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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m Jun 29. 2021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하여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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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더 이상 죽을 수가 없어졌다. 가족을 잃어본 내가 같은 아픔을 다른 가족에게 또다시 느끼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죽이고 싶었다. 아주아주 오랫동안. 우습게도 나를 어딘가 부족한 어른으로 자라게 한 책임감 때문에 죽지 못했다. 우울은 항상 베이스였고 20대 중반에 동업자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고 큰 빚이 생겼을 때도, 믿었던 친구에게 큰 상처를 받았을 때도,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했을 때도, 아 죽어야겠다. 하다가도 아휴, 이것만 하고 죽자 하고는 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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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죽음은 생각보다 아주 까다로웠기에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항상 죽기 위해 살다가 갑자기 살기 위해 살게 된 나는 크게 휘청였다. 중심을 잃은 것이다. 자기 파괴적이지 않고 나보다 남이 우선이 되지 않는 삶은 너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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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참을성이 아주 많다. 내가 스스로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싫어도 참고 아파도 참는다. 슬퍼도 참고 질려도 참는다. 참을성과 인내심의 비결은 말해도 되는 줄 몰랐어서이다. 그 미지근한 무지함에 은은하게 미쳐버린 오기 한 스푼과 필요 이상으로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한 스푼이면 나를 파괴하기 딱 좋은 레시피가 완성된다. 이런 망한 레시피를 평생 하루에 한 번씩 해 먹고살아서, 나는 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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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디톡스가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여긴 한국이고 바쁜 종자들은 무한대로 증식한다. 다만 20대 내내 잊을만하면 주기적으로 그런 삶이 지속되었었다. 12시간을 매일 일했던 22살, 3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던 24살, 투잡을 뛰기도 했던 25살 등 피곤한 삶은 불규칙적인 주기로 찾아왔고 멍청한 선택으로 인해 물질적으로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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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도 그런 불규칙한 피곤함에 길들여졌던 때였고, 아빠의 죽음으로 그 고리를 끊게 되었다. 우선 3일 동안의 장례식이 그 시작이었다. 나는 프리랜서다. 정해진 스케줄이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나의 탓이 아닌 클라이언트 쪽의 문제로 일이 무산이 되었었다. 덕분에 아버지의 장례식을 더 마음 편히 치를 수 있었다. 장례식 이후에는 2주 가까이 엄마 집에 머물며 남겨진 가족들끼리 서로를 보살폈다. 그렇게 일도 하지 않고 하루 세끼 엄마의 식사만을 챙기고 나의 감정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


 몸과 마음을 상해가며 일을 하고 돈에 연연하고 항상 화가 나있거나 예민해지는  말고 조금  욕심부리고 조금  바쁜,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이런  말이다. 생전 처음으로  생각이었다. 나는 비어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고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도전해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우선 하고 있던  번째 일부터 그만두었다.


 나는 당시 유튜브를 시작해서 성과 없는 노력을 1년째 도전 중이었다. 나는 프리랜서기 때문에 수입이 불규칙하다. 일이 없으면 백수라는 소리다. 보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마케팅의 기본도 모르는 나에게 유튜브로 수익창출은 상당히 어려웠다. 전자기기는 관심 따위 없는 내가 컴퓨터로 할 줄 아는 거라고는 ppt, 한글, 인터넷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촬영을 하고 프리미어 프로를 독학하며 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노력의 소비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는 상태였다. 몇 년간 감당하기 어려웠던 상황과 마음을 회피하고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도피처로 일을 선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엔 '그만하기' 보단 '잠시 쉬어가기'의 느낌으로 잠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중지했다. 후로 오랫동안 나의 채널은 멈춘 상태였다. ​


 잠시 멈추어서 바라보니 알았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나의 본업을 기반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소위 '팔리는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건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타인의 소비를 부추기고, 어그로를 끌며 전문적이지 않은 정보도 잘 팔리는 나의 분야에서 나는 너무 '재미없는 유튜버'였다. 만드는 나도 재미가 없는데 보는 사람이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저 노력에 중독된 사람이었다. 참고 인내하고 견디고 노력하는 것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만을 열심히 했을 뿐이었다. 마치 나를 제3자처럼 바라보고 사적인 감정은 무시한 채 숨도 쉬지 말라며 다그쳤다. 나에게 노력은 무한한 자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의 노력하는 심지가 다 타버렸다. 나는 더 잘되기 위한 행동들을 감정에 의해하지 않는 것이 멍청하다고 생각했었다. 다 타버릴 때까지 방치하는 것이 더 무책임한 일이었다. 심지는 다 타버렸고 나는 그제야 오랫동안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아껴줄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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