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목련꽃이 06

by Plum




몇 날 며칠은 온 동네가 큰 화를 입었다. 가축들이 죽어나고 마을에 역병이 돌았다. 칠성신들은 비를 퍼부었고 산에서 타고 내려온 물이 강을 이뤄 범람했다. 농작물들이 뿌리째 뽑혀 떠내려갔다. 그래도 칠성신들은 화를 삭이지 못했다. 내가 마을을 지켜낸 그 길고 긴 세월 중 가장 처참했다. 나는 눈물로 고했다. 이제 그만 화를 거두어 달라고 간청했다. 비를 내리던 첫째 탐랑이 비를 멈추며 나에게도 떠날 것을 권했다. 다른 산에 뿌리를 내리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소멸하라는 것이다. 거문과 녹존도 그의 말에 수긍했고 문곡과 염정은 고개를 돌렸으며 무곡은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파군은 나에게 이야기했다. 대체 이 미개한 인간들을 살리고 네가 무엇을 얻길래 이리 간청을 하냐 물었다. 나는 호소했다. 내가 이 마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수백 년들의 시진 중 인간들이 이리 어리석었던 것은 지금뿐이었다고, 그들은 항상 나를 섬기고 당신들을 섬겼으며 나는 그들을 아주 사랑했다고 화를 거둘 것을 다시 간청하자 탐랑이 말했다. 그렇게까지 그들을 사랑한다면 자신들의 노기가 풀릴 때까지 백 년에 한 번 나에게 인간의 육신과 고통을 부여할 테니 그렇게 백 년에 한 번 그들 대신 죽으라고. 거절의 도리가 없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내 기꺼이 백번도 천 번도 죽겠다고 칠성에게 약조하였다.



나는 닭 이우는 소리를 듣고 잠이 들었고, 두어 시간 잠시 잠이 들었다가 금세 눈을 떴다. 밤새 읽은 일기로 정신이 몽롱했다. 이것을 그에게 돌려줘야 할지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침을 먹으며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있잖아.. 칠성신들에게 제사는 어떻게 지내?"


할아버지는 별것이 다 궁금하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굿을 지내기도 하고 천지신명에게 물 떠다 놓고 비는 것처럼 간단히 한다고도 했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엔 크게 굿을 하며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그럼 간단히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고 할아버지는 소원을 빌어야 하는 일이 생겼냐며 웃었다. 오전 내내 책을 안고 고민을 하던 나는 책을 안고 그에게 갔다. 이게 왜 우리 집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건은 주인을 찾아줘야 할 것 같았다. 대문을 열어주던 그는 내손에 자신의 일기가 들려있자 잠시 놀란 눈을 했지만 이내 평소의 평온한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으로 그에게 조심히 일기를 내밀었고 그는 책을 건네받았다. 툇마루에 앉아있는데 그가 산딸기를 담은 접시를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칠성들이 장난을 쳤나, 도깨비가 장난을 쳤나, 그게 너희 집에 있는지 몰랐네. 몰라서 네가 글을 읽는 걸 말리지 않았는데.. 알았다면 읽지 못하게 했을 거야"


"우리 할아버지도 이 집에 온 적이 있어요?"


"아니. 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왔었지."


백 년에 한 번이니 그의 말이 맞았다. 그럼 고조할아버지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덧붙였다. 딱 너만 할 때 왔었지 딱 너처럼 저 대문을 들락거렸지. 나는 나만 아는 비밀이 아닌 것에 괜히 심술이 났다. 산딸기만 주워 먹다가 그에게 칠성들에게 제사를 지내면 안 되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웃었다. 개구리나 나비가 아닌 나를 보고 웃었다. 눈이 부셨다. 나는 여전히 산딸기를 먹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래야 하잖아요.. 화를 풀어야.. 그래야.."


그래야 당신이 죽지 않을 것 아니냐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모든 것을 아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괜찮다고 했다. 나는 괜히 내가 다 억울해졌다. 칠성들은 나쁜 것 같았고 그는 바보 같았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냐고 투덜거리자 그는 모든 것에 다 순리가 있는 것이니 때가 되면 모든 굴레가 알아서 끊어질 것이라 했다. 나는 울고 싶어 졌다. 집에 돌아온 그날 밤부터 할아버지 몰래 밤바다 장독대에 물을 떠다 놓고 별을 보며 빌었다. 이제 그만 화를 풀라고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 아주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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