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한 희곡의 분석
영화 현장에 나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브레이크다운이다. 시나리오를 가지고 파트별로 쪼개서 신 리스트, 장소 구분표, 의상표 같은 걸 뽑는 작업. 근데 이런 기술적인 것 말고, 연출자가 진짜 스트레스받는 건 따로 있다. 배우와의 관계다.
영화든 연극이든, 관객이 보는 건 사실상 배우의 연기다. 감독 스타일도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대본이라는 게 세상의 어떤 에피소드와 감정을 인코딩한 거라면, 그걸 다시 사람들한테 감정으로 풀어서 소통시키는 디코딩 과정이 배우와 연출을 통해 일어난다. 그러려면 작품을 분석해야 한다. 당연한 말 같은데, 이게 잘 안 된다.
우리나라 감독들은 대부분 자기가 직접 대본을 쓴다. 그러다 보니 분석을 안 한다. 자기가 썼으니 다 안다고 생각해서 그냥 느낌대로 "얘는 이런 사람이고 쟤는 저런 사람이에요"라고 말한다. 문제는 자기가 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회의를 해보면 다들 주관적인 느낌만 늘어놓는다. 졸업 영화 심사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선생님들 코멘트도 결국 "재밌다, 재미없다" 수준의 취향 이야기로 흘러가기 쉽다.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다만 작품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분석할 줄 알아야 더 좋아진다. 그걸 잘하는 사람을 시나리오 닥터라고 부르는 거고.
내가 최근 몇 년 간 읽은 연출론 책 중에 제일 좋았던 게 데이비드 볼의 『통쾌한 희곡의 분석』이다. 얇고, 어렵지 않다.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에서 출발점으로 삼는 명제가 있다. 연출가의 텍스트 분석은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다. 감정으로만 대본을 읽기 시작하면 거기에 빠져버린다. "이 감정이 뭐지, 뭐지" 하면서 계속 들어가게 된다. 일단은 전체 얼개를 봐야 한다. 대본이라는 건 결국 마지막에 감정을 주려고 만들어진 거니까. 처음은 잘 꼬셔야 되고, 마지막은 뭔가를 주고 끝나야 한다. 꼬시지 못한 대본은 죽은 대본이고, 마지막에 뭔가 남기지 못하는 대본도 의미가 없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 나오는 가후쿠가 하는 방식이 그거다. 샌포드 마이즈너도 같은 말을 한다. 계속 대본을 읽어라. 텍스트 안에 답이 있다. "나라면 어떡할까"를 묻는 게 아니라 텍스트 안에서 상상으로 정보를 찾고 근거를 찾으라는 거다.
결국 연출자의 힘은 대본에 대한 해석이다. 연출자가 가진 가장 강력한 권력은 해석의 독점이다. 연출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누군가는 해석을 해주고 결론을 내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NG인지 OK인지 누군가 결정해야 한다. 아무나 중구난방으로 OK를 내리면 작품이 안 된다. 절에 가면 돌무더기 쌓아놓고 절하는 사람들 있잖나. 그게 무슨 효과가 있냐고 물으면 사실 없다. 근데 효과가 있다고 믿으니까 거기다 절하는 거다. 연출도 같다. 연출이 잘나서 듣는 게 아니라, 그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그 권한을 준 거다.
그래서 연출자는 틀려도 괜찮다. 답은 없다. 다만 자기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한 번 내뱉었으면 그건 지켜져야 한다.
이게 진짜 중요하다. 대본은 두 방향으로 읽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는 관객 입장에서 읽는 거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따라가면서 경험하는 읽기.
끝에서부터 거꾸로 읽기는 창작자 입장에서 읽는 거다. 결과에서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본을 분석하는 이유는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다.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해야 더 좋아질지 보려면 결과부터 봐야 한다. 원인부터 보면 계속 같은 결과밖에 안 나온다. 결과부터 보면 "이 길밖에 없는가"를 물을 수 있다.
