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나오 Dec 05. 2023

내 영혼의 아지트

온 산과 들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산골소녀. 

어른이 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며 책을 좋아했던 소녀.

그 시절 나는 시골학교에 다녔고, 동네 어른들과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영리하다는 말을 들으며 공부도 꽤 잘했다.

넉넉지 않은 시골살림에 방이 두 칸 밖에 없었던 우리 집은 방 하나를 부모님께서 쓰셨고, 나머지 한 방에 나와 여동생, 남동생이 함께 공부도 하고 잠도 같이 잤다.

조금 좁기는 했지만, 나도 동생들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지내며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이 잘 되어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가을에 한 동네에 있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방이 세 칸이었는데 가운데 대청마루도 있고, 마당도 이전 집보다 넓었다.

이삿짐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난 며칠 뒤 어머니께서 5일장에 다녀오셨다.

어머니는 장에서 사 온 하얀색 천을 박음질해서 주름을 잡고, 노끈으로 줄을 끼워 작은 방 창문 양쪽에 못을 박고, 천을 걸어서 드리웠다.

다시 창고에 가서 명절에 손님이 오시면 가끔 꺼내 쓰던 네모난 상을 창문 아래에 놓았다. 

“오늘부터 이거 니 공부방이데이. 열심히 공부해라.”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던 날 내게도 공부방이 생겼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방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한 번도 입 밖으로 공부방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지만 엎드려서 책을 보고, 숙제할 때마다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그것이 마음에 걸려 아버지와 의논한 끝에 창고로 쓰던 작은방 하나를 내 공부방으로 꾸며 주신 것이다. 조용히 혼자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일기도 거르지 않고 매일 썼다. 다음 날 친구들에게 전해 줄 우정의 편지도 썼다. 더할 나위 없이 공부도 열심히 했다.

작은 창가로 살며시 스며든 햇살은 내 영혼을 축복해 주었고, 그때의 햇빛 냄새, 방안의 아늑한 온기 냄새, 온 우주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같은 가슴 짜릿한 기분......

내 아이가 그때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위로, 평안, 꿈, 희망....

작은 창문이 있는 따스한 그곳은 내 영혼의 아지트, 내 호흡의 카렌시아다.

작가의 이전글 슬픈 자전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