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Earth Mar 02. 2022

아이의 학원 이야기

학원, 다녀야 할까 다니지 말아야 할까

학원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열정적인 대한민국 엄마들. 그 속에서 난 무척이나 "특이한" 별종 엄마일 것이다. 공부는 엄마가 하는 게 아니라 네 스스로 해야 된다는 것, 스스로도 할 생각이 없는 공부를 학원에서 어찌 시켜주냐는 논리다. 우리네 어렸을 적만 해도 이렇게 많은 학원을 다닌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켜놓고 보니 주변 엄마들은 이미 영어학원이니 수학 과외니 우리 아이를 빼놓고 학원 안 보내는 아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우리 아이도 그 당시 태권도 학원은 다녔으니 이것도 학원이려나...싶지만 나는 늘 학원에 관해서만큼 부정적인 엄마였다.)



큰 아이 1학년 때 내가 아직 휴직 중이었을 때 일이다.

같은 반 아이 중 꽤나 똘똘한 아이가 있었는데 아이가 꽤 적극적이고 친구 관계도 썩 좋았다. 소극적이고 왠지 잘 친구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우리 아이에 비해 그 아이는 엄마 없이도 친구들과 여기저기 잘 다니며 놀기에 참 부럽다 싶었는데 하루는 그 아이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00네 엄마는 학원 안 보내고 놀아라 하는데 왜 난 밤늦도록 학원 숙제해야 되는 거예요?" 라며 아이가 항의하더란다. 그 엄마는 "그럼 00이네 아들 하면 되겠네!"라고 화를 냈다며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 모두 능력 좋은 전문직이라 어렸을 적부터 사교육의 힘을 빌어 아이의 꿈을 키워주어서 1학년이지만 영어도 잘하고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도 무난한 내 관점에서는 엄친아가 되었겠지만 지금만큼 적극적인 아이면 스스로도 잘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엄마는 남편도 사교육의 힘으로 이 자리에 왔기에 사교육의 절대적인 힘을 믿고 있다고 했다.



사교육의 일번지라는 강남은 아니지만 사교육의 열풍이 이곳에도 강하게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아이는 아이스하키를, 어떤 아이는 미술을, 어떤 아이는 영어를 통해 1학년인데도 벌써부터 외부 대회 상을 받아오는 아이도 보였다. 엄마들도 대단하고, 그 어려운 스케줄을 다 소화해내고 있는 아이들도 대단해 보였다.

난 갓난쟁이 둘째를 돌보면서 소극적이다 못해 교우관계마저 불안정한 첫째를 적응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리 버거운데 말이다.



1~2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태권도 학원에 다니면서 친구가 한 두 명은 있었던 것 같다. 맞벌이 부모를 둔 까닭에 친구들이 하교 후에 끼리끼리 모여서 노는 시간에 돌봄 교실에서 맘에도 없는 한자 끼적이고, 태권도 가서 고압적인 관장 밑에서 태권도를 배우며 움츠러들었을 아이. 그럼에도 방과 후 로봇 만들기 수업과 2학년 때의 맘씨 좋은 선생님 덕에 부족한 교과목을 학교 후에 남아서 개별 수업까지 받으며 버티던 아이. 하지만 코로나로 3학년 때 아이는 그나마 다니던 태권도 마저 그만두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핸드폰이 없는 데다, 엄마들 간의 교류도 없다 보니 아이는 빠르게 고립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바쁘고, 바쁜 엄마 자리를 급히 메꾸려던 아빠는 아직 조금 서툴렀다. 하지만 오히려 돌이켜보면 서툴렀던 아빠였기에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려주었고 그게 그나마 무너져 내리던 아이의 안식처가 되었던 건 아니었을지...



코로나와 함께 2학년 때부터 교과목 수업을 버거워하던 아이는 완전히 학업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처음 보는 영어는 도대체 알아들을 수도 없건만 미리 배운 아이들은 선생님과 대화까지 하고 있으니 아이는 온라인 수업에서 점점 소외되어가고, 아이의 교과서는 1학기가 지나도록 백지, 그 자체였다.



늦은 승진에 회사 일에 올인하던 엄마가 그 깊은 아이의 속을 어찌 알랴마는 알았어도 어찌할 수는 없었을 터. 못 버티고 다시 휴직하면 여태까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볼 낯이 없었을 터다. 그렇게 승진과 함께 엄마는 3번째 오롯이 큰 아이만을 위한 휴직에 돌입했다.



아이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정말 아이의 성적은 처참했다. 2학년 때는 어찌어찌 선생님께서 방과 후 개별수업을 시켜서 따라가게끔 했다지만 3학년 땐 엄마도, 선생님도 아이 곁엔 없었다. 아직 2학년 수업도 어려운 아이에게 3학년 수업을 왜 못 따라가며 선생님도, 엄마도 다그치니 아이에게 공부는 어렵기만 한 것이었을 터다.  

