속에 아수라장된 내무반이 가까스로 수습되었지만, 특공대원들은 동요한다.

각자의 마음 속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숨긴 채, 천황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가장하며 훈련을 하던 다카하라일행이 특공에 발탁되었으나 특공에 실패하고, 까마득한 후배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홀로 돌아온 다카하라를 향해 부대원들은 비난을 퍼붓는다.


어둠 속에서 흐느껴 울던 다카하라를 발견한 조안.

다카하라의 엄마가 조선인이었기에, 조선인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애써 더 일본 신민 행세를 했던 다카하라

의 아픔을 알게 된 조안은 특공에 커다란 의문을 품게 된다. 존경했던 전설의 비행사 이토준야의 수제자로서 무수한 특공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특공 명령만 남았던 조안.

결국 폐병으로 죽은 어미의 약값으로 비행사가 되려던 꿈이 죽음의 특공 비행사로 끝나야 하는 것인가.

명령에 떠밀려 특공을 떠나게 된 조안. 자신을 믿어주던 상사 이토준야, 그리고 첫 특공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후배들을 죽음으로 몬채 쓸쓸히 돌아와 빈축을 산, 자신의 반쪽이 조선인이라던 다카하라와 함께였다. 일본 신민으로서의 식민교육에 익숙했던 조안이 '조선인'이라는 걸 인식하게 된 순간, 조안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조선으로 돌아가자!'


비행기를 돌린 순간 특공대원으로서 일본 본토로 향하던 조안의 비행기를 본 이토 준야의 경고 사격을 받는다. 조안의 뜻을 이해한 다카하라와 함꼐 경성으로 비행기 핸들을 돌리며, 이토준야의 사격을 피하며 조안을 보호하려던 다카하라의 비행기가 이토준야의 사격으로 떨어지는 순간, 다카하라는 조안을 보며 웃었다.


"누나, 미안해. 돌아간다고 약속했는데.... 아버지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해줘. 엄마에게는 내가 가서 말할게."

조안은 조종간을 꽉 잡고 조금 더 날았다. 어금니를 물고 속도를 냈다.

이토준야의 비행기르 확인하고, 급격히 회전하는 순간 조안은 이토준야의 비행기가 흔들리는 순간, 이토준야의 비행기쪽으로 더 기울여 그의 프로펠러 쪽으로 들이 받았다.

이토준야의 비행기가 회전을 하며 수직으로 바다를 향해 떨어져내렸다.

'이토 소대장님, 어디서든 다시 만나지 말아요.'

조안은 보았다. 파랗고 파랗기만 한 바다 저 앞으로 은빛 물비늘이 끊임없이 햇살을 따라 반짝이는 모습을.

오래전부터의 꿈이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날아온 수많은 불꽃이 조안에게 쏟아지고, 조안의 비행기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조안은 비로소 꽉 붙들고 있던 조종간을 놓았다. 온몸이 편안해졌다.

'그래요, 나는.....

나는 조선의 소년 비행사입니다..'




읽을 때마다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비행사를 꿈꿨던 한 소년이 비행사로서의 꿈을 이루기까지의 얼마나 노력했을까.

수많은 고난과 비웃음을 뚫고 비행사로서의 꿈을 이룬 듯 했지만, 자신이 꿈꿔왔던 비행사의 화려한 귀환 세레모니 뒤에 숨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며 과연 이 길이 맞는 길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다. 철저히 일본신민으로서 자라나 일본의 신민으로서 미국을 공격하려던 소년은 뒤늦게서야 자신이 조선인임을 깨닫고 다카하라와 처음이자 마지막 조선말을 주고받고 특공으로 향하던 그 때, 자신을 돌봐준 이토준야 또한 조선을 잡아먹은 전쟁광 일본의 충성스러운 군인에 불과할 뿐, 인간적인 면모로 존경할만한 가치가 없으며 자신들을 일본의 제국주의 도구로만 여겼음을 깨닫게 된 순간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자신이 존경했던 그 사람만 보고 꿈을 향해 달려왔던 조안.

존경했던 그 사람 또한 일본의 꼭두각시. 자신이 존경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미워해야 할 대상임을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영웅의 죽음과 함께 마음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을 보며 허탈해졌다. 클라이막스로 끝없이 치닫다가 갑작스런 뜻밖의 결과에 가슴이 탁... 답답해지며 먹먹해진다.


이 책의 작가가 대단하다고 느꼇던 건, 비행사들의 심리묘사를 아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잘 버무린 비빔밥을 손수 떠먹여주어 밥알 하나하나, 재료하나하나의 느낌이 섬세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떠먹여주는 비빔밥 속의 맛만 조용히 음미할 수 있도록 섬세히 배려해주는 요리사같은 느낌? 다카하라도, 조안도 결국은 일본이라는 거대한 세력 속에 매몰되어가던 연약한 개인이었을 뿐이다. 16살 아직 어린 그들에게 나라가 쥐어준 임무는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무거웠을 터. 임무와, 개인적인 감정 간의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전쟁의 긴박한 상황을 심장 쫄깃하게 표현한 한정영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면서도, 나라 없는 비극으로 인해 스러져간 수많은 이름 없는 우리나라 조상님 생각에 괜히 마음이 숙연해진다.


5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교과서 연계차원에서 최초는 아니지만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우리나라 비행사들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느 것도 좋을 것 같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나는 조선의 소년 비행사입니다.'를 적극 추천한다.


추가) 최근 한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원이었던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1945년 8월 14일, 특공 명령을 받아 15일 특공에 나서려 했다는 인물. 그 분(?)은 자신의 가족들이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특공에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다짐을 하고 특공에 나서려 했지만, 천황의 중대한 발표와 함께 명령은 무기한 보류되고, 흐지부지 부대가 해체되었다 했던가. 그 분(?)은 이 책 내용처럼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서로를 챙겨주는 아름다운 광경 따위는 없고,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던 내무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이 너무 덤덤하게 기술되어 있어 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붙임으로 적어둔다.

매거진의 이전글 5~10세 육아는 책읽기가 전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