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좁은 골목길을 앞서 가던 복덕방 주인 대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골목을 꺽으면 보이겠지 싶어서 느긋하게 간 골목은 양 갈래로 나 있었다. 병욱은 짜증이 확 밀려왔다. 이렇게 골목으로 들어간 곳에 교회를 만들면 과연 누가 온단 말인가? 병욱은 왔던 길을 되돌아서 가려 했다. 근데 이 복잡한 길을 되돌아 나갈 수 있을까?
개척교회를 할 장소를 찾아서 공덕동을 뒤지고 있다. 백 미터 마다 교회가 있는 서울에서 다음지도를 펼쳐놓고 찾아보니 이곳이 그래도 교회의 숫자가 적었다. 게다가 서울역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다. 언덕길에 비스듬히 문이 나 있는 복덕방이 보였다. 문틈으로 안을 먼저 보니 대머리는 구석에 있는 검정색 소파에 앉아 같이 일하는 30대 후반 여자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고 움직이고 있었고 여자는 대머리를 대신해 강아지 마냥 주위를 살피며 대머리의 손을 빼려는 건지 자신이 더 좋은 곳을 찾아 인도하는지 두 손으로 대머리의 손을 잡고 있었다. 긴 치마의 여자가 몸을 꿈틀 거린다. 병욱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머리는 급하게 긴 치마의 속에서 손을 빼고는 바로 그 손으로 병욱에게 악수를 한다. 대머리의 손끝에 뭍은 애액이 축축했다. 긴 치마의 목소리는 흥분이 채 떠나지 못했는지 갈라져 있었다. 병욱이 개척교회 이야기를 꺼내자 대머리는 서둘러 병욱을 떠밀고는 복덕방에서 나왔다. 자기 여자의 달뜬 모습을 감추려는 건지, 아니면 그의 일하는 스타일인지 모르겠다. 문을 닫고 나오는 데 긴 치마가 물을 마시다가 병욱과 눈이 마주쳤다. 병욱은 문을 나서면서 뒷주머니에 넣어둔 손수건을 꺼내 긴 치마의 물이 뭍어 있는 손을 꼼꼼하게 닦아냈다.
개척교회를 한다고 하니 돈이 없다고 생각했었나. 이런 골목길로 데려오다니. 대머리 새끼. 사람 보는 눈이 없네. 불쾌했다. 어떻게든 돌아갈 길은 찾아나가겠지. 역시 부동산 114 회원 부동산으로 가야겠어. 병욱이 돌아서서 두 어걸음 발을 떼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병욱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이마에 땀을 닦았다. 손수건에서 비릿한 냄새가 난다. 코에 손수건을 대고 크게 숨을 들이킨다. 몸속에 암컷의 냄새가 혈관 곳곳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당뇨병 환자가 초콜렛을 먹었듯이 그제서야 주변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대머리를 따라 자기가 가려고 했던 길을 보니 그 아래에 펼쳐진 수많은 집들이 보였다. 사무실도 보이고, 시장도 보이고 아이들도 보이고 아이들을 싣고 다니는 유치원 차량도 보이고 북적였다. 그런데 교회 십자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풍수가 좋네” 라고 저절로 혼잣말을 속삭였다. 느낌이 왔다. 여기는 된다. 골목길 저 쪽에서 대머리가 하드 두 개를 들고 병욱 쪽으로 걸어와서 건네준다. ‘설레임’ 이라는 비닐팩에 들어있는 쭈쭈바 같은 빙과류. 이름도 좋다. 지금의 자신의 기분처럼 설레임. 대머리는 설레임을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에 끼우고 차가운지 몸을 부르르 떤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병욱을 향해서
“이렇게 해야 빨리 녹거든요.”
병욱은 설레임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운다. 대머리는 그 사이 설레임이 녹았는지 빨아먹고 있다. 병욱은 겨드랑이에서 설레임을 꺼내 빨아본다. 비릿한 우유 한 입술 정도의 물만 흘러나온다. 병욱도 설레임을 사타구니 사이에 끼운다. 차가워서 몸이 후들거리는 데 기분이 묘하다.
