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남편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엄마가 먹고 싶다던 복숭아를 사가지고 집에 들어오다가 집 앞에서 형사에게 잡혀갔다. 잡혀가면서도 남편은 검정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복숭아를 건네주고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말을 하며 경찰차에 올랐다. 민석이 지난여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엄마에게 아들 노릇을 한 사람이었다. 너무나 살갑게 나의 상처를 감싸주던 사람이었다.
다음날 유치장에서 만났던 그 사람은 밤새 수염이 길러있었다. 엄마에게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서 유치장을 찾았다. 그가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이러는 걸까? 경찰에 물어보아도 경찰은 조사 중 이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변호사를 구하고 남편을 면회하러 갔을 때 경찰은 남편이 전 부인의 살인교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남편이 결혼한 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도 한 번 결혼을 실패한 기억이 있기에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었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살림을 합친 것이 두 해전의 일이었다. 서로 결혼에 대한 상처가 있었기에 혼인신고는 뒤로 미뤄두고 일단 살림부터 합쳤었다. 남편은 가족들과 쉽게 어울렸고 무슨 일을 하는 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으나 성실하게 한 가정의 가장의 일을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살인교사를 하다니. 남편의 말처럼 누군가의 모함에 빠진 것 같았다. 남편이 예전에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남편에게 앙심을 품었다고 생각했었다. 남편은 자신에게 얼마간의 돈이 있으니 좋은 변호사를 구해달라고 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남편이 내게 했던 말들이 하나 둘 거짓으로 드러났다. 성실했던 가장은 사실은 아파트 두 채를 가지고 있는 부자였고,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모아두었던 재산은 그의 전부인과 그의 동생의 생명보험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남편이 내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의 동생마저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살해했다는 증거까지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제부가 경찰서에 잡혀가고, 이어 민석의 교통사고도 제부와 남편이 같이 보험금을 노리고 벌인 일 이라는 것도 경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믿기지가 않는다. 민석이는 어릴 적부터 엄마 대신 내가 업어서 키웠었던 아이인데. 남편은 민석이가 숨을 거둘 때 내 옆에서 민석이를 지켰었는데 그런 사람이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남편은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정했지만, 점점 남편이 그런 짓을 했다는 증거는 하나 둘 더 보태어졌다. 남편은 내게 면회를 와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람들의 눈총과 엄마도 사실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었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하는 곳에 방을 잡고 밖으로 며칠간을 나가지 않았다. 그 집에 동생이 찾아왔다.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내게 욕을 하고 얼마 있지 않은 내 옷을 찢어버리고 미친 듯이 나를 때리고 울었다. 내가 흉악한 남자를 집에 들여서 자신의 남편마저 그 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민석이를 죽인 자신의 남편의 편을 들었다. 울음을 멈춘 동생은 나에게 자신의 남편이 잘못이 없고 남편에게 모든 죄가 있다고 말해달라고 하였다. 어차피 그 사람이랑은 혼인신고도 올리지 않은 사이이며 생판 남이 아니냐며, 이제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 언니도 정신을 차리고 빨리 그 흉악한 놈에게 벗어나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남편에게 형부라며 그렇게 우리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엄마에게 나와 남편을 빨리 식을 올려야 한다고 했던 동생이. 동생은 자신의 남편을 살려달라고 했고 나는 동생에게 나를 살려달라고 했다.
텔레비전을 켜기가 무서웠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뉴스에서 그 사람을 본다는 것이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장을 봐서 집에 들어올 때 조금만 문이 열려 있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과 두 달 전 까지만 해도 문이 열려있으면 남편이 일찍 들어왔나 해서 부리나케 달려 들어가서 남편의 품을 찾았는데, 지금은 그 때 생각만 해도 마치 내 등 뒤에서 남편이 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만 떠올랐다.
판사까지 지냈던 변호사가 나를 찾아왔다. 변호사는 혼인신고서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형량을 적게 받으려면 혼인신고서가 필요하고, 내게 남편과 정상적인 생활을 벌였다는 것을 증언해달라고 하였다. 남편은 사실 단 한 건도 자신이 직접 살인을 한 적도 없고, 남편이 살인을 교사했다는 증언 역시 모두 범죄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변호하고자 남편에게 죄를 미루는 거고 증거로서 자격이 부족하기에 남편이 무죄 석방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을 믿고 싶지만, 내 몸의 모든 반응이 남편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무섭다. 남편은 이제 한밤중에 머리맡에서 나를 지켜보는 강도보다도 내게 무서운 사람이었다. 생각만 해도 머리털이 쭈뼛 서게 만들었다. 그 사람이 무죄일 리가 없었다. 그 사람은 살인마다. 그 사람은 내 동생 민석이를 죽게 만든 살인마다.
