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비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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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카인


누구나 그렇듯, 내가 태어날 때부터 살이 찐 건 아니었다. 나에게 돼지라는 발작 버튼이 생긴 건 초등학교 입학 이후의 일로, 출생 후 8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저 남들보다 살집이 조금 더 있었을 뿐이었던 나는, 키가 자라나는 것보다 빨리 살이 쪘다. 성인이 되면 다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판타지에 불과했고, 성인이 된 이후 정확히 10kg을 더 찌웠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소아비만에서 시작해 키 작은 고도비만이 되었다.


내가 처음 살이 쪘다는 사실을 인식한 건 12살 때의 일이다. 복도를 걷는 나에게 누군가 ‘돼지 같다’라는 말을 속삭였고, 그 아이가 나의 첫사랑이었던 남자아이라는 사실은 그 당시 꽤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장 개과천선을 겪으며 감량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 후로도 그저 열심히 먹으며 몸을 불렸고, 신체검사 때면 어김없이 ‘비만’이라는 소견과 함께 2차 체중측정에 나서야 했으니까.


숙덕거리며 체중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행동에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퉁퉁하게 나온 배를 드러내는 배꼽티를 입고 운동장 한가운데서 공연도 했고, 고쳐야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키가 크면 다 해결될 거야,라는 막연한 위로를 들으며 살았기에 문제가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소아비만이라는 이유로 겪게 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못생김? 건강?


아니다! 이런 건 그저 부산물일 뿐이다! 소아비만인 내가 가장 큰 문제점은 소아비만이 ‘나의 성장을 멈추게 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빠른 시기에 2차 성장을 했다. 그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아 조숙증 환자였다는 사실을 성인이 된 후에야 알았다.


나의 살은 그렇게 키가 되지 못했고, 일찍이 성장이 멈추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도래한 지금, 초등학교 6학년 때의 키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남부럽지 않게 크던 키는 냉정하게 멈추었고, 평균 키에 한참 못 미치는 난쟁이가 되고 말았다. 키가 작든, 뚱뚱하든 하나만 가져도 슬픈 옵션을 기본으로 두 개 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절망적인 일이란 말인지!


수업을 하다가도 뚱뚱하다는 말이 나오는 때면 언제든 주목을 받게 되었고, 시선이 그리 달가울 수 없었다. 수군거리는 말들은 화살로 돌아와 나를 더 작게 만들었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뚱뚱한 몸은 금방 눈에 띄기 마련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표적이 되기 쉬운 상태이기에, 맥락 없는 놀림감의 대상이 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 결과, 악의의 유무를 떠나 풍채가 좋은 몸으로 돼지라는 별명을 항상 달고 살았다.


그에 파생된 ‘냄새난다. 둔하다. 게을러 보인다’와 같은 부정적인 말은 돼지라는 별명에 따라오는 꼬리표 같은 존재였다. 나의 운동 신경과는 상관없는 말들을 듣게 되었고, 실제로 무거워진 몸 때문에 신체적인 활동에서 불편을 겪을 때가 생기면서 그 말에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었다.


더운 여름이면 남들보다 무거운 몸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게 되었다. 활동할 체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레 덜 움직이게 되고, 이는 악순환으로 반복하며 더욱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쳐보고자 시작한 운동은 짐이 되고, 하기 싫은 숙제가 되며 자신의 몸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내뱉는 말에 상처까지 받게 된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덩치는, 그렇게 나의 단점이 아닌 약점이 되었다. 이러한 약점으로 인해 받는 상처는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게 아닌, 중첩되며 자존감을 깎아먹는다. 하지만 이러한 직접적인 영향보다도 가슴 아픈 상처는 따로 있다. 제일 큰 상처는 ‘스스로를 바꾸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무능력함’이다.


차라리 빠르게 현실을 인정하며 즐기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와중에 매시간 긍정 회로를 돌리면서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대다수의 경우 여러 가지 방면에서 문제를 겪게 되고, 살이 쪄서 받은 스트레스를 살을 찌우면서 푸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한심한 자신을 자책하는 일은 남들이 보내는 비난과 조롱보다도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스스럼없이 그런 짓을 이어나간다.


