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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만 둘

시험기간에 강연듣는 중딩, 퍼즐 푸는 초딩 이야기

지구본 연구소 최준영 박사의 강연 썰과 서점 나들이

by Hello Earth

퇴근하는 에미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집에서는 큰아이가 여유롭게(?!) 과일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겠죠. 시험을 불과 3~4일만 남겨둔 시험기간이지만, 아이에게 학교에서 돌아와 '쉴 수 있는 1 시간'은 유클리드의 '원론'에 제시된 5 명제 처럼 당연한 거랄까요??

당연한(?) 시간을 누리며 여유로울 큰아이와 달리 에미의 마음은 타 들어갑니다.


우연히 서점 홈페이지에서 '심봤다!' 외치고 싶은 강연을 발견했는데요. 아주 귀한 지구본연구소 최준영 박사의 강연이었던 거죠.


저희 가족에게 유튜브 '지구본 연구소'는 각별합니다.

'손에 잡히는 경제'가 있기 전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영상 창구였거든요. 여행 가는 길, 아이들이 심심해하면 차 안에서 틀어주기도 하구요.

큰 아이가 쉬거나 신문을 볼 때도 오디오로 틀어주곤 했지요. 마치 어머님들이 아이들이 놀 때 무심히 영어 CD 틀어주시듯 말이죠.


그렇게 세상을 알게해준 지구본연구소의 최준영 박사의 강연에 아이의 기나긴 사연을 줄줄줄 쓴 덕인지 (남편은 사연 안 쓰고 당첨된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진 않지만요...)강연에 당첨이 되었구요. 시험기간이지만 너무도 소중한 강연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서둘러 퇴근을 했던 겁니다. 허허.


작은 아이가 오고, 밥 먹고 출발하자니 갑론을박 난리가 납니다. 밥 먹는 식당을 두고 두 아이 간 팽팽한 대립이 벌어진 거죠. 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하고 끌려가야 하는 작은 아이는 심술이 나서, 먹는 것은 절대 양보 못 한다며 버팁니다.


결국 큰 아이는 집에서 밥을 먹고 나오고, 작은 아이는 가까운 분식집에서 밥을 먹고 만나기로 했지요.


덕분에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놓칠 뻔했던 작은 아이는 밥을 먹고 와서도 시간 여유가 되어 형님이 집에서 밥을 먹는 동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땀 뻘뻘 흘리며 놀 수 있었지요. 하하.

(터울이 크니 놀이문화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큰 아이는 강연 듣는 게 놀이라면, 작은 아이에게 놀이는 친구들과의 시간 그 자체인 거죠.)


퇴근시간을 생각 못했는데 퇴근길의 지하철은 지옥철이 따로 없습니다. 분명 전광판에는 '보통'인데 막상 열린 문 안에는 사람들이 꽉꽉. 덕분에 저보다 키가 더 커버린 큰 아이는 문제가 없지만 키가 작은 작은 아이 숨 못 쉴까봐 버티고 공간 만들어내느라 고생고생합니다.


겨우겨우 도착하니 입장 시작 시간 아슬아슬 세이프.

교보생명 건물 안에 있는 강연장에 들어가 여유롭게 앞자리를 맡아두고 사인 대기표도 받아서 자리에 둔 다음 최준영 박사의 책을 사러 아래 교보문고로 향합니다.


강연장 갈 때 지나갔던 구불구불 복잡한 미로같은 길을 다시 지나 겨우 책을 찾았습니다. 책 구입 여부를 따져보자며 요리조리 책을 훑어보는 큰 아이. 사인 안 받고 강연만으로도 만족하겠다던 큰 아이 얼굴에 슬며시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낙점이오!

건방진 독자의 한 마디와 함께 책을 들고 계산을 마친 에미는 임무 완료와 함께 힘이 빠져 버리고 맙니다.


'아들아 그래도 시험은 끝나고 읽거라.'


에미는 힘없이 아들에게 호소해보지만 이미 아드님은 책 속에 코를 파묻고 계시네요. 아흑...


강연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 모처럼 에미도 두리번두리번 돌아다니며 언제 맡아도 늘 기분 좋은 서점의 책 향기를 마음껏 맡아봅니다.

뒤늦게 퇴근하고 온 남편과 큰 아이를 강연장으로 보내고 집으로 가려니 올 때는 지루할 것 같다던 작은 아이 눈이 반짝입니다.


관심분야인 역사 관련 인물책을 보더니 씩 웃으며 이것만 보고 가자고 하네요.


걸렸다!


엄마는 속으로 이미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지만 애써 놀란 척하며 다시 아이의 읽을 자리를 마련해줍니다.

(오기는 싫지만 막상 오면 재미있는 곳이 서점 아닐까요? 그리고 나서 맛난 간식까지 얹혀주면 서점 나들이 성공입니다.)


결국 강연이 진행된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서점에 있다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작은 아이.

그러렴. 하고 화장실을 데리고 갔다 나오는 길은 아이들의 문제집 코너와 이어지는데요.(이건 서점의 절묘한 배치 방법인 거...죠?)


중고등코너를 두리번거리는 에미와 달리 관심 없던 작은 아이 눈이 한 곳에 고정됩니다.


맞춤법 블라블라??

"엄마. 이거 나 한 번 보고 갈래요."

그...그러자. 아가.


