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과 들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산골소녀.
어른이 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며 책을 좋아했던 소녀.
그 시절 나는 시골학교에 다녔고, 동네 어른들과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영리하다는 말을 들으며 공부도 꽤 잘했다.
넉넉지 않은 시골살림에 방이 두 칸 밖에 없었던 우리 집은 방 하나를 부모님께서 쓰셨고, 나머지 한 방에 나와 여동생, 남동생이 함께 공부도 하고 잠도 같이 잤다.
조금 좁기는 했지만, 나도 동생들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지내며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이 잘 되어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가을에 한 동네에 있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방이 세 칸이었는데 가운데 대청마루도 있고, 마당도 이전 집보다 넓었다.
이삿짐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난 며칠 뒤 어머니께서 5일장에 다녀오셨다.
어머니는 장에서 사 온 하얀색 천을 박음질해서 주름을 잡고, 노끈으로 줄을 끼워 작은 방 창문 양쪽에 못을 박고, 천을 걸어서 드리웠다.
다시 창고에 가서 명절에 손님이 오시면 가끔 꺼내 쓰던 네모난 상을 창문 아래에 놓았다.
“오늘부터 이거 니 공부방이데이. 열심히 공부해라.”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던 날 내게도 공부방이 생겼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방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한 번도 입 밖으로 공부방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지만 엎드려서 책을 보고, 숙제할 때마다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그것이 마음에 걸려 아버지와 의논한 끝에 창고로 쓰던 작은방 하나를 내 공부방으로 꾸며 주신 것이다. 조용히 혼자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일기도 거르지 않고 매일 썼다. 다음 날 친구들에게 전해 줄 우정의 편지도 썼다. 더할 나위 없이 공부도 열심히 했다.
작은 창가로 살며시 스며든 햇살은 내 영혼을 축복해 주었고, 그때의 햇빛 냄새, 방안의 아늑한 온기 냄새, 온 우주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같은 가슴 짜릿한 기분......
내 아이가 그때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위로, 평안, 꿈, 희망....
작은 창문이 있는 따스한 그곳은 내 영혼의 아지트, 내 호흡의 카렌시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