나의 몸은 나의 약점이자 단점이 되고, 내가 가진 수많은 장점을 가리는 커다란 커튼이 되어 제대로 된 나를 보여줄 기회를 잃고 만다.


외적인 요소보다 내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시각정보로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 우리에게 외적인 요소는 빼놓을 수 없는 판단 요소가 되기 마련이다.


때와 장소에 맞는 옷과 분위기,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좋아하는 스타일까지. 가능하다면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만, 쇼핑을 할 때에는 제약적인 옷 사이즈로 원하는 옷을 사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생기게 되며, 사실상 디자인 선택의 기준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살쪄보이지 않는 것이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 더 많은 구매를 할 수밖에 없게 되고, 때로는 옷 사는 일을 포기하기도 하며 자신을 꾸미는 일을 살 빼고 난 뒤로 미루기까지 한다.


“너무 튀는 건 아닐까?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닐까? 너무 밝은 건 아닐까?”


사실 높은 자존감으로 무장한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된 부정적인 피드백에 그러긴 쉽지 않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세상에 뚱뚱한 몸으로, 자기 어필조차 못하는 자존감 제로의 인간이 되어버리다니. 이게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지!


뚱뚱한 몸으로 유아기, 그리고 청소년기를 보낸 삶은 살에 대한 트라우마를 남기기 마련이다. 다이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되어버렸고, 사회에 걸맞은 인간이 되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건 비단 나만의 결정이 아닌, 수많은 비만인의 결정일 것이다.


설령 실천하지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빼야 하는데’와 같은 막연한 생각과 희망을 하게 된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때면 혹시 내가 살이 쪄서 불이익을 당한 건 아닌가 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맨땅에 헤딩하듯 감량의 길에 들어서는 경우도 많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살 뺀 뒤로 미루는 경우도 많으며,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감량에 소비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기울인 노력은 아주 컸을 테고, 그에 따른 실망과 절망은 또 다른 스트레스로 남게 된다. 끊임없이 마지막을 외치며 음식을 조절하고 하기 싫은 운동을 하며 삶의 행복조차 뒤로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한 긴급한 경우에는, 당연히 도움을 받는 것이 맞는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결괏값에는 원인이 있다. 들이닥친 결과를 단시간 안에 바꿀 수 있지만, 원인이 바뀌지 않는 한 같은 문제는 언제든 다시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아비만으로 시작된 우리의 경우, 그 원인을 찾기 쉽지 않다. 이미 자신이 받은 결과에 체념했을지도 모르며 고칠 방법은 알고 있지만, 실천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착각을 한다.


알고 있지만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는 건, 사실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소아비만인 우리에게, 그리고 여러 번의 요요와 실패를 겪은 우리에겐 우리에게 맞는 방법이 따로 있고 배워야 할 것도 따로 있다.


사람은 수학과 같이 정답이 정해진 존재가 아니다. 주어진 문제를 이유를 불문하고 순서에 맞게 처리할 수 있는 로봇도 아니다. 같은 값을 입력하더라도 답은 천차만별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왜 다이어트는 아등바등 남을 따라 하기 바쁜 것인지!


내가 추구하고 알려주고자 하는 소아비만을 위한 감량법은 단순히 감량에만 초점을 맞춘 방법이 아니다. 어떻게 만족스러운 식사생활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조절이 가능하게 되는지에 대한 방법을 담고 있고, 스스로를 알아가며 자신감을 채워 성공할 수 있도록 짜여 있다.


우리는 감량을 하면서도 삶을 살아야 한다. 소중한 인생에 감량이라는 숙제를 24시간 포함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감량이 이루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일에 감량이라는 터무니없는 족쇄가 채워지면 안 된다. 삶의 만족도를 감량이라는 이유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감량을 하면서도 행복하게 오늘을 살 수 있어야 하며, 행복할 내일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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