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밤, 별들에게 기도를 한 어느 날 꿈을 꿨다. 그가 준 목련 나뭇가지를 머리맡에 두고 잔 후 처음이었다. 아주 오랜 옛날이었다. 이곳 할아버지의 마을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집 앞에서 모여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사이에는 어떤 여자가 하얀 한복을 입고 큰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죽은 닭들이 널려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신들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이기적인 신은 더 이상 우리를 돌보지 않아 우리를 가뭄에 들게 하고 가축들을 병들게 한다고. 그들은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각자 모시던 신줏단지와 기도드리는 목걸이, 그릇들을 부쉈다. 신들을 욕했다. 칠성이 아비에게 버려진 일곱의 버러지들이 맞다고 했다.
갑자기 다른 풍경이 보였다. 목련나무 앞에 앉아 그녀가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었다. 옷차림이 화려했다. 그녀는 이 마을의 무녀였나 보다. 마을을 대표해 크고 작은 신들을 보기도 하고 말을 듣기도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또 다음이었다. '그'였다. 지금처럼 하얗고 단정한 얼굴에 은은한 옥색 한복을 차려입은 그였다. 그녀는 그에게 크게 절을 했다. 그녀도 그가 누군지 알았다. 사람의 형상으로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그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다음이었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애처롭게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다음이었다. 그가 모습을 감췄다. 그다음은 그녀가 모시는 신당에 닭피를 뿌리고는 전부 불태웠다. 다시 돌아가 처음이었다 그녀가 사람들을 모았다. 거짓을 말했다.
그다음은, 꿈이었지만 너무 무섭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글에서 본 그대로였다. 끊임없이 비가 퍼붓고 사람들이 병들어 괴로워하고 가축들은 죽어나갔다. 그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범람한 강에 몸을 던진 채였다. 그는 울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았고, 곧 일곱 개의 별들이 그의 앞에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곱 시간 남짓 잤을 뿐인데 몇백 년의 시간들을 직접 건너온 것처럼 온몸이 아팠다. 마치 내가 팔십의 노인이 된 것처럼 너무 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베개는 눈물과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정신을 차린 후 문을 열어 하늘을 보았다. 눈이 아프게 밝은 해가 쏟아졌다. 천천히 수돗가로 걸어가 물을 마시고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그제야 제대로 정신이 들었다. 그에게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 길로 그대로 그의 집으로 걸어갔다. 대문 앞에 선 순간 문이 열렸다. 그였다. 꿈에서 본 것처럼 옅은 옥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그가 앞에 눈앞에 서있었다.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쓸었다. 내가 울고 있었다.
" 별들은 참 짓궂어. 어찌 다시 너에게 업을 주려하지. 왜 착하고 가여운 것에게 다시 그러려 하지."
나는 물었다. 혹시 내가 무녀냐고,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혹시 내가 당신을 욕한 사람 중 하나냐고 하자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는 무엇이냐 물었다. 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프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너는 나를 대신해 별들의 장난과 무녀의 혼에 겨냥당한, 영겁 같은 세월 동안 혼자 용서를 구하고 있는 자신에게 정을 품어버린 심성 고운 아이라고. 이번엔 그가 울 것 같은 눈으로 말했다. 어찌 이리 변하지가 않느냐고. 알 것 같았다. 꼭 나만한 나이에 꼭 나처럼 그의 대문을 들락거렸던 나를 닮았을 그 소년. 그것 또한 나였다. 나를 닮은, 어쩌면 내가 닮은 그 소년에게도 그는 철사를 구부려 잠자리채를 만들어주고 상처에 도깨비바늘을 발라주고 물을 보지 못하게 하고 꽃차와 산딸기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대신 죽으려고 했을 것이다. 아니, 그래서 죽었다. 그랬으니 내가 지금 그 앞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소년도 나처럼 말했을 것을 알지만 입이 멈추질 않았다.
" 그냥 내가 우물에 빠졌으면 됐잖아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 널 홀린 것은 무녀의 혼이지 칠성들의 뜻이 아니야. 자신은 얻지 못한 정을 얻은 네가 미워서, 또 내가 미워서.. 나 대신 네가 죽고 나면 나는 아무도 살리지 못한 채 또 백 년을 기다려야 하질 않니, 언제일지도 모르는 용서의 기회를 그렇게 써버리게 하려는 거야."
