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천자문 필사를 끝냈습니다.
초3에 올라가는 작은 아이.
작년에 처음으로 새해 목표라는 걸 잡고 새해 둘째날.
그러니까 25년 1월 2일부터 저, 큰아이, 작은 아이 각각 한문 교재(?) 하나씩 정해서 필사를 시작했었는데요.
저는 논어를 골랐고,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각각 천자문을 선택했었죠.
저는 하루에 한 구절씩이라 3개월 여 걸려 한 권을 완북했구요.
당췌 외우는 거라곤 관심이 1도 없는 큰 아이는 결국 중간고사 즈음부터 놓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오래 걸리는 천자문 필사. 그야말로 한자가 1000자이기 때문에 오래 걸릴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솔직한 에미 마음으로는 이걸 시작은 했는데 완성이 가능은 한 걸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무려 1년이 지난 26년 1월 15일.
드디어 책 한 권 필사를 완성해낸 작은 아이.
천자문이 보통 서당 다니는 아이들의 입문서이다보니 쉬울 거라고 오해하시는 분이 많은데요.
사실 천자문은 단순히 개별 한자를 모아놓은 교재가 아니라, 그 안에 중국 역사부터 천문지리, 각종 고사 등 한자풀이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압축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 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급수 한자가 아니다보니 한자 급수로 따지면 8급 한자에서부터 무급 한자까지 다양한 난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죠.
이해하기도 어렵고 따라쓰는 것조차 까다로운 천자문인데요.
작은 아이가 주말과 공휴일, 여행 등으로 부득이하게 쓸 수 없는 그런 날을 제외하고는 부모의 독촉 없이도 자발적으로 4글자씩 필사해왔던 거죠.
심지어 에미인 저 조차도 논어 필사가 끝나고 아예 필사 자체를 놓아버린 지라 관심 주는 이 하나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본인 책임 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4글자씩 또박또박 따라썼던 겁니다.
웬만한 문제집 한 권 끝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자그마치 1년동안 계속해온 아이의 노력에 정말 할 말이 없더라구요.
소원은 뭐든지 들어주마,
예쁜 마음이 기특해서 램프의 요정처럼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아이에게 소원을 물어보았죠.
그랬더니 마침 며칠 전 혼자 남아있던 날 선생님과 같이 500피스 퍼즐을 맞춘 게 재미있었다며 퍼즐을 사달라고 하더라구요.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수줍게 말하는 예쁜 아이의 모습에 꿀 뚝뚝 떨어지는 에미. 주말에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으로 가서 아이가 손수 고른 두 개의 퍼즐을 사들고 기분좋게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저희집은 한자 교육을 하고 있진 않습니다.
대신 한문 교육은 하고 있지요.
한자와 한문. 같아보이지만 참 달라요.
단순히 개별 글자를 모아놓은 게 한자라면, 개별 한자를 모아 뜻을 이루는 문장화 된 것이 한문이죠.
초등학교 시절 배정된 천자문 한자와 뜻을 외워야 집에 갈 수 있었던 모 서예학원 출신(?) 에미.
다행히 부수자로 깨치는 한자에 재미붙여 초등 시절 한자 경시 대회 상은 휩쓸었고, 대학 시절 심심해서 한자 1급까지 땄지만, 결국 한자 자격증은 쓸모없다며 버려질 뻔했는데요.
방황하던 시절 내가 잘 아는 한자로 배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다가 중국어에 입문하며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중국어를 깨쳤던 이력도 있기는 합니다.
지금은 소소하게 아이들이 단어를 물어볼 때면 '한자로 뜻을 풀어주는' 능력 정도로 발휘하고 있지요.
다행히도 아이들은 제가 부수자와 뜻, 한자의 결합 방식 등으로 들려주는 한자 어원, 단어 어원 이야기에 흥미로워 합니다.
저희 집 꼬맹이가 유난히 단어의 뜻과 결합 방식에 더 관심을 보이기에 천자문 벽보를 사다 붙여놓으면서 한문교육을 시작해본 건데요.
요즘 대통령 할아버지께서도 한문 교육을 강조하셨죠.
천자문이 '정도'로 취급되기엔 억울하긴 한데요. ( 쉬워보이는 천자문이라도 하라는 어감이라서요.)
하지만 대통령 한 말씀에 초중고 한자(혹은 한문)
교육이 강화될 예정인 듯합니다.
늘 한자를 분석해서를 아이들이 물어오는 단어를 설명해오던 에미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
저는 급수를 취득하기 위해 아이 수준에 맞을 법한 개별 한자를 교육시키는 데 포커스를 맞추는 건 극렬히 반대합니다.
책을 보다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그 뜻을 이해하고 책을 읽으면 문맥이 정확히 들어오니 재미가 붙잖아요.
하지만 앞뒤 문맥 하나 없이 그저 달달 외우기만 하는 개별한자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일단 재미가 있어야 아이들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문맥상의 단어가 아니라 분절된 한자 자체만으로는 스토리가 없어 금방 잊어버립니다. 마치 영어 모르는 아이들에게 영단어 하루에 몇 개 씩 주고 외워라 하는 것 처럼 의미도 모르고 그저 외우기만 하니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금방 쓸려나가고 맙니다. 한자 극혐까지 안 가면 다행이구요.
제가 강조하고픈 한자 교육 포인트는
이 부분에 핵심을 두고 한자를 교육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자문을 끝낸 아이.
다음 순서는 어떤 책이 될까요?
중국에서 유아 대상 교재인 삼자경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아이가 다음 시작을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입니다. 꽤 긴 호흡으로 이어져야 하기에 아이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까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한자에 더 관심 갖고 책을 볼 때마다 모르는 단어의 뜻을 한자로 풀어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 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