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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똥 Feb 23. 2022

[지구 어딘가의 찰나] 시즌1, 캠핑카 첫 시동을 걸다

Brighton, UK

[2020년 12월, 첫 시동을 걸다]

“에이 아니에요.”

낮은 자존감에 완벽주의자 성향이 더해져 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치부해왔다.

누군가 “현정 씨는 이걸 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현정이 사진은 항상 맘에 들어.”라고 하면, “고마워요!” 대신 “아니에요, 저보다 잘하는 사람, 좋은 사진이 세상엔 너무나도 많은걸요.”라며 말하는 사람이 민망할 만큼 세차게 손사래를 쳤다. 방정맞게 얼굴은 곧 터질 듯 시뻘게져서는.


한국인의 미덕(?) 겸손함이 어쩜 30여 년 동안 나에게 심적 위안을 주는 알량한 도피처였을지도 모르겠다.

겸손이나 거절에 익숙해진 것인지 나 자신은 스스로를 잘 "인정"해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일에 내 모든 걸 투자하는 무모함, 고집스러움.

나는 사실 참 게으른 사람이다.

부지런히 여행 다니는 나의 모습을 봐온 사람들은 의아해할 대목이지만 사실 나의 민낯, 숨기고 싶은 자아는 아주 게으르다.

그리고 더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지금껏 무지하게 여행을 다녔다. 그간의 나의 의지에는 스스로 박수 쳐주고 싶지만 이 나이에 적금 하나 없다는 건 사실 부끄럽다. (남들은 주식도 하던데 말이다..)

서울에서 머물 때의 나는 다음 여행을 위해 공항버스를 타려는 것이 아니면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행하기 위해 여행 관련 회사의 일도 손해 보면서까지 했었다.

그래도 언제나 비행기 티켓을 사는 순간엔 눈치를 보게 되더라. 힐끗 언니의 동향을 살피며 몰래 준비한 여행들. (아마도 언니는 알면서 모른 척했을 것이다ㅎㅎ) 그리고는 이 여행으로 얼마를 쓸 것이지만 또 얼마를 벌 수 있을 거라며 혼자 찔려서 주저리주저리...

나의 밴 라이프는 게으름과 고집스러움의 산물이다.

집을 등에 이고 지고 다니며 언제든 집에 콕 박혀 자유롭게 게으를 수 있고 또 언제든 문을 열고 나가면 지구 어딘가의 찰나를 당장 누릴 수 있는 그것. 바로 내가 꿈꾸는 라이프 스타일, 밴 라이프.


-게을러도 되는 여행


나에게 주어진 삶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느리게 살아도, 여유를 부려도 되는 온전한 나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대, 강요되어온 “부지런함”에 오히려 여유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아닌 게으른 사람으로 나 스스로를 명명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누워서 몇시간씩 넷플릭스를 보거나 유튜브에 예능 클립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혐오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뭔지.. 나는 시청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2019년, 비니와 2020년은 둘이서 캠핑카를 직접 만들어 최소 2년 이상 밴 라이프를 하자며 계획을 짰다.

사실 내가 꼬드겼다.

"우리 캠핑카 만들자!"고 했을 때 비니의 첫마디는 바로 "난 그런 거 못해" 였으니..

그래서 나는 재빨리 준비했던 다음 멘트를 이어갔다.

 “그거 어려운 거 아니야, 유튜브 보면 다들 척척 알아서들 하더라. 너는 다 필요없고 그냥 운전만 하면 되. 심심하면 내 옆에서 나무 좀 나르고.”

역시 나의 무모한 고집(무지함) 때문에 비니 인생 최악의 날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고 어느 날은 둘이 부둥켜안고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서럽게 울기도 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벽을 만들고 가구를 만들고의 일이 아니었던 거다.


밴라이프를 시작하고 몇주가 지났을까.

비니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속 밴 라이프는 허상에 가까운 비현실적 삶의 방식인 것 같다며 그들(인플루언서)에게 REFUND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씩씩거렸다. 마치 허위 광고에 속은 소비자 마냥.


6개월간 이 집을 만들며 서로 너무 고생하고 험상궂어져서 인지, 밴 라이프를 시작하고 몇일은 정말 끊임없이 티격태격거렸다. 성인 2명이 살기에 너무나도 작디 작은 2평 남짓한 공간에 아직 완성하지 못한 수도 시설, 그리고 버리는 걸 병적으로 못하는 나의 수많은 짐들.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 없었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매일 거주할 장소들을 검색해 찾아다니는 것으로 보내었다.

유럽 로드트립이 처음이 었던 우리는 유럽에서의 캠핑 요령도 몰랐고 가난하였고 또 세상은 팬데믹으로 살벌하게 얼어있었다.


당장 도착한 프랑스에서 우리는 'Bonjour', 'Merci' 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다녔던 시골길은 파리와 같은 여행지처럼 관광객을 반겨주는 곳도 아니었고 팬데믹으로 사람들 사이 경계심, 공포심은 어마어마하였다. 고작 바게트 빵 하나 사서 나오는 것 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오늘 지나오며 찍어둔 프랑스 시골길 영상을 보며 내일은 더욱 나을 것이라 기대하며 잠들었다.

 

이 공간 안에서 우리만의 규칙,

끝을 정하지 않은 이 여정이 타인의 의지에 의해 끝나지 않기를.


유럽 겨울의 우중충한 날씨, 줄어가는 통장 잔고, 삐. 삐. 주유 등의 경고음, 여전히 미래가 예측되지 않는 팬데믹의 상황.

우리 앞에 어떤 경고등이 켜져도 잘 헤쳐나갈 수 있길.

그리고 오늘 우리의 파편들이 다른 이에게도 작은 흥분을 만들 수 있길.


Bon voyage! :)



영상기록물 :

https://youtube.com/c/YangD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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