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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gifilm 박경목 Sep 12. 2023

사랑하는 당신에게

단편소설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 지금도 잘 계시나요?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도 아이와 제가 있는 이곳이 잘 보이나요? 오늘은 보름달이 떠 있습니다. 보름달이 뜰 때마다 가슴이 아파옵니다. 달이 보이지 않을 때면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감출 수 있어서 밤하늘을 쳐다볼 수가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밤에도 하늘을 쳐다보며 아이에게 별을 가리키며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당신, 훤칠한 키에 어떤 여자라도 한 번 보기만 하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저 하늘의 별과 같은 눈을 가진 당신은 대한민국 공군 소령 이었습니다. 당신을 만나서 당신이 비행을 하고 돌아올 때 까지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겠지만, 당신이 대한민국 최초의 유인달착륙선에 승선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그동안 지나간 시간은 모두 달콤한 기다림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나의 불안감이 커나가는 것과는 달리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사실에 흥분도 더해갔습니다. 우리의 우주기술이 아직 일천하다는 세간의 뉴스와는 달리 당신은 군인답게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국기를 달에 꽃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당신은 고된 훈련도 아이의 놀이처럼 마냥 즐겁게 받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서 우주비행사가 받게 되는 그 훈련의 강도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았기에 당신이 지금이라도 그만 두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마치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랑에 빠졌던 그 눈빛을 띄는 것을 보고는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맑은 날이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두어 달 전부터 집을 떠나서 항공우주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항공우주국에서 차를 보내와서 당신이 있는 우주센터로 향했습니다. 당신을 보자마자 당신을 어느 구석에라도 데리고 가서 나의 가슴을 만지고 당신을 내 안에 가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서 우리가족은 남들의 셔터 앞에 다정한 표정을 짓는 것 외에는 허락된 것이 없었습니다. 찍고 또 찍고. 사진을 찍고 나자 당신은 연구원들에 자신의 몸의 상태를 체크 받았었지요. 당신이 우주선에 오르기 전 겨우 이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린 단 둘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방에는 CC TV 가 켜 있었고,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내 손을 꼭 잡고 마치 출장이라도 갔다 오는 듯 잘 다녀올게 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아이 민준이가 당신을 흉내 내서 경례를 하는 모습을 볼 때 당신 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나의 불안감과는 달리 우주선의 발사는 정말 아무 일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예정된 시각에 우주선은 발사되었고, 추진체와 우주선의 분리도 완벽했습니다. 우주선도 정해진 궤도를 따라 지구의 인력을 벗어나 달의 인력권에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고 당신이 꿈에도 그리던 달에서의 첫 발을 떼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난 당신의 8분전 모습 밖에 볼 수 없었지만 나는 바로 앞에 당신이 있는 것처럼 당신의 상기된 얼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지요. 달에도 바람이 불던가요? 우리가 보고 있는 영상은 흔들렸고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당신과 우주인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영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보내준 달의 영상을 보고 있던 모든 항공우주국 사람들은 서둘러 사건의 원인을 찾아 나섰고, 기자들의 취재는 통제되었고, 우주인들의 가족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사건은 의심할 여지없이 조난 상황이었습니다. 달에 도착한 당신과 당신이 탄 우주선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자력으로는 다시 이 땅을 밟을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통신도 두절이 되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런 파악도 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력이 되지 않으면서 무리하게 독자적 우주개발을 추진한 것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도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겠지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했던 다른 일들이 그런 것처럼.

다른 가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제 앞에서 벌어진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고, 당신과 나는 8분의 시차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는 외국에 있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항공우주국의 말을 빌리자면, 우주선 안에는 삼 개월 정도 생존할 수 있는 산소와 식량이 있기에, 우주선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아직 생존의 가능성이 있고, 정부는 우주인의 무사귀환을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도심의 곳곳에서 우주인들의 귀환을 바라는 촛불 기원 집회가 열리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감사하기는 하지만, 저런다고 뭐가 달라질 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주인 가족들의 대표가 격렬한 항의 끝에 항공우주국에 들었던 대답은 절망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정부에서 우주인의 귀환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말과는 달리 힘이 없고, 경제력과 기술력이 빈곤한 우리나라 항공국 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우주인을 귀환 시킬 여분의 우주선도 없었고,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다시 우주선을 날릴 천 억대에 가까운 예산을 확보할 수도 없었습니다.


