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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Sep 14. 2023

목공, 나무 냄새를 느끼다.

이케아 이바르로 취미생활을 즐기다.

1얼마전 큰 아이의 부서진 식탁의자를 바꾸느라 이케아에 다녀왔다.

혼자 가는 건 처음이었는데, 남편이 휴가일 땐 아이들 모두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보내놓고 둘이 가서 커피도 마시고, 점심도 먹고, 아이 없는 시간이 어색하면서도 모처럼 데이트하는 느낌이었다면, 혼자 목적을 두고 가다보니 살짝 전투적이 된달까. 교체중이라 여기저기 차단줄이 둘러쳐진 쇼룸을 슉슉 지나쳐서 목적지인 주방가구 쪽으로 직진했다. 한참을 이 의자 저 의자 앉아보았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마음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워 결국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와서 저렴한 축에 속하는 소나무 원목 의자 이바르를 들고 왔다.

쇼룸에서 본 의자는 부드러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사포질도 하고 색도 자연스럽게 길들여져 우리가 아는 원목색으로 보였던 것 같다. (새제품은 허여멀건한 나무색이다.)

회사에서 근무할 때, 관내 유휴시설 사용 방법에 대해 논의할 때 그 공간을 목공 설비를 갖춰놓고 아빠와 아이가 같이 목공을 배울 수 있도록 하자고 의견을 냈을 만큼 목공에는 진심이었던 나였다.

 하지만, 내 의견은 가볍게 묵살되었고(어른 대상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게 묵살의 이유였다...)

그렇게 대도시에서 목공을 저렴한 비용에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사실 목공은 꽤나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일단, 목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온라인, 목공소??), 트리머나 전동사포, 집진기, 에어 타카를 비롯한 고급 장비들을 고루 갖추었으며, 널찍한 제작 공간에 전문 선생님까지 갖춘 '저렴한' 배움의 기회를 찾기는 어렵다.

그것도 취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취미로 목공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찾을 수 있는 기회란, 동네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소규모 공방에서 간간히 열리는 DIY 목공 수업이 다인데, 그 마저도 이미 재단된 재료를 껴맞춤해서 색칠이나 그림을 그리는 간단한 작업이 전부다보니 직접 나무를 다루고, 트리머로 다듬고, 먼지를 날리며 사포질을 해서 책장이나 큰 테이블 같은 규모 있는 가구를 제작하긴 어렵다. 그나마 큰 공구가 필요 없고, 기 재단된 목재에 사포질을 하거나 바니시 정도 발라주면 되는 도마, 책꽃이 제작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시골 유학 때, 반 강제(?)였지만 사실은 정말 하고 싶었던 목공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재료비 십 만 원에 엄마들 유학 마을 여섯 명이 같이 참가한 목공 수업.

내가 회사에서 만들어내고 싶었던 그런 꿈꾸던 공간이 그 곳에 있었다.

그것도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청소년 수련관 안에...

여담이지만, 그 곳에서 우리는 내가 늘 꿈꾸던 아빠와(정확히는 가족과) 함께 하는 목공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왜 대도시에서는 그 많은 유휴공간에 이런 시설을 갖추기가 어려운걸까....

수요는 오히려 더 많을 것 같은데 말이지.)


5주 정도의 과정이었지만, 내 목공 취미에 불을 붙이는 데에는 충분한 기간이었다.

늘 마을에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던 나였지만, 엄마들과 함께 매주 빠지지 않고 목공 수업에 참여했고, 수업은 너무도 즐거웠다. 다소의 잡음은 있었던 모양이지만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공간이 주민에게 열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고, 내가 그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으니까.


서울로 돌아와서 한동안 기회가 없어 목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케아에서 들고 온 나무 의자 하나가 나의 목공 욕구에 다시 불을 질렀다.

소나무 그대로의 원목이라 사포질이 필요했지만, 아파트에서 사포질을 할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집 밖에서 하자니, 소음과 분진으로 인한 동네 주민의 민원이 우려되고, 베란다에서 하자니 널어놓은 빨래에 분진이 다 퍼질 것 같았다.(빨래를 걷는다 해도 불가피하게 집안을 왔다갔다하다보면 금방 분진이 온 집안에 퍼질 것이 분명하므로...)


어쩔 수 없이 거친 나무 원목 그대로에 오일 스테인을 발랐다.

오크색이었는데, 도토리로 할 걸... 생각보다 색이 연하게 나온다. 아쉽다. (우리집 식탁은 오크색이다.)

오일스테인은 꽤 금방 말랐지만, 초보다보니 여기저기 얼룩이 져서 썩 예뻐보이진 않는다.

급히 주문한 반광 바니시까지 발라주고 완성했지만 뭔가 아쉬운 이 느낌...

사포질이 안되니 아무리 바니시를 발라도 거칠거칠하다.

(시골서 어렵게 들고온 1200 소나무 테이블은 시골 마당에서 남편과 몇 시간을 부지런히 사포질을 해서 바니시를 안 발라도 보들보들한데 말이지...)

오일 스테인에 바니시까지 구입하니 차라리 고급 의자 한 개 사는 값보다 비싸졌다.

그냥 모처럼 목공을 즐긴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려나보다.


회사로 돌아가면 다시 한 번 신규사업으로 목공 공간을 만들어보리라!!

아이들에게도 손가락 게임보다 손으로 못과 나무를 직접 다루며 얻는 성취감이 더 클 테니까.

(요즘 트렌드에 역행하는 거라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난 늘 트렌드에 역행하는 사람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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