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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4. 2022

독서육아를 시작하다.

내 휴직의 첫 번째 목표, 아이를 책 속으로 인도하기

새해 첫 날을 보내고 평일인 둘째 날.

코로나와 함께 집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져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려하는 첫째를 집에 놓고 둘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며 나는 3군데의 도서관을 돌면서 남편이 다니던 교육청 도서관에 회원가입을 하고, 그 동안 쓰지 않아 버림받을 뻔했던 구립도서관카드를 다시 빼들었다. 무슨 깊은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언젠가 아이와 구청 도서관을 갔을 때 보았던 "달팽이 책육아"라는 책에서 본 것이 기억에 남았을 뿐이었다. 그 책에서는 책을 싫어하는 아이와 상관없이 몇 군데의 도서관에 들러 책을 몇 십권씩 빌려 집에 풀어두었다는 글귀가 있었는데, 일하던 시절인지라 휴직하면 해보고 싶다고 무의식속에 생각했던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따라서 기대도 있을 리 없었다. 나에게는 둘째를 본능적으로 미워하며 코로나블루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삼춘기를 보내고 있던 첫째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된다는 절박감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던 그 때. 나 또한 집 떠났다가 몸과 마음 모두 지쳐 다시 돌아온 탕아처럼 예전 휴직 때 부던히도 찾다 잊혀져간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책을 고르는 건 참으로 어려웠다. 아이는 곧 있으면 4학년인데, 여전히 만화책만 찾았다. 작년 한 해, 홀로 마지막 한 아이까지 돌아가 오롯이 혼자 남은 돌봄교실에 자신의 유일한 벗이 되어주었다던 만화책. 이젠 질려버려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그 곳이라지만, 아이에겐 돌봄교실에서 본 만화책이 유일한 행복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학습만화를 빌려갈 수는 없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읽지 않을테니 그나마 책을 잘 보는 작은 아이를 위한 그림책과, 그나마 큰 아이가 읽을 만한 김영진 그림책, 글밥이 적어 그나마 잘 읽곤 했던 만복이의 떡집처럼 철저히 저학년 책 위주로 골랐다.



세 군데를 돌며 책을 고르니 고른 책만 수 십 권이다. 아마 50권 쯤 되었던 것 같다. 이리 많이 고를 줄 모르고 평상시에 들고다니던 작은 가방만 가져온 나는 난감햇다. 결국 가방에 한 가득 꽉 차다 못해 양 손에 올리고 목으로 받치며 힘겹게 가지고 간 책을 거실 바닥에 쏟아부었다. 아이는 이게 뭔 일인가 싶어하면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난 아이와 상관없이 책을 한 권씩 한 권식 빼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매일매일(지금 와서이지만 매일매일은 권장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가 쳐다도 안보는 책을 갈아대며 한 권이라도 관심가져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어쩌면 도서관으로 피신하며 잠시나마 아이와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와는 늘 부딪치니까 서로 덜 보면 덜 싸우지 않을까 싶기도 했을테니...처음책을 빌려오던 날 아이에게 말했다.  "책 한권 읽으면 10분의 게임 시간을 주겠노라...."

1월 말쯤, 되지도 않을 것 같은 나의 책보따리상이 처음으로 빛을 발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게임시간의 유혹에도 쉽사리 줄글책을 보지 않던 아이, 멍~하니 책을 바라만 보던 아이가 드디어 거실에 있던 책 무덤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빼들었던 것.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책에서 떨어진 고양이 아니면 책으로 똥을 닦는 돼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멀리서 집안일 하는 척 지켜보며 흐뭇해했던 기억이다. '이게 정말 되는구나!'

그리고 2월 중순, 아이가 드디어 "책 사주면 안돼??"라는 말을 꺼냈고, 나와 온라인서점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방학 마지막 주, 엄마 생일 소원이니 선물로 자전거 한 번만 같이 타달라는 부탁에 집돌이 큰 아들의 무거운 엉덩이가 드디어 떨어졌다. 쌀쌀한 날씨지만 따릉이를 타고 한강을 내달렸다. 모처럼 동생 없이 엄마를 오롯이 차지할 수 있었던 기쁨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자전거로 한강을 지나 가까운 공원까지 갔다 오는 2시간 반동안 너무도 행복해했다. 한동안 보지 못한 미소도 보여주고, 나와보니 괜찮긴 하다며 시크한 말도 날려주었다. 아이의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방학 마지막 즈음에 알게 되어 바로 새학기 돌입하는 바람에 여름방학 전까지 자전거를 탈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 아쉽긴 하지만 아이는 코로나블루를 조금씩 극복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아이의 새학기와 함께 나도 바빠졌다. 아이가 등교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집안 살림을 들었다 놨다, 밀린 집안일을 하며 그동안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동선을 이리 저리 바꿔놓곤 했다. 4월 즈음엔 대청소와 함께 베란다에 쌓여있던 잡동사니들을 중고마켓에 다 처분하고 베란다를 서재로 꾸미기도 했다.  어느새 책이 좋아져 엄마에게 도서관 언제가냐며 00책 좀 빌려달라는 말도 하게 된 큰 아이. 둘째가 잠들면 둘이서 이불 덮고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 속에서 아이는 시인도 되고, 세상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게 되었다. 엄마는 동화작가가 꿈이라며 글을 써보겠다고 새벽부터 낑낑대던 엄마를 보다못해 노트북을 넘겨받아 글을 쓰던 아이. 쓰던 동화는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그 일을 계기로 작가를 꿈꾸게 된 아이는 베란다의 그 작은 공간을 너무도 좋아했고, 아이가 수업중엔 나만의 독서공간으로, 수업 후엔 아이와 나의 독서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따스한 햇살에 둘이 공유할 수 있는 책이 있으니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던 것 같다. 여전히 동생을 증오하다시피 미워하고, 그 때문에 우악스럽게 서로 헐뜯고 문을 쾅 닫고 엄마를 노려본다던가 주먹으로 치는 등 분노 조절하는 것을 어려워하기는 했지만,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동안의 지긋지긋한 전쟁의 끝이 조금씩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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