나는 어느새 눈물이 말라버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아무도 죽지 말자고, 그러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하나는 변했다며 태평이 웃었다. 갑자기 한복은 왜 입은 거냐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로 말했다. 전장에 나서는 무사의 갑옷이라고 해두자.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울렸다. 나는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디 가는 거냐고 어딘진 모르겠지만 가지 말라고 떼를 썼다. 그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기도를 드릴 것이라 했다. 하늘에게서 부름이 있었다고 했다. 묻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옥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에게 집에 꼭 붙어있을 것을 당부하고는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목련나무를 넘어 산속 깊이 사라졌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 내가 읽지 못한 일기를 마저 읽었다. 한문으로 된 책들을 제외하고 읽은 것을 제외하고는 네 번의 인간으로의 삶이 더 있었다. 종일 그의 집에서 그것들을 전부 읽었다. 읽다가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사람의 형체의 그는 길게는 십 년, 짧게는 한 달을 살다가 갔다. 수명이 다해 죽는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칠성신들은 무작위로 마을에서 저승의 명부에 없는 한 명의 명을 앗았고 그가 대신 죽음으로 앗아간 명을 다시 돌려주었다. 그렇게 세 번의 생을 읽고 이제 네 번째였다. 나의 이야기였다. 그의 말대로 꼭 나만한 나이에 꼭 나처럼 그의 대문을 들락거린 백 년 전의 나였다.
청색 기와집 아이는 심성이 곱다. 그래서 칠성들의 눈에 띄였나 보다. 매일 아침 나에게 깨끗이 씻은 자두를 내밀고 산에서 노루를 보았다며 뛰어와서는 붉어진 볼로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준 것이 아니냐며 티 없이 웃는 그 얼굴에 검은빛을 보았다. 명을 앗아간 것이다. 청색 기와집 아이는 하필이면 영과 혼까지 맑고 영민해서는 내가 무엇인지 금세 눈치를 챘다. 이제야 영글어버린 손으로 나를 위해 매일 밤 기도를 올리고 아침마다 과일을 올린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그 착하고 가여운 아이는 고열에 시달려 앓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하루에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의 아비는 할 수 있는 모든 약을 다 썼다. 먼 시내에 나가 좋다는 약까지 전부 사와 아이에게 먹였지만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칠성은 참으로 고약하다. 지금껏 대신 독을 먹고 대신 칼에 심장이 베이고 대신 물에 빠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병은 대신 앓아줄 수가 없다. 내가 특별히 그 아이를 아끼는 것을 안 칠성이 장난을 친 것이다. 방도를 생각해내야 한다. 이번 생에 용서가 없어도 괜찮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아이를 살려야겠다.
모든 글을 다 읽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니 어느덧 다섯 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어 툇마루로 나가 앉았다. 살려야겠다 에서 이야기가 끝이 났으니 그는 나를 살린 것이다. 하늘만 멍하니 보다가 마당에 핀 꽃들을 보았다.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그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전히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단정한 얼굴이지만 지친 기색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로 달려갔다. 괜찮냐고 힘들었냐고 물었다. 그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방에 먼저 뛰어들어가 이불을 펴고 베개를 올렸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방에 들어왔고 나는 그가 들어오자 문을 닫았다. 그는 천천히 옷고름을 잡아 풀며 옥색 두루마기를 벗었다. 나는 두루마기를 받아 옷걸이에 걸어 벽에 있는 못에 걸어놓았다. 그는 순서대로 벗어내고는 속고의만 입은 채로 이불 위에 앉았다. 나는 그가 벗어놓은 한복들을 우설프게 정리한 후 이불 앞에 앉아 물었다.
"혹시 추워요? 불 떼줄까요? 이불 덮을래요?"
그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다가 나의 질문을 듣고는 조금 소리를 내 웃었다. 웃음에 이유는 말하지 않았고 그저 누워야겠다고 했다. 이불만 덮어주고 이제 그만 집으로 내려가라 했다. 나는 이불을 펼쳐 누우려는 그의 위에 덮어주고는 여전히 그 옆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이불만 정리해주는 나를 보며 할아버지가 걱정하신다고 했다. 오늘은 기도를 드리지 말고 편히 쉬라고도했다. 기도드리는 것을 그가 모를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걱정하실 것 같아 그만 일어나 그에게 내일 오겠다고 이야기하고는 조심히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다행히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뛰쳐나가더니 이제 돌아오냐며 목련나무집 청년과 좋은 말동무가 되었다고 허허 웃으시며 저녁을 먹자고 하셨고 나는 그제야 배가 고팠다. 할아버지는 된장찌개를 아주 맛있게 끓였다며 상을 차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