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어 다시 공부를 하다보니

아이를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by Hello Earth

겨울방학도 어느새 끝자락입니다.

올 겨울방학의 평일동안은 여행 다녀온 이틀을 제외하고 큰아이와 도서관-집을 반복했던 것 같아요.


아침 아홉시면 칼같이 집에서 나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열두시면 점심먹고 다시 한시에 도서관에 들어가 세시까지 공부하고 세시면 뒤도 안돌아보고 도서관에서 나가는 게 큰 아이의 일상이라면,


제 일상은 큰아이의 일상에서 오후 다섯 시 여섯 시까지 도서관에 더 머물렀으니 거의 하루 종일이라고 봐야 할 것 같긴 합니다.


아이와 도서관에 다니면서 아이는 다음 학년 공부를 하고, 저는 두 개의 시험 준비를 하면서 방학 마지막까지 두 번의 시험을 치렀네요.


방학 마지막 날까지 시험준비와 함께 매일매일을 긴장하며 지내온 듯 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닌 시험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시험이었던 입사시험을 치른지 15년도 훨씬 넘어 다시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자니 하나하나가 다 새롭고 어렵더라구요.


그야말로 작은 산 하나를 넘으면 그 다음 더 큰 산이 나타나는 것 처럼 모르는 것들 투성이인데 생각보다 따라주지 않는 머리 때문에,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는 것도 어려웠구요. 무엇보다 아이들을 챙기면서도 시험 준비를 하자니 전력질주가 가능했던 어린 시절에 비해 몸도 마음도 생각보다 잘 따라주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자신을 위해서 이런저런 작은 성과를 거둔 방학이랄까요.

늘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다 처음으로 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다보니, 시들시들했던 젊은 날의 열정도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시험을 치루며 얻은 작은 성취감은 덤이구요.


한편으로는 큰 아이와 같이 도서관을 왔다갔다하며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아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인 것도 같습니다.


아이가 난도 있는 수학문제를 풀면서 머리 아프다며 투정 부릴 때, 예전 같으면 그냥


아이가 하기 싫어 저러는구나.


싶었겠지만요.


저도 (제 수준에) 어려운(혹은 생소한) 문제들을 접하며 머리가 지끈거려 도서관이 갑자기 가기 싫어지기도 하고, 머리가 너무 아파 드러누운 적도 있다보니, 이젠 아이의 투정이 투정으로 들리기보다, 이 아이도 고비를 넘느라 그렇구나. 힘든 과정인데 그저 포기하지 않고 연필을 쥐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기특해서 토닥토닥하게 됩니다.

어떤 문제는 3일 이상을 고민하기도 하는데요, 가끔 환하게 웃으며 "풀렸다!" 외쳐주는 것을 볼 때마다 답답했을텐데 끝까지 고민하며 풀어낸 아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서 물개박수륵 쳐주기도 하구요.


본인은 공부가 싫다고 하는데 점심 시간에도 저에게 계속 수학 문제 풀이과정을 쉴새없이 얘기하는 걸 보면 공부가 꼭 싫은 것 같지도 않구요.(청소년들 특유의 반어법일까요?)


어쨌든 같이 공부하고 있는 동지로서의 동지애마저 느껴지더라구요. 허허.


물론 가끔은 너무 칼같이 도서관을 나가는 아이 모습에 화가 날 때도 있었습니다. 분명 신문보고, 잡지 보고, 책 보느라 정작 학업 공부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걸 알고 있는데도 세 시만 되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떠나버리는 거죠. 그리고 밤까지.... 주욱~ 놉니다.

허허허....


속으로야 부글부글 끓긴 하지만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집에 와서 하는 놀이라야 뭐 별 거 없거든요.


아침에 엄마의 독촉에 미처 다보지 못한 신문을 보거나 시사 잡지를 보거나, 공기놀이(?!)를 하면서 열심히 시사 라디오 듣는 게 일상이니, 결국 세상 공부도 공부겠거니.....(청소년기엔 그냥 숨만 잘 쉬어주어도, 반찬 투정 안 하고 그저 주는 밥 따박따박 잘 먹어주고, 엄마한테 말 예쁘게 해주기만 해도 감사해야 되는 거 맞죠?)


얼마전에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저만의 책상도 장만했습니다.

거실 책상에서 공부하느라 아이 방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큰아이 책상의 묵은 먼지를 떨고, 때마침 생일을 맞아 남편과 아이들 각각에게서 반 강제로 갹출(!?)받아 마련한 6만원으로 스탠드를 구매해서 거실에 멋진 저만의 공간을 마련한 건데요.


휴일을 이용해 남편과 함께 아이들 책상 위치도 바꾸고, 겸사겸사 큰아이의 책상과 책장 위치도 바꾸었습니다. 저와 큰 아이 책상 사이에 키높이 책장을 놓아 가림막으로 활용했더니 큰 아이에게도 저에게도 아주 만족스러운 각자만의 작은 공간이 생겼습니다.

제 스탠드 조명을 구매하면서 오래된 아이들의 스탠드 조명을 와이드형으로 교체해 주었더니 거실 전체가 멋진 서재로 변신했습니다. 큰 아이 책장에는 요즘 한참 관심중인 수학과 과학, 지리 관련 책들을 몽땅 넣어주었더니 라디오를 들으며 바닥에서 공기놀이를 하는 틈틈히 책장의 책들을 훑어보기도 하더라구요. 허허.


티비와 소파가 없는 집이라 책상 세 개에 각자의 공간을 분리하는 책장까지 놓고도 그게 거실 가구의 전부이다보니 생각보다 답답해보이지는 않더라구요.

그럭저럭 저, 큰아이, 작은 아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각자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큰 아이 방은 밤에 잘 때만 들어가는 방이 되어버리고, 거실만 하루종일 북적북적입니다.)


이제 개학이 코앞이네요.

어쩌면 큰 아이 덕분에 아침마다 게으름을 피울 겨를 없이 매일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도서관으로 향할 수 있었는데요.(한 번 안 가면 계속 내성이 생겨 게을러질 것 같아서 말이죠.) 어찌보면 저의 게으름을 예방해준 고마운 존재다보니, 방학 끝이면 좋아하곤 했던 예전과 달리 저를 붙잡아 줄 아이가 학교로 가야하는 개학이 이렇게나 빨리 다가온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합니다.


이제 아이들을 핑계삼아가 아니라 혼자서도 씩씩하게 도서관으로 가야 할 홀로서기의 시기가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치른 시험은 너무 긴장해서인지 생각보다 부진한 결과가 예상되는데요. 어쩌면 재시험을 쳐야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1년이라는 기간동안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기로 한 만큼, 어렵지만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재도전하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말했죠.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구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제목은 출판사에서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매출을 위해 만들어낸 제목이라고 하긴 했지만요.


일을 하고 다시 공부를 하자니, 나만 잘하면 되는 공부가 저에겐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시험을 치고 나오면서 엄청난 좌절을 겪었는데요. 다시 한 번 힘을 내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새 학년 새 학기의 시작!


아이들도 부모님도 힘내서 각자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기왕이면 원하는 성과도 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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