처음엔 맞춤법 책으로 시작하더니 호기심이 생겼는지 이 책 저책을 뒤적거리는 작은 아이 눈에 퍼즐 책이 눈에 띕니다.


"어? 엄마 나 이거 풀어볼래요!"


이쯤되면 에미는 아이에게 우선권을 내어주고 '조용히 아이 뒤에서 기다리는 모드'로 순간 변신합니다. 여차해서 오버하는 순간 아이의 호기심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푹 꺼져버릴 수 있으니깐 말이죠.


그렇게 또 이 책 저책을 훑어보며 시간이 흘러갑니다.

아이가 열광한 퍼즐 시리즈였는데요.

눈으로 풀 수 있는 것도 있고, 꽤 어려운 문제들도 있다보니 아이가 엄청 집중하더라구요. 덕분에 저도 퍼즐만으로 이루어진 학습지? 놀이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아이를 도와 이런저런 퍼즐책을 골라주던 에미.

아이의 발 아래 쪽 서가에 보이지 않게 꽂혀있던 시리즈가 눈에 띄었습니다.

짠!

결국 아이는 오랫동안 신중하게 들여다보며 구매를 결정한 안쌤 시리즈를 버리고 보는데 3분도 채 걸리지 않은 팡세 시리즈를 선택했답니다.


나중에 아이 말을 들어보니 안쌤 시리즈 퍼즐 안에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는데 요거는 자기가 좋아하는 퍼즐만 쏙쏙 골라 들어있어서 맘에 들었다나요.


한 권만 사야되는 줄 알고 난감해하는 아이에게 두 권을 다 사주었더니 작은 아이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집니다. 에미 눈엔 수학 문제집이지만, 아이 눈엔 놀이북인 요 문제집. 돈 쓴 엄마도 갖고 싶은 물건을 선물받은 아이도 대만족입니다.

("결론은 문제집!" 이라는 건 비밀입니다. 하하하)


120% 이상 만족스러워 보이는 작은 아이에게 회심의 일격! 편의점 간식까지 안겨드리니 엄마의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작전 성공!


서점 밖에서 간식을 먹고 있자니 남편에게서 전화가 오네요.

"혹시 작가에게 질문하고 싶은 거 쓴 적 있어?"


라는 뜬금없는 전화.


"아니?!"


라는 답변과 함께 서둘러 끊는 남편.


'처음 강연신청할 땐 썼지만 정작 당첨되고 작가에게 질문할 거 쓰라고 할 땐 시간이 없어서 못 썼어.'


라는 게 정답이었는데 단 두 음절로 압축해서 답변한 것이었죠.


나중에 강연이 끝나고 돌아온 남편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질문이 안 나와서 사전 질문지로 답변했는데 마지막으로 선택된 사전 질문이 '중2 아이 질문지'였어. '지리의 힘' 읽어보고, 트럼프에 관심 많은 중2 사연이면 아무리 봐도 당신이 쓴 것 같은데 아니라고 하니까 이상한데? 주변에 앉은 사람들도 너 아니냐고 자꾸 물어보고. 아들은 저 안썼는데요. 하고 말이지."


"엇. 그거 내가 쓴 거 맞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이렇습니다.

그 날 객석을 꽉 채운 어른들 속에 유일하게 앉아있던 미성년자가 저희 아이였다는데요.(아이 말로는 한 명이 더 있었던 것 같다고는 했습니다만....)

중2 아이 사연이 특이하다며 마지막 질문지로 픽해서 답변을 주셨다는 거지요. 사연을 들으면서

큰아이는

'음.. 나랑 비슷한 아이가 또 있군.'

이라고 생각했고


남편은

'에? 저거 우리 마누란데?'

라고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은

"얘! 너 아니니?"

라고 물으니


큰 아이는

"저 아닌데요?"

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분명 에미는 큰 아이에게


너 질문 뭐 할거니?


라고 물어보고 쓴 글인데, 아이는 잊어버리고, 에미는 신청 때 쓴 거라 최종 질문지에서는 안 쓴 걸로 오인했고, 결국 손을 들어


"저에요!"


라고 말 했으면 박수도 받고 작가님께 칭찬받았을 상황이 그냥 지나간 아쉬운 상황이 되었던 겁니다.


아이의 질문 내용이 꽤 심오했거든요.


"작가님.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살 수 있을까요?"

(신청글을 쓰던 날, 마침 손경제 주제가 그린란드였어요. 그걸 듣고 있던 큰 아이가 제거 그린란드를 트럼프가 살 건지를 물어봐달라고 했고, 저는 그저 받아서 썼던 게 덜컥 질문으로 선정된 것이었더랍니다. 그나저나 그린란드 트럼프 구매 가능성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아무도 몰랐던)저희 아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지막으로 강연과 사인회가 끝나고, 큰 아이 또한 150% 이상의 만족감과 에피소드로 인한 다소의 아쉬움을 가지고 돌아온 거죠.


강연 내용은 참으로 알차고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작가님의 박학다식의 원천에 대한 질문이 있어 그 부분도 답변해주셨는데요.


육아빠로서 육아와 자기개발의 결과.


라는 게 답변이더라구요.

육엄마로 장기휴직까지 감행했던 에미는 그저 웁니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결국 활용은 개인 몫이 맞네요. 휴.


여기까지가 최준영 박사의 강연(내용은 모르는) 과 서점 다녀온 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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