물론 결말을 알고 보면 앞이 몰입이 안 될 수 있다. 근데 우리는 몰입하려고 보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관객을 몰입시킬지 보려고 보는 거다. 그래서 배우들도 처음에는 앞에서부터 자기 이름 체크해가며 보지만, 그다음엔 뒤에서부터 봐야 한다. 송강호도 그렇게 한다더라. 이상한 지점이 있을 때 왜 이상한지, 이 대안밖에 없는지, 왜 여기에 감정이 실리지 않는지 원인을 찾는 거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처럼 뒤로 가는 영화들이 추구하는 플롯의 구조도 결국 이거다. 인과관계를 결과에서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검증하는 작업.
플롯이란 인과관계다. 그런데 그 인과관계가 우리가 이미 가진 가치관과 똑같다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통찰력은 인과관계에서 새로운 인과를 찾아내는 거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에서 시작해 "비행기"까지 가는 그 경로 말이다. 수천 년 동안 똑같은 길로 가면 지루하다. 중간에 다른 길로 빠졌다가 결국 어디까지 가느냐가 우리의 통찰을 확장시킨다.
스텔라 애들러가 한 말이 있다. 네가 조그만 너 자신에서 시작하면 햄릿이 어디까지 가겠냐는 거다. 햄릿은 덴마크 왕자고, 아버지가 죽었고, 통치한 경험이 있고, 전쟁터에 나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나로부터 출발해서 햄릿이 되겠냐는 거지. 햄릿은 햄릿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현실의 나에서 뭘 가져올지 생각하는 거다.
내 일상을 그대로 복제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점프와 공백을 만들어 끼워 맞추게 만드는 것. 그게 영화의 가치다. 적어도 이건 뭐에 대한 이야기다, 인류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희생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성 말살에 대한 이야기다 — 거창한 걸 하나 박아놓고 시작해야 영화가 달라진다.
대본 분석에서 자주 헷갈리는 게 있다. 행동과 비즈니스(활동)의 차이.
비즈니스는 드라마에 영향을 못 끼치는 거다. 배우가 동선을 편하게 하려고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 반면 액션은 드라마를 움직인다. 같은 술 마시는 행위라도 평범한 사람이 마시면 비즈니스지만, 간암 환자가 마시면 액션이 된다.
그리고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재미없는 시나리오의 공통점이 이거다. 사건이 다음 사건을 만들지 못한다. 변화가 없이 인물들이 그냥 모여 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명령 안 내린 SCV들이 모여서 톡톡거리고 있는 것 같은 상태. 명령을 내려줘야 한다. 인물들이 계속 뭔가를 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연출자에게 가장 중요한 테크닉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정보의 조절이라고 본다. 대본 안에는 세 개의 층위가 있다. 관객, 연출자(창작자), 그리고 등장인물. 이 세 층 사이에 정보의 양이 다 다르다. 그 차이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같은 장면이 서스펜스가 되기도 하고 호기심이 되기도 하고 공감이 되기도 한다.
관객이 알고 캐릭터가 모를 때 — 서스펜스가 생긴다. 히치콕이 맨날 하는 얘기. 테이블 밑에 폭탄이 있다. 등장인물은 모르고 우리만 안다. 그 폭탄이 언제 터질지, 저 사람이 알아챌지 못 챌지 보면서 몰입한다. 꼭 폭탄이 아니어도 된다. "쟤 저기 물에 빠질 건데" "에이 바보야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 다 같은 원리다.
관객이 모르고 캐릭터가 알 때 — 호기심이 생긴다. 『살인의 추억』에서 용의자들 중에 누가 강간범이고 누가 아닌지, 캐릭터들은 뭔가 알고 있는데 우리는 모른다. 귀엣말을 했는데 안 들린다. 그러면 "쟤네들 무슨 얘기 하는 거지?" 하면서 낚인다. 자발적으로.
관객이 알고 있던 걸 캐릭터가 알게 되는 순간 — 공감이 생긴다. 정보의 양이 합쳐지는 그 지점에서 동일시가 일어난다. 누군가 편지를 쓰고 있다. 우리는 그게 "헤어지자"는 편지인 걸 알거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편지인 걸 안다. 편지가 누군가의 집에 도착한다. 그 사람이 봉투를 펼친다. 펼치기 전까지 그는 모른다. 우리는 안다. "쟤는 저걸 보고 나면 슬퍼하겠지." 그리고 그가 펼치는 순간 슬퍼한다. 그러면 관객도 같이 슬퍼진다. 이게 동일시의 효과고, 감정을 만드는 방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순서다. 호기심 없이 서스펜스만 던지면 관객은 관심이 없다. 먼저 호기심을 줘서 낚아야 한다. 누가 편지를 적고 있다. 접는다. 침묵한다. "뭐지?" 하면서 따라가게 만든다. 그러다 중간에 그 편지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란 걸 알려준다. 그때부터 그 편지가 당사자에게 가는 동안 서스펜스가 된다. 호기심으로 후킹하고, 서스펜스로 끌고 가고, 합쳐지는 순간 공감으로 폭발시키는 것.
