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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3. 2022

아이, 이른 나이 홀로서기를 시작하다.

도서관에 혼자 가다

요즘 아이는 수업이 끝나고 숙제도 끝나면 내 눈치를 살살 보며 묻곤 한다.


 "오늘 도서관 갈 수 있어?"

 "어.. 글쎄..OO이 상황 좀 봐야할 것 같은데?"


한 달 전 아이와 버스 타고 갔다가 대출한 책을 엄마 보고 들라고 해서 한바탕 아이와 다툰 적 있었는데 그 그 억이 나쁜 기억이었던지 그 뒤로는 도서관 가자는 얘기를 안 하기에 속으로는 아차 싶었었다.(달팽이 엄마가 그랬었다. 도서관 가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좋은 기억만 심어주라고.) 


다행히 최근에 다시 기분이 풀어져서 한 일주일 전부터 도서관에 다시 가게 되었는데, 이번엔 가기 싫다는 둘째가 문제였다. 도서관은 답답해서인지 작년까지만 해도 두 시간은 거뜬히 앉아서 책을 수북이 쌓아두고 읽던 녀석이 이젠 들어가기 조사 싫어했다. 달팽이 엄마(달팽이 책 육아 저자)는 도서관이 지루해져 집에 가자고 할 때는 망설이지 말고 나오라 했는데, 책을 한창 읽고 있는 큰 아이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자 기다리자 했던 게 작은 아이에게는 꽤나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언젠가부터는 도서관 가자 하면 집에 있겠다며 버티기도 하고, 억지로 데리고 가려고 하면 펑펑 울면서 가기 싫다고 할 정도로 싫어했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가 가는 도서관 앞에 새로 생긴 놀이터가 있어 큰 아이가 책을 읽는 동안 작은 아이를 달래 가며 놀이터에서 실컷 놀게 해 주었다. 하지만, 요놈도 꾀가 생겨 비가 안 오는 날에는 순순히 따라나서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 도서관행을 포기하곤 했더랬다. 그런데 오늘은 동생의 성격을 알았는지, 작은 아이를 하원 시켜 돌아오니 큰 아이가 혼자서도 가겠다며 준비하고 나섰다.


"엄마, 갔다 올게."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마트에도 혼자 가서 그토록 좋아하던 사슴벌레를 사 오던 아이는, 지난번 엄마와 도서관에서 대판 싸우고 혼자 씩씩거리며 집으로 갔던 이후로 도서관에 곧잘 혼자 오곤 했다. 물론 도서관까지는 버스로 혼자 오고, 우리는 어린이집에서 도서관으로 가서 만나곤 했으니 혼자 갔다 혼자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터. 하지만 보고 싶은 곤충 책이 많다며 이젠 스스럼없이 버스카드를 챙겨들고 나가는 큰 아이가 대견하기만 하다. 


물론 도서관에 가서 보면 학습만화책을 뒤적이는 모습도 가끔 보인다. 하필이면, 아이들이 앉아서 책 볼 수 있는 자리에 학습만화가 놓여 있고, 다른 책들은 신발을 신고 나가야만 책장이 있다보니, 손쉽게 학습만화에 손이 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다른 도서관으로 가고 싶지만, 우리구 소재 대표 구립도서관이라 소장도서가 많기도 하거니와, 밖에 놀이터까지 갖추어져 작은 아이까지 데리고 가려면 이곳만한 곳이 없기는 하다. 


잠깐 학습만화를 보다가도 다시 곤충책을 찾아 뒤적거리는 녀석을 볼 때마다, 그동안 저 모습 하나를 보기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치며 뿌듯해지곤 한다. 연초, 도서관 가기를 거부하던 아이, 책 읽기를 어려워하던 아이가 이젠 엄마가 가자 하지 않아도 스스로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을 스스로 처음 찾던 날에는 늘 엄마가 골라서 빌려온 책만 읽던 습관에 젖어 스스로 책 고르기를 어려워하던 녀석이었지만, 이젠 어느 칸에 어떤 책이 있는지, 자기가 좋아하는 책 코너쯤은 금방 찾는다. 


영어책을 줄줄 읽고, 어려운 지식책도 쭉쭉 읽으며 다양한 독후활동까지 화려한 블로그를 가끔 보곤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아이는 이제 시작이구나 싶기도 하다. 조금만 더 빨리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 아이는 실패를 이미 겪어보았고, 작은 성공의 경험이 얼마나 짜릿한지도 알고 있기에, 스스로 위기가 올 때마다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마음만은 누구 못지 않으리라 믿는다. 


여전히 5살짜리 아이마냥 둘째와 투닥거리며 기싸움을 하고, 씩씩거리는 등 감정조절에 유독 약한 어린 아이지만 이 또한 조금씩 나아지리라. 

아이는 그렇게 조금씩 엄마 품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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