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관장님 강연을 들으러 갑니다
어렵게 어렵게 이루어진 올해 첫 휴가입니다.
큰 아이가 이정모 관장님의 강연이 듣고 싶다고 해서 부랴부랴 신청했는데, 요즘 업무가 많아 하마터면 휴가도 못 낼 뻔했다지요.
오전 시간인데 차를 가지고 가자니 감기가 심한 에미가 골골거리는 바람에 불안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작은 아이가 학교로 가고, 평상시였어도 큰 아이와 나왔을 시간, 휴가인데 게으름 피울 여유도 없이 서둘러 집을 나섭니다.
신분당선이 뚫려서인지 꽤나 수월하게 도착했는데요. 다만, 지하철에서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탈 때마다, 아니 하차할 때조차도 요금이 어마어마하게 붙더라구요. 오늘 용돈으로 충전한 만원 교통비를 다 쓸까봐 큰 아이도 전전긍긍이고, 이럴줄 알았으면 주차비도 주최측에서 지원해주는데 그냥 차갖고 나올걸 하는 마음에 에미도 후덜덜이었네요.
여유있게 강연 30분 전에 도착해서 앞자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보통 회사 교육을 받으러 갈 때면 자연스럽게 뒷자리에 앉곤 했는데, 성큼성큼 앞자리로 가서 자리잡는 큰 아이를 보며, 아직은 순수하구만. 이라는 생각에 속으로 어찌나 큭큭 웃었던지요.
에미도 아이도 같이 들으러 간 수업 같지요?
하지만 반전이 있었으니 에미인 저는 아이가 자리 잡기 무섭게 밖으로 나왔답니다. 코도 막히고 기침도 심하고, 계속 콜록댈 게 뻔....하다는 핑계도 있었구요.
사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밖에서 쉬려고 얄팍한 핑계...를 대며 재빠르게 튕겨나왔답니다. 다행히 아이는 별말없이 강의 시작 전까지 책을 펴고 읽고 있...더랬지요. 허허허....
후기라고는 하지만 아이만 강연을 들었으니 후기랄 건 없긴 합니다. 다만 강의 끝부분을 슬쩍 들어가서 들어보았는데요.
AI시대에 인간이 AI보다 잘하는 게 쉽지 않다며 창의적인 글쓰기를 강조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국영수가 중요하다며 갑자기 교장선생님 훈화...같은 결론으로...허허허...
그렇게 아이들 표정은 일그러지고 어른들은 폭소하며 강의는 끝났습니다. 큭.
큰 아이 말을 들어보니 찬란한 멸종 책 내용 위주로 강연을 해주신 듯 하더라구요. 멸종은 위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 우리에게는 아직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현명함이 남아 있다는 것도 말이죠.
강의는 정말 좋았어.
지난 번에 들었던 내용이랑 겹치지도 않았고. 그런데 마지막 결론은 맘에 진짜 안들었어.
강의를 들은 큰 아이의 결론입니다.
푸하하하. 강연 정말 잘 해주시더니 마지막에 학보모님을 의식해서 교장선생님 훈화처럼 끝내신 후과일까요?
학부모의 동감을 얻고 어린이들의 동심은 빼앗은 나쁜(?) 강의였지만....집에 오면서 도서관에서 찬란한 멸종 책을 빌려다 홀릭한 걸 보면 동심도 쬐끔은 지켜주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악동과 교장선생님 사이를 오갔던 이정모 관장님의 강연 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