그리고 하나 더. 관객이 원하는 것과 캐릭터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도 서스펜스가 생긴다. 관객은 주인공이 착하길 바라는데 주인공이 자꾸 나쁜 선택을 한다. 그러면 계속 긴장이 생긴다. 반대로 둘이 같은 걸 원하면 동감이 된다.
이 원리들 — 정보의 양 차이, 그리고 욕망의 일치/불일치 — 을 연출자는 항상 머릿속에 두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관객을 낚으려 안달낼 게 아니라 미끼를 잘 던져놓고 관객이 물 때 당기기만 하면 된다. 한 번 걸리면 도망치려 할수록 낚싯바늘이 더 깊이 박힌다.
이건 오늘 강의에서 제일 외워가야 할 말이다.
캐릭터를 분석할 때 사람들이 자꾸 심리학을 끌어온다. 그리고 그 심리학의 근원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러지 마라. 분석의 핵심은 텍스트다. 배경 이야기를 지어내고, 어디서 들은 비슷한 사람을 끌어와서 "얘는 왜 이런 것 같아요"라고 심리학적으로 해석하지 마라.
캐릭터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것도 그냥 행동이 아니라 최악의 순간에 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누구나 편안한 상황에서는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몰렸을 때,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밖에 없는 그 선택이 그 사람의 캐릭터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흔히 작가들이 캐릭터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묻는다. 좋은 것과 좋은 것 중에 선택하게 한다. 그건 캐릭터가 안 드러난다. 엄마 아빠가 이혼한다면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를 줘야 한다. 좋은 것끼리가 아니라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에서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더러운 것과 더 더러운 것 중에 골라야 하는 상황을 던져줘야 캐릭터가 드러난다.
우리는 주인공이 좋은 선택을 해서 극복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인물이 잘 사는 것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주인공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려고 돈을 낸다. 인간이 글러먹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두 가지를 던져놔야 한다. 백설공주한테 거울 없는 삶과 난쟁이 없는 삶을 던지는 거다. 그러면 어떡할 거냐.
성격 묘사는 캐릭터가 아니다. 키가 몇이고 직업이 뭐고 예쁘다 — 이건 그냥 인물 묘사다. 캐릭터는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다.
대본을 분석할 때 인물의 행동을 쭉 나열하고 다음 다섯 가지를 따져본다.
무엇을 하는가. 왜 하는가(모티베이션). 어떤 상황에서 하는가. 다른 선택지가 있는가. 무엇을 드러내는가.
이거 다섯 개만 적어가도 분석의 출발점은 잡힌다.
마지막으로, 대본을 읽을 때 — 특히 배우들과 같이 읽을 때 — 가장 큰 목적은 충동을 찾는 것이다. 보통 배우들도 형광펜으로 자기 대사만 쫙 표시하고 타이밍 맞춰 던진다. 그게 아니라 타이밍을 놓쳐도 괜찮으니까 듣는 거다. 들으면서 내 안에서 뭐가 올라오는지 본다. 이 말을 어떤 충동에서 하는지 계속 생각하는 거다.
감정이 아니라 충동. 기억해두면 좋다.
정리하면, 대본 분석은 감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객관화하는 작업이다. 앞으로 한 번 뒤로 한 번 읽고, 인과관계를 결과에서부터 검증하고, 캐릭터를 최악의 선택으로 시험하고, 충동을 찾는 것.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결국 매번 현장에서 부딪히는 질문들이다. 한 번에 다 안 되더라도 한 작품 한 작품 이렇게 접근해 보는 연습이 쌓이면, 적어도 "느낌이 좀 그래요" 수준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