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준비를 하고 누워서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는 옥황에게 어떤 기도를 드린 것일까 생각했다. 이제 그만 고통을 끝내 달라했을까, 칠성들의 화를 풀게 도와달라 했을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만 고민을 잔뜩 하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떴다. 아침이었다. 아침밥을 먹고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시내를 나가자고 했다. 그에게 가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권유에 알겠다고 하고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나선 시내는 어릴 적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시내의 유일한 약국도 그대로, 작은 과일가게들도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도너츠가게도 그대로였다.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어설프게 따라 인사드리며 나섰고 어느새 내 손엔 도너츠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할아버지가 떡집 앞에서 멈췄다. 떡집 할머니에게 부탁한 떡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들어서 잘됐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봉투를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과일가게로 가서는 윤이나는 홍옥과 참외 배를 사고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집에 와서는 말씀 없이 요리를 하셨고 나는 왠지 집 밖을 나설 수가 없었다. 나에게 큰상을 피라고 하시더니 잠시 후 나물무침들 몇 가지를 상에 올리고는 나에게 장 봐온 것들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과일과 떡까지 올렸다. 처음 보는 상차림이 아니었다. 간소했지만 제사상이었다. 나는 어느새 말없이 할아버지를 도왔다. 어느새 할아버지는 설에나 가끔 보았던 한복 차림을 하셨다. 그처럼 고운 옥색은 아니었고 정갈한 옅은 회색의 두루마기였다.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상앞에 같이 앉았다.
"칠성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거야. 우리는 무당이 아니라서 굿을 하거나 제사를 제대로 지낼 수는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꾸나."
할아버지가 어디까지 아시는지 어떻게 아시는지 물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말없이 할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바라보았고 같이 기도를 드렸다. 의식이 끝난 후 할아버지는 상에 올렸던 천도복숭아 모양의 떡 한 접시를 나에게 주며 목련나무집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서둘러 그에게 달려갔다. 전날 유독 곤해 보이던 그가 걱정이 되었다. 급히 달려가 대문을 두드렸고 대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내가 어제 나온 그대로였나 보다. 마당의 꽃밭을 지나 문 앞에 섰다. 툇마루에 발을 딛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렇게 뛰면 다친다. "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고 그는 여전히 곤해 보이긴 하였으나 단정한 자세로 이불 위에 반드시 앉아있었다. 나는 떡을 내밀어 보이며 할아버지의 심부름이라 말했다. 그는 옅게 미소 지으며 칠성들에게 제를 올린 모양이구나 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신들은 모든 기도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리고 천도복숭아처럼 생긴 그 떡은 칠성제를 올릴 때 올리는 떡이라고 했다. 나는 떡을 내려놓으며 당신에겐 어떤 공양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소리 내어 웃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대답을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자 그는 정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끔 나눠달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 더워진 것은 태양이 너무 뜨거운 탓이라 생각했다. 안색이 조금 좋아진 그와 툇마루에 앉아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다 내가 물었다.
" 물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하늘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될까요? 아니면 칠성들이 만족할 만큼의 공양과 제를 더 올려야 할까요?"
"한 가지씩 물으면 안 되겠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차근히 대답을 해주었다. 하늘이 그를 가엽게 여겨 그를 불렀다고 했다. 작은 산이지만 그도 그곳을 굽어살피는 신령(神靈)인데 너무 많은 고통과 수치를 겪어 오백 년을 지켜보던 하늘이 그를 불러 이제 그만 번민하고 만물의 이치대로 돌아가라고 했다고, 칠성의 노기를 막아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가만히 듣던 나는 담임선생님 같다고 이야기하며 웃음이 나와 버렸고 그도 같이 미소 지어주었다. 그럼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곧 우울한 목소리로 묻자 그는 아마 육신은 그리 오래 있지 못할 거라 했다. 나는 금세 울고 싶어 졌다. 다시 볼 수 없냐며 되묻자 그는 모든 것을 아는 눈으로 대답했다.
"착하고 심성 고운 청색 기와집 아이야. 너는 하필이면 영과 혼이 맑아 날 알아보았으니, 아마 다시 날 볼 수 있을 거야 "
하필이면이라니 그에게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곧 입을 다물고 그의 발끝만 바라보았다. 한 여름의 태양 같은 그가 다시 한번 손을 뻗어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