아이에게 우선 방학동안 치유의 시간을 준 나는 4학년을 맞는 아이를 앞에 두고 아이가 극복해야 할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00야, 영어는 6살 터울의 동생보다 못한 수준이고, 수학은 3학년부터 복습해야 따라잡아야 해. 영어는 괜찮아. 책을 좋아한다면, 국어를 잘하는 아이는 영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엄만 어렸을 때 영어 안 시킨 걸 후회하진 않아. 그땐 00가 아토피로 고생하던 시기인데 엄마가 영어까지 디밀었다면 더 힘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수학은 달라. 엄마도 그 수학 때문에 6년을 발목 잡혔어. 원하는 대학도 수학 때문에 낮춰서 들어가야 했고. 하지만 엄마는 00가 수학을 잘하라고 말하진 않겠어. 하지만 00가 나중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책 읽기가 재미있어졌 듯 목표가 생겨서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을 때 수학이 걸림돌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야.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수업만 따라가도록 노력해보자. 어때??"


속사포처럼 쏟아낸 엄마의 말에 얼마나 수긍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책 읽기처럼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말이 와닿았 던 것 같다. 하루에 세 장 씩 수학 문제집을 풀겠다고 약속을 했다. 책을 다 읽어서 게임시간을 벌었더라도, 게임은 숙제 다 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 약속 때문에 1학기 내내 아이와 씨름해야 했지만 처음으로 아이 스스로 학습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실천하고자 했던 그 노력만큼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아이가 책에 한참 빠져있던 5월, 작가가 되려면 글쓰기를 해야 되는데 그쪽이 약하다며 갑자기 글쓰기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여기저기 아무리 알아봐도 아이가 원하는 글쓰기 학원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룹을 이루어 책을 읽고 토론하던 논술학원이나, 지정된 책을 읽고 선생님께 읽은 내용을 검사받는 독서 학원 정도밖에 없고, 아이에게 글쓰기만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곳은 없었다. 실망에 빠진 아이에게 논술학원에서도 글을 가르쳐줄 수 있으니 한 번 가보겠냐며 아이에게 의향을 물었다. 아이가 선뜻 동의하여 테스트 수업을 받고는 그날로 논술 수업(플*톤)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의 논술 수업은 2개월 만에 끝이 났다.

일단, 테스트 수업 때 본 교재는 아이들의 흥미와는 전혀 먼 어두운 주제들이었고, 큰 아이가 원했던 수업 방식도 아니었다. 글쓰기 방법을 알려준다기보다, 책을 읽고, 책 내용을 파악한 후 그 책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었는데 책 내용이 아이들의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았던 것이었다. 첫 수업 날, 나는 아이에게 이점을 지적하며 다니기 싫으면 안 다녀도 된다 했지만, 아이는 오랜만에 같은 또래와 수다 떠는 것이 즐거웠던지 다녀보겠다고 했고, 속으로는 맘에 안 내켜했지만 아이가 하겠다니 등록해주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용건이 있어 내게 전화를 할 때마다 수업과 관계없는 하소연을 내게 쏟아부었고, 작은 아이 하원길에 운전하면서 아이에게 해가 갈 세라 오롯이 들으며 위험천만하게 운전을 한 적도 있었다. 결국 4단계가 시작되던 7월, 아이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당분간 학원에 가지 않게 되었고 그 후로 복귀할 시점 학원과의 오해와 의견 충돌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다. 선생님의 영업 실적을 엄마인 내가 왜 알아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거니와, 어찌 됐든 그 이후로 나의 학원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고, 결국 첫째 학원과 동시에 미술학원에 다니게 된 둘째도 그만두게 되었다.



공부는 타이밍이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누가 막아도 하게 되어 있다.

학원에서 죽어라 아이에게 지식을 들이밀어도, 아이가 싫어하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 된다.

스스로 찾은 지식은 잊히기 쉽지 않지만 누가 억지로 들이민 지식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까닭에 한 귀로 들어왔다 가슴에 미처 닿지도 못한 채 다른 한쪽 귀로 홀연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아무 거리낌 없이 학원에 구애됨 없이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은 만큼 방역수칙에 위배되지 않을 만큼 마음껏 돌아다니며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했던 여름방학.


큰 아이는 언젠가부터 집보다 바깥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숙제해야 놀러 나간다 하면 악착같이 숙제를 하게 되었다. 숙제조차도 아예 내려놓았던 여름날엔 동생과 좋아하지도 않았던 블록놀이, 로봇 조립, 종이접기, 갯벌체험 등 코로나 속에서도 무궁무진한 자유놀이를 마음껏 즐기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갔다.

지금 아이의 방 한 켠에는 책 주문으로 쌓인 택배 상자를 자르고 붙여서 수영장, 헬기장 등등 자신만의 시설을 갖춘 멋진 5층 집이 아직 미완성인 채로 남겨져 있다. 시간 있을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뚝딱거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학원 안 보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원 숙제에 매여서 방학 내내 숙제하느라 투닥거렸다면 어땠을까?


밥 먹으면서도, 화장실 가서도 책 읽는 아이.

책 좀 그만 보고 밥 좀 먹으라는 엄마.

숙제하기 싫어 언젠가부터는 좋아하던 게임도 잊고 책과 바깥놀이만으로도 세상을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하기만 한 엄마다.

(물론 1학기 때 미리 문제집을 풀어서 수업이 수월하다며 자랑하던 아이가 2학기 수업을 못 따라가서 버벅대는 건 다시 생각해보아야겠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