누구든지 붙잡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흉악한 살인마와 같이 살았던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기는커녕 모두들 나를 살인마로 취급했었다. 내가 눈물을 흘릴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 밖에 없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엄마가 사는 집 앞에 갔을 때 대문은 열려있었다. 창 너머 엄마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주위를 살피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엄마는 현관문 밖에서 서 계셨다. 나를 보고는 엄마는 아무런 말도 없이 현관문을 열어둔 채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이 들을 새라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한참을 울었다. 미안해 라고 말하고 울고 미안해 라고 말하고 울었다. 미안해 라는 말이 목구멍을 넘기지 못하면서도 울고 엄마 손을 붙잡아 내 얼굴을 치면서도 울었다. 엄마의 손은 아무런 힘도 없이 휘청휘청 거리고 있었다.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엄마는 내 등을 세게 때렸다. 쿵 쿵 하는 소리가 심장에서 울렸다. 엄마는 목을 놓아 꺼이꺼이 울었다. 내 아들 불쌍해서 어쩌누. 내 딸 불쌍해서 어쩌누.
그렇게 새벽이 올 때까지 눈물이 말라버릴 때 까지 마른 울음을 내 뱉던 엄마는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변호사가 놓고 간 혼인신고서 였다. 이십억 정도 있다 카더라. 우리가 이거 받을 자격은 된다.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네 네 라고 말했다.
혼인신고서를 변호사를 통해 접수를 하고, 재판이 열리고 처음으로 남편을 면회 갔다. 남편은 검사가 사형을 구형한 것에 겁에 질려서 창 너머에서 울기만 했다. 남편은 모든 증거가 드러난 마당에도 자신이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말을 했다. 나는 남편의 눈을 보기가 무서워 고개를 숙인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남편은 내게 고맙다고 하며 자신이 밖에 나가기만 한다면 내게 세상에 둘도 없는 남편이 되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나는 남편이 나오게 될까봐 무서웠다. 나는 남편에게 안에서 건강을 챙기라고 고개를 숙인 채 말하고 서둘러 구치소를 나왔다.
변호사가 찾아와서 남편이 가지고 있는 재산 내역을 알려주었다. 남편이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기에 내게 재산권이 인도 될 것이고 자신의 변호사 비용이 추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남편에게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언도 될 것인지 몇 번이고 물어보았고, 변호사는 걱정하지 말라며 내 손을 잡고는 안심을 시켜주었다. 자신이 언제든지 도움이 되어줄 터이니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자신의 개인 핸드폰 번호도 알려주었다.
민석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변호사 사무실에 엄마는 동생과 같이 나왔다. 민석의 생명보험금 16억을 받고 엄마는 오열을 하고 쓰러졌다. 동생과 내가 나머지 절차를 밟았다. 보험금으로 우리가 살던 동네를 떠나 엄마와 나와 동생은 새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이곳에서는 우리는 비운의 가족도 아니고 단지 새집에 이사 온 슬퍼 보이는 세 모녀였다. 이사를 하면서 남편의 모든 짐을 버리거나 불태웠다. 남편의 서류를 모아둔 앨범 속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내 이름으로 들어둔 생명보험이었다. 수령액은 이십억 이었고, 수령인은 남편이었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며칠 동안 감기 몸살에 걸려 끙끙 앓았다. 감기 기운이 떠나면서 두려움도 옅어져 갔다. 무서워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는 감옥에 있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보험을 취소하고 작은 금액을 되돌려 받았다.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혼을 할 수 있는 지 물어보았다. 변호사는 아직은 이혼을 하기가 힘들다고 알려주었다. 엄마와 난 외국에 나가서 살 까라는 생각도 하였지만 만에 하나 그가 나오게 될 지도 모르고 그럴 경우 더 큰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에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한국에 있기로 했다. 나는 재판이 끝날 때 까지 매달 한 번씩 남편에게 면회를 갈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점점 망가지는 것을 지켜볼 것이고, 남편을 무서워하는 마음을 극복할 것이다. 재판이 끝날 때 까지 시간이 힘들겠지만, 남은 인생은 더 길다.
면회실에서 창 너머로 남편이 들어온다. 사랑했었던 사람이지만, 무서운 살인마였다가 이제는 겁에 질린 고기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남편은 나를 보고 흠칫 놀라서 물러섰다. 면회창 유리에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밖에서 매미소리가 들린다. 오줌이 마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