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참이던 작년, 사슴벌레니 뭐니 계속 사달라고만 하는 아이에게 경제관념을 익히길 바라는 마음에 용돈을 주겠다고 했다. 용돈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이 스스로 그 방법을 선택하길 바랐고, 그런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두 권의 책을 내밀었다. 바로 전은지 작가의 "천원은 너무해"와 김영미 작가의 "내 로봇 천 원에 팔아요". 두 권의 책 모두 용돈으로 천 원을 준다는 설정은 동일했지만 방법은 조금 달랐다. 천원은 너무 해에서는 엄마가 주기적으로 아이에게 용돈을 주었고, 내 로봇에서의 엄마는 집안일을 할 때마다 어음을 발행해서 모은 뒤 용돈으로 환산해주었다. 결국 노력과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동일한 돈을 받느냐 아니면 노력 여부에 따라 더 많은 용돈을 받을 수 있느냐의 차이를 아이가 잘 고민해 본 후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던 것이다.
3학년이었던 그 무렵, 사촌 형아에게서 전수받아 아이는 포켓몬 카드에 열광했고, 포켓몬 카드를 갖기 위해서 엄마에게 무던히도 졸라댔다. 2학년 때는 딱지가 유행이었는데 그때는 작은 종이 딱지가 아니라 한 개에 7천 원을 호가하는 왕딱지에 그렇게도 열성이었더랬다. 아이들 유행은 돌고 돌아 그 옛날 유행하던 딱지와 카드가 긴 세월을 넘어 다시 유행한다는 게 신기하긴 했다. 다소 철이 빨리 들었던 나는 우리 집이 부유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까닭에 사는 장난감보다 집 앞 공원에서 비 빅탄을 한 가득 수집하기도 했고, 조금 더 커서는 좋아하던 연예인의 사진을 사면 연예인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철없던 생각에 받은 용돈을 고스란히 연예인 사진 사는데 써버리기도 했다. (그 연예인은 내가 사준 사진들, 앨범들 덕에 비교적 이른 나이의 가수 은퇴에도 불구하고 평창동 모처에서 알콩달콩 아이를 키우며 잘 살고 있더라.)
나 역시 철없던 어린 시절에 그랬는데 내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싶으면서도 아이에게 원하는 물건을 척척 사주지 않는 건 여느 부모가 그렇듯 아이가 물건을 쉽게 사고 버리지 않는 경제관념을 심어주고 싶어서다. 다행히 내 아이는 어려서부터 사촌 형의 물건과 옷, 책들을 물려받는 것에 익숙해서 새 물건이나 옷 등에 집착하는 일은 없지만, 팽이, 딱지, 포켓몬 카드처럼 또래들 사이에서 없으면 소외될 것 같은 유행 장난감에는 관심을 보이곤 했다. 워낙 장난감을 안 사주는 엄마인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용돈으로라도 사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모를 리 없으니, 경제관념을 익히기엔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초3 아이에게 용돈을 주어 관리를 하면서 자유로우면서도 책임감 있게 돈을 써보는 것도 좋을 듯했다.
돌봄 교실에 쌓여있는 학습만화에 익숙해져 글밥 많은 책을 읽는 걸 아직 힘겨워하던 아이는, 두 권의 책을 읽고 방법을 선택해야 용돈을 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선선히 책을 꺼내 들었다. 사실 평범한 초3 아이가 보기에 무리 있는 어려운 내용이 아닌지라 아이는 처음 시작은 어려웠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더니 쉽게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사실 두 동화책 모두 비슷했다. 경제관념 없이 마구 돈을 써대던 아이들이 어음과 용돈 제도를 통해 실수를 거듭하며 결국 바람직한 용돈 사용법을 익혀가는 이야기로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무난한 책이었다.
아이가 더 재미있어한 책은 '천원은 너무해'였지만 최종 결정은 '내 로봇 싸게 팔아요'에서 나온 어음 제도. 책 주인공들과 달리 물건을 사달라며 마구잡이로 떼쓰는 아이는 아니긴 했지만, 작년에는 뚝섬 아름다운 장터에서 직접 물건을 팔기도 하고,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사는 등 중고로 물건을 사고파는 데 익숙한 아이인지라 내용 면에서 벼룩시장이나 집안일을 통해 용돈을 스스로 버는 이야기가 더 와닿았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