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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3. 2022

슬럼프는 또 다른 출발점을 만든다.

코로나 하루 확진자가 다시 2000명을 돌파했단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서울 확진자가 연일 7~800명을 돌파하고 있다. 티브이가 없어 세상사 뉴스거리가 가장 늦게 닿는 우리 집이지만 매일같이 울려대는 안전문자로 코로나 확산세가 다시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상이 된 듯 아이들은 이제 코로나와 상관없이 학교와 어린이집을 가고 나는 추석을 앞둔 마지막 나만의 휴식시간.

청소기를 돌리고 두 시간 남짓 남은 나만의 휴식시간을 보내려 평상시처럼 책을 들지만 요즘 심취해서 읽고 있는 독서 육아서가 웬일로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독서를 좋아하는 큰 아이를 위해 독서를 학습에 연계시킬 방법을 찾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데다, 요즘 사슴벌레 장수풍뎅이에만 관심 있는 아이는 곤충 관련 책이 아니면 그동안 잘 읽던 책도 잘 안 읽고 있었다. 독서 육아서가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꾸준한 책 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열린 질문. 하지만 아이도 나도 실천하고 있는 건 꾸준한 책 읽기 말고는 없었다. 철저한 암기와 정답이 있는 문제에 길들여진 우리 세대에서 열린 질문을 하며 아이를 학습으로 인도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독서 육아서 수십 권을 쌓아놓고 틈 나는 대로 읽었지만 여전히 나는 혼돈 속에 있었고 길은 보이지 않았던 것. 



이럴 땐 책이 아닌 다른 것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걸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차분하게 마음을 잡고자 글을 써본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아이가 이틀 전부터 자기 주도 학습을 다시 시작했다는 것. 이게 과연 자기 주도 학습인지 여전히 의문은 남지만, 아이는 한 달 동안 정해진 시간 40분 동안 그날 해야 할 공부를 스스로 하기로 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작년 한 해는 정말로 힘든 한 해였는데, 아이는 작년 한 해를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부끄러웠나 보다. 

모처럼 둘째 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던 시간, 독서 육아서를 읽다가 큰 아이와 이야기를 하며 내년 하반기 엄마가 복직을 했을 때 아이의 공부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엄마가 복직하면 다시 3학년 때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갈까 조금 걱정된다고 말하니, 큰 아이가 3학년 때 일은 부끄러우니까 더 이상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책에서 읽은 내용 중 아이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골라서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그 책에서는 정해진 시간 동안은 무조건 앉아있도록 하면서 공부습관을 잡으라고 하였지만, 숙제를 하라 하면 오랜 시간을 죽죽 늘어지기만 하는 큰 아이에게는 오히려 숙제를 빨리 끝내고 자유시간을 갖도록 하는 방법이 나을 듯했다. 해서 아이에겐 최대 40분 내에 그날 할 일을 다 끝내면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자신만의 몫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공부환경 조성을 위해 수업이나 숙제를 마치고 나서 책상정리는 바로바로 하도록 하고, 2주에 한 번 씩은 방청소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을 무사히 보내고 나면 스스로에게 보상을 하도록 했다. 아이는 어떤 보상을 스스로에게 선물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느라 아직 보상을 정하지도 못했지만 지난 이틀 동안은 다행히 자신이 계획했던 것을 끝냈다. 하루는 문제집 두 장, 하루는 일기 한 편.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내가 책 읽는 것도 잘했으니까 이번 계획도 잘할 거라고 믿는 거지?"

"응. 한 달만 꾸준히 한다면"

"하지만 책에 재미를 붙이는 것도 3개월 정도 걸린 것 같은데?"

"맞아. 공부는 책처럼 재미있지 않을 수도 있으니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지. 하지만 책도 한 달 동안만 해보라고 했었잖아. 이번에도 마찬가지지."

"아. 맞다. 독서 시작할 때도 게임 시간으로 환산했었잖아. 엄마, 그거 신의 한 수였어!"

"그것도 육아서에서 본 거였는데 생각보다 네가 더 잘 따라와 줬어. 하하."

"이제 게임은 관심 없는데 보상은 뭘로 정하지? 사슴벌레 입양?"

"원래 마트에서 사는 사슴벌레, 엄마는 반대지만 네 스스로 목표를 세워서 보상하는 건 반대하지 않을게."

아이는 이 말에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아이는 마트에서 곤충을 사기를 원했지만, 나는 늘 아이가 "곤충은 마트에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채집이라는 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곤충을 관찰하는 걸 권했다. 마트는 동물들에게는 무척이나 가혹한 곳이니까.)



이번 프로젝트도 아이가 잘해 줄 수 있을까?

아마 시행착오도 있고 아이와의 다툼도 여러 차례 있을 것이다. 늘 그래 왔었듯이.

하지만 아이와 나는 믿는다. 우리에겐 이미 독서라는 성공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3학년 때의 기억이 부끄럽다지만 엄마인 나는 부끄러운 기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3학년 때의 좌절이 없었으면, 지금 이토록 절박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었을 터.

3학년 때 1번, 5학년 때 1번 그리고 중 2 때 1번 주기로 온다는 학업 사춘기.

아이가 3학년 때 극심한 성장통을 겪지 않았더면 5학년 때 내가 복직하면 아이는 또다시 무너질 것이다. 돌보아줄 엄마가 없으니 다시 자유로운 영혼이 되겠지.

하지만 아이는 이미 두려워하고 있었다. 3학년 때,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수업 땐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딴짓으로만 보내야 했던 그날이 다시 올까 봐서 말이다. 우리에겐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훗날 재미없는 학업으로 슬럼프가 오는 날, 아이는 3학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부끄러웠던 만큼, 3학년 때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공부하기 싫고 놀고만 싶다는 부정적 감정보다 앞설 테니까 말이다. 

아이에게 올 상반기 독서의 세계로 입문을 선물한 건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그 작은 성공의 경험이 아이가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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