유족들의 항의는 거셌고, 일부 유족의 경우는 바깥쪽으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은 분노 보다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힘없는 나라의 국민은 자신의 목숨을 국가를 위해 던지더라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구나 라는 절망감. 그 절망감은 국민들 스스로에 대한 절망감 이었습니다. 누구도 선뜻 정부와 항공우주국을 비난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한계가 당신을 비롯한 우주인이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었지요. 텔레비전에서는 웃음이 사라졌고, 뉴스프로그램에서는 매번 앵커가 우주에 있는 당신을 향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싸울 수가 없었고, 술집에서는 이유 없이 누군가 울었고, 누군가는 술상을 엎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8분전 당신이 살아있었던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는 데 우리는 그저 당신의 신호가 빨리 끊어져서 이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를 바라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청와대로 우주인의 가족들을 불렀습니다. 사진도 찍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지 어떤 상황인지 모두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있었습니다. 미 대통령과 우리나라 대통령은 저희를 뒤에 세워두고 악수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앞에 있는 텔레비전의 자막으로 이번 달 말에 쏘아 올리는 미국 우주왕복선이 우리 우주인들을 구출하기로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자막을 확인하고 우리 가족 모두는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를 취재하던 기자들도 울었고, 텔레비전을 보던 모든 국민들도 같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도, 연출되지 않은 우리의 반응을 내보이고자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다시 텔레비전에는 코메디 프로가 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우주산업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도 하였고, 미국과 그동안 껄끄러웠던 여러 가지 협정들이 국민들의 동의로 처리되었습니다. 우주인의 가족들은 연예오락프로에 출연하여 우주산업에 대한 퀴즈를 풀고 즐거운 시간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주왕복선이 출발 하는 시점에 맞춰 모두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미 우주항공국의 모든 분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우리에게 앞으로 구조 일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설명을 들은 우리들은 기자들에게 미 항공우주국이 베풀어준 친절에 대해,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우주왕복선은 무사히 쏘아 올려 졌고, 통신을 통해서 그들의 일상적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였고, 당신과 모든 우주인들을 안전하게 구출하였다는 것도 알려왔습니다.


우주왕복선의 귀환을 열두 시간 남겨놓고, 대한민국 대통령도 미국으로 오셨고 우주인의 귀환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쳐놓았습니다. 그리고, 우주인의 가족들은 모두 소집되었습니다. 미 항공우주국과 보안요원들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리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당신이었습니다. 아니 당신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우리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했습니다. 지금 미국의 기술로도 달에 있는 사람을 귀환 시킬 수는 없다. 시킬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한국의 예산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우주인을 귀환시키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절망에 빠질 것이다. 가족들이 협조해준다면 우주인들을 닮은 사람들이 왕복선으로 몰래 들어가서 마치 달에서 구출되어 온 것처럼 연기를 할 거라고. 그리고 자기 가족인 것처럼 연기를 해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일에 협조해준 가족들의 노고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의 통합을 위해서 꼭 이 일을 받아들여달라고도 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항공우주국의 각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그림이 된다는 이유로 제가 뽑혀서 당신을 닮은 사람을 맞이하고 눈물을 흘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외국 기자들은 당신과 당신을 닮은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민준이가 아버지가 아닌 것을 알고 쭈볏쭈볏 하고 울음을 터뜨리자 당신을 닮은 사람은 마치 당신인 것처럼 민준이를 안고 입 맞추고 포즈를 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정부에서는 저와 다른 우주인의 가족들에게 상당금액의 위로금을 전달해주었고, 미국 정부에서도 자신들이 이 조작으로 인해서 얻게 된 상당의 이익 때문에 우주인의 가족들에게 시민권과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습니다. 물론 그 혜택을 받으면서 침묵의 서약과 거주지를 옮겨서 은둔 할 것을 서약했습니다.


남들 몰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우주인들이 무사히 귀환했다는 뉴스를 끝으로 우주인의 소식을 잊기로 했나 봅니다. 당신을 닮은 사람과 내가 같이 찍었던 사진을 끝으로 뉴스에서는 사라졌습니다. 미국을 다녀온 이후로 항공 우주국 근처로 이사를 하고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습니다. 매일 하루의 일과는 항공 우주국에 가서 아직 끊어지지 않은 달에 있는 우주선의 생명신호 그래프를 보고 당신에게 인사를 하고 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 민준이를 위해 프라모델 가게에 들렀습니다. 민준에게 줄 완구를 고르는 데 광고를 하는 모니터에 당신과 달착륙선의 동영상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귀환 모습까지 편집된 동영상을 보던 완구를 사러온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저 아저씨 달에 갈 때랑 너무 달라. 가짜 아냐?” 라고 하자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팔뚝을 꼬집고는 주의를 주었습니다. 아. 그 순간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을 닮은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도 그렇게 누군가 조작을 해주더라도 그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구나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생체신호가 그래프로 뜹니다. 당신 잘 계시네요. 당신이 계신 그곳에서도 여기가 잘 보이겠지요? 저, 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을 만나러 오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제 기억 속에 저랑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 있습니다. 그게 제가 알고 싶은 전부입니다. 아직은 밤하늘의 별을 마음이 아파서 못 보겠지만, 언젠가 당신을 볼 수 있을 때 그때 우리 서로 마주보고 웃어요. 당신, 미안합니다. 그러나 잊지 않을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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