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캐치 미 이프 유 캔]

by mogifilm 박경목


스티븐 스필버그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그의 스펙터클을 먼저 떠올린다. 거대한 상어, 외계인, 전쟁, 추격, 모험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스필버그 영화의 진짜 힘은 거기에만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오래 붙들고 있는 정서는 의외로 아주 사적이고도 오래된 감정이다. 바로 가족, 더 정확히는 무너진 가족의 상실이다.


나는 스필버그 영화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스필버그는 거대한 사건을 통해 결국 돌아갈 수 없는 집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는 감독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규모가 커도 공허하지 않고, 대중적이어도 쉽게 소비되지 않는다. 관객은 상어를 보고 놀라고, 전쟁 장면에 압도되고, 추격의 리듬에 빠져들지만, 끝내 마음속에 남는 것은 인물이 끝까지 붙잡고 싶어 했던 관계의 감정이다.


이 지점은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많은 학생들이 이야기를 만들 때 사건부터 떠올린다. 흥미로운 설정, 강한 반전, 멋있는 장면, 인상적인 장르적 장치들. 물론 그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관객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기 어렵다. 이야기 밑에 한 사람을 끝까지 움직이게 하는 결핍, 잃어버린 관계, 되찾고 싶은 감정이 있어야 한다. 스필버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이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이 영화는 흔히 전쟁영화의 걸작으로 기억된다. 실제로 오마하 해변 상륙 장면은 영화사 전체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충격을 준다. 핸드헬드 카메라, 탈색된 색감, 폭발음과 침묵의 교차는 관객을 전장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영화로만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결국 가족이 있다.


여러 병사가 목숨을 걸고 찾아 나서는 한 사람, 라이언은 단지 전략적으로 중요한 병사가 아니다. 그는 이미 여러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에게 남은 마지막 아들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사건 한가운데에서 스필버그는 다시 가장 작은 자리로 내려온다. 어머니 한 사람의 상실, 가족 하나의 붕괴, 그리고 그 마지막 남은 한 명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절박함. 이 설정이 있기 때문에 영화는 단순한 전투의 연속이 아니라 누군가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이야기”가 된다. 죽음과 혼란, 임무와 희생의 의미가 모두 이 가족의 문맥 속에서 다시 읽히는 것이다. 그리고 밀러 대위가 라이언을 찾아 나서는 것도 어떤 사명감이나, 이타심이나 명령에 대한 복종이 아니다. 그는 이 임무를 마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집에서 멀어져서, 한 명씩 죽일 때 마다 집에 돌아가는 게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영어교사 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도 이제는 아내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결국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감정은 전쟁의 스케일에서만 오지 않는다. 그것은 가족이 무너져가는 자리에서 마지막 남은 무언가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온다. 전쟁은 배경이지만, 관객을 끝내 붙잡는 것은 전쟁보다 더 오래된 감정, 가족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스필버그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이렇게 가장 인간적인 감정으로 번역한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또 다른 방식으로 같은 주제를 보여준다. 겉으로 보면 이 영화는 굉장히 경쾌하다. 천재적인 소년 사기꾼이 파일럿이 되고,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며 세상을 속이고 도망치는 이야기다. 리듬은 가볍고, 색감은 밝고, 음악은 재즈처럼 유려하다. 그래서 처음 보면 이 영화를 영리하고 세련된 범죄 오락영화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프랭크가 정말 쫓고 있던 것은 돈도 아니고 스릴도 아니다.


그가 진짜 붙잡고 싶었던 것은 무너진 가족이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깨져버린 세계, 더 이상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집, 몰락해가는 아버지의 모습. 프랭크는 계속 다른 사람이 되어보지만, 사실 그 모든 변신은 자기 자신을 잃은 한 아이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화려한 사기와 도주는 자유의 표현이 아니라, 무너진 가족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가 현실을 미루고 버티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진짜로 아프게 다가오는 순간들은 사기 장면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전화 같은 장면들이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시간에, 프랭크는 끝내 외롭다. 아무리 많은 신분을 뒤집어쓰고 멀리 도망가도, 그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결국 하나였다. 이미 무너져버렸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가족의 자리.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이 영화는 범죄극이면서도 이상하게 쓸쓸하고, 유쾌하면서도 오래 아프다.


이렇게 보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겉으로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이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 하나는 전쟁영화이고, 하나는 범죄영화다. 하나는 거대한 역사 속 임무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한 소년의 도주극이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결국은 무너진 가족을 둘러싼 감정 위에 서 있다. 하나는 마지막 남은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잃어버린 집을 되찾고 싶어 하는 아이의 이야기다.


이것이 내가 스필버그를 중요한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는 사건을 잘 만드는 감독이기 이전에, 그 사건 아래에 인간이 가장 오래 아파하는 감정을 심어놓는 감독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대개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 떠나간 아버지, 잃어버린 어머니, 다시는 예전 같을 수 없는 집,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관계. 스필버그 영화의 중심에는 늘 이런 상실이 있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스필버그에게서 정말 배워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멋있는 카메라 움직임이나 감동적인 음악 사용만이 아니다. 더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이야기의 밑바닥에 어떤 상실을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인물이 정말 되찾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왜 그 사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지, 그 결핍이 어떻게 사건을 움직이는지를 묻는 것. 스필버그는 그 질문에 누구보다 집요하게 답해온 감독이다.


결국 좋은 이야기는 큰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되찾고 싶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스필버그의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그가 늘 그 사실을 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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