대머리가 데리고 간 건물은 애초 생각보다 교회를 세우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대머리가 골목으로 데리고 온 길은 복덕방에서 가는 지름길이었고, 그곳에 가보니 전철역과 버스 정류장이 가깝게 있었고, 더욱 더 좋은 곳은 교회 건물 뒤쪽에 널따란 공터가 있는 거였다. 임자가 있는 땅이지만, 저 곳을 밀고 주차장을 만들기에는 좋은 땅이었다. 일 년만 아니 육개월 내에 저 주차장에 차를 가득 채우게 만들 거다. 낡은 건물 육층에 위치한 교회 자리는 이전에는 점을 보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 전에 그 공간을 사용하던 점쟁이는 그 곳에서 신기를 받아서 유명해졌고, 결국에 이 빌딩을 살 정도로 돈을 모았다고 한다. 명성이 올라갈수록 찾는 사람의 계급도 높아져서 결국 강남으로 옮겨서 크게 하려다가 남편이 바람이 나고 자신을 밀어주던 사람도 감옥에 가게돼 손님은 뚝 끊기고 가지고 있던 돈은 다 털려 결국 이 빌딩도 싼 값에 팔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머리는 워낙 신기가 강한 자리라서 아무도 들어오려고 하질 않아서 싸게 놔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교회가 들어오면 신기도 누그러지지 않겠냐며. 병욱은 이 빌딩이 얼마인지가 궁금했다.
삼십칠억팔천만원이 찍혀있다. 그 사이 이억삼천이 불어났다. 교회에서 나오면서 전별금으로 받은 삼십오억을 고스란히 인덱스펀드에 넣어두었다. 아내는 이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이혼을 하려면 언제든지 할 수 있게 모든 서류는 준비해둔 채였지만 얼마동안은 그 서류를 꺼내지 않으리라. 교회에 필요한 자금은 입출금 통장에 든 것으로도 충분해보였다. 계약금을 입금하고, 인테리어 업자를 불렀다. 최대한 조촐한 개척교회의 모습으로 시작할 것이다. 커서 썰렁하기 보다는 작은데서 좁게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신도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오후에는 잠깐 시간을 내어서 교회 코디네이터를 만나서 상담을 했다. 병욱의 이름을 내 걸지 않고 개척교회라는 것을 부각시키기로 하고 교회 주보의 디자인을 결정했다. 신도를 이십명에서 시작해서 매주 마다 대여섯 명 씩 증가 시키다가 6개월 안에 백 여명을 신도로 보내주는 조건으로 이억을 주기로 계약했다. 그 금액 안에 헌금도 포함되어 있으니 나쁜 계약 조건은 아니었다. 코디네이터는 병욱이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을 슬쩍 건드리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계약을 이끌어 내었다.
“목사님 이렇게 빨리 다시 목회를 여셔도 되겠어요? 게다가 본 교회와는 차로 몇 정거장 되지도 않는데 말이죠.”
“목사님이 떠나셨다고 하더라도 목사님을 좋아하시는 분들부터 조용하게 모으세요. 그렇게 열성적이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야지 우리 쪽 사람들도 같이 열심히 다닐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도 프로와 일하는 것이 나았다. 코디네이터는 자신이 차 값을 계산하고 영수증을 첨부한 계약서를 넘겨주었다.
장어가 익고 있다. 종업원이 나가고 난 뒤 식탁 아래로 오집사가 발을 뻗었다. 흰 양말에 종아리가 보인다. 병욱은 지그시 아킬레스건 위의 혈을 누른다. 오집사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집사는 정성스럽게 장어를 구워서는 병욱의 그릇에 올려놓는다. 40대 초반의 오집사는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오집사의 남편이 바로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은 권장로. 충일 교회 비상대책위원을 맡고 있는 그 놈은 자기 마누라가 나랑 어떤 사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조목사 쪽에 붙은 거다. 오집사는 부부관계에 대해 상담을 한 적은 있지만 병욱과 깊은 사이는 아니다. 단지 상담을 하면서 병욱이 종아리를 몇 번 주물러준 적 밖에는 없다. 오집사는 교회의 돌아가는 상황을 병욱에게 자세하게 알려준다. 병욱이 나가고 난 뒤에 신도수가 갑자기 줄었다는 이야기와 계속 병욱에 대한 험담을 언론에 흘리고 있고 신도들의 연락처를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병욱이 당회장으로 있던 교회는 일요일에 예배만 열세 번을 하고 한 번 예배에 참석하는 신도는 방송을 통해서 예배를 드리는 별관의 인원 까지를 포함하면 삼 만여명으로 추정 될 뿐 등록된 신도의 정확한 수와 연락처는 병욱과 소수의 장로들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병욱의 예전 교회는 순복음 중앙교회의 교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신도들의 주 연령층이 이십대에서 삼십대 초반이고, 신도들의 외모나 사회적 위치들도 나름 안정적이어서, 결혼 적령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출석률도 높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교회였다. 병욱이 효창동에서 개척을 한 지 십 이년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그런데 자기가 만든 교회에서 내침을 당하다니. 도저히 열불이 나서 참을 수가 없다. 병욱은 애초에 신도들을 받아들이고 정성을 들일 때 외모가 반반한 여대생들을 중심에 두었다. 근처에 있는 여대 덕분에 20대 초반의 여대생들이 많이 올 수 있었고, 그들이 관심이 있어 하는 연애 문제를 설교의 중심에 두고 부부, 결혼 문제 등으로 설교를 확장하고, 비슷한 나이 대에 어울려 보이는 남, 녀를 소모임 그룹으로 묶어두자 교세는 금세 확장되었던 거다. 정치적인 색깔은 배제하고, 진보와 보수를 적절하게 섞어서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강조한 그의 교회 운영은 큰 탈 없이 교회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 병욱이 나오게 된 교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다고 난리를 치지만 새로 부임한 목사는 병욱이 가진 카리스마에는 미치지도 못하고 신도들이 교회에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렇게 커진 교회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은 상상을 초월하는 데 신임 목사는 거기에 휘둘리다 보면 자기가 설교할 내용조차 준비하는 게 힘들 터 였다. 그게 오집사가 병욱에게 전한 내용이었다.
오집사는 병욱이 새로이 개척교회를 시작한다고 하자 반색을 하며 자기 일 인양 기뻐했다. 병욱은 오집사에게 자신과 가까웠던 신도들을 조용히 접촉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오집사는 자신은 기꺼이 그 일을 하고 싶다며, 다만 그 전에 병욱이 충일 교회를 나가게 되었던 그 사건의 당사자인 현아의 일을 먼저 정리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신도 병욱이 그 기집애를 강제로 건드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병욱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런 욕구를 풀어줄 정도의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많은데 왜 병욱이 그랬겠냐며, 시쳇말로 강제로 했다면 밑이라면 모르겠지만 입 안에다 넣었는데 자신이 싫으면 깨물어 버리면 될 것을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다 그 기집애가 나중에 조목사 측에 회유를 당해서 그런 거라고 병욱의 마음 그대로 오집사는 말해 주었다. 병욱은 오집사의 마음이 자기의 마음과 같아서 가슴이 복받쳐 올랐다. 정말 자신을 이렇게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아내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얼굴이 이쁜 여자는 금세 질리지만, 이렇게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에 느끼는 감정은 병욱에게는 처음인 감정이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런 감정이 생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병욱은 덥썩 오집사의 손을 잡았다. 병욱의 눈이 촉촉해졌고, 오집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오집사는 부끄러운지 손을 빼서 눈물을 훔쳤다. 오집사의 주선으로 현아를 만나서 현아가 개척교회에 나오게 되면 일이 잘 풀릴거다. 다만 현아에게 합의금으로 이억 정도가 들어가야 될 터였다.
개척교회에 처음부터 함께 하고자 하는 오집사를 겨우 만류하고 다시 계약을 했던 교회 자리에 들어갔다. 어두운 실내에는 요란한 문양의 초상화 같은 것이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웃기게 생겼지만 무섭게 보이는 그 초상화에 신끼 라는 게 있는 걸까? 초상화의 볼을 귀여운 양 툭툭 쳐본다. 초상화 뒤에 유리가 있는 것이 손에 와닿는다. 병욱이 초상화를 북 찢어버리자 커다란 창문이 보인다. 이렇게 큰 창문이 있는 것을. 여기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십자가에 반사되어 들어오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창문 아래 보이는 골목길에서 긴치마가 병욱을 향해서 손을 흔든다. 손에는 병욱에게 건네주려는 열쇠가 들려있다. 저 여자에게 신도들 연락을 담당하게 해야지. 콧소리가 사람을 묘하게 끄는 매력이 있을 거다. 개척교회가 처음에는 힘이 들지라도 점점 신도는 늘어날 거다. 병욱에게는 여전히 신도들의 명단과 연락처가 있는 서버가 있고, 신도들의 친소관계를 적어놓은 보고서도 있다. 이제 새로이 시작하는 자신의 교회가 만들어지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병욱은 충만한 성령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긴 치마가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 늘어진 석양이 그녀를 비춘다. 병욱은 그 순간 교회의 이름이 떠올랐다. 새누리사랑충만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