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바라는 게 없나요?
사실... 네가 나 챙겨주는 거 마냥 좋진 않아.
오히려 좀...
어느 날, 술자리에서 가까웠던 지인이 내 호의를
부담으로 느끼고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단
얘기를 꺼냈다.
그 말이 못내 서운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 모든 호의가 그저 분위기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나를 위한 자기만족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누군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기꺼이 챙겨주었고
도움이 필요할 땐 먼저 나서서 도와주려 했던
지난 내 호의가 너무도 허무하게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것이 부정당했다는 느낌에
난 언성을 높이며 상대를 설득하려 들었다.
"어떻게 그걸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상대는 더더욱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지키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내가 생각하는 정답으로 돌리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관계를 더 무너뜨리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나도 이게 설명이 잘 안 되는데, 여하튼 좀 불편했어. 뭔가 이걸 빌미로... 아 이렇게 말하기엔 좀 미안한데..."
순간 '빌미'라는 말이 유독 거슬렸다.
점점 나는 화가 났고 따지고 되묻고를 반복했다.
"내가 뭘 바라고 한 게 아니잖아. 빌미는 무슨 빌미?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테이블엔 대화하는 이들은 없고
주장하는 이들만 있었다.
모든 것이 어긋나고 있었다.
속상한 마음에 새벽까지 전화를 붙들고
다른 이에게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내 말을 듣던 그는 차분히 말했다.
“그건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이잖아.
그것을 바꾸려 들지 말고 그냥 인정해.
단, 네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짧게 짚고
넘어가. 넌 그저 솔직하게 진심을 말하면 돼.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난 누군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들의 입장에 서 본 적이 있던가?
내가 의도한 대로, 내 입맛대로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설득하려 했던 지난 과거들이 무수히 스쳐 지나갔다.
각자의 감정을 인정하고 처리하는 방식을
존중해 주지 않았다.
늘 나의 시선으로, 뭔가 오해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 입장을 일장 연설로 늘어놓기 일쑤였으며 그들의 감정까지 스스로 통제하려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불편했던 방식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이상하게 이 말이 잠시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린 시절, 난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게 싫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현실이 불안했고
두려웠다.
그렇게 무력한 상태로 의지와 상관없는
상황에 압도되곤 했다.
그런 내 모습이 당시엔 안쓰러웠고 머리가 컸을 땐
부끄러웠다. 그 수치심과 분노는 스스로에 대한
강한 방어막을 세우도록 만들었다.
스스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마음은 자라났고
내 안의 나는 점점 커져 언젠가부터
타인의 눈치를 거의 보지 않게 만들었다.
적당한 선을 지키며
‘그래, 난 이렇게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내 삶을 살아. 나는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야.’
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어느 순간 거대해진 자아는 시야를 가려오기 시작했다. 눈치를 살피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자각조차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때는 몰랐다.
주체적으로 사는 삶과
주변을 살피지 않는 삶이 다르다는 것을.
사실 난 누구보다 주변을 잘 살핀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착각했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겐
늘 퍼주려 하고 뭐든 해결해 주려 나섰다.
좋아하기에, 마음에서 우러난 것도 물론 있지만
누군가를 챙기는 스스로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었다.
물론 대가를 바란 적은 없었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말을 듣기 전까진.
나는 내가 중요했다. 내가 중요해서, 내가 먼저라서.
애써 타인의 마음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 내게 불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그들의 감정과 생각까지 내 것으로 만들려 했다. 그들의 입장보다 내 생각과 감정이 우선이었다.
자신만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난 과거에 끔찍이도 싫어했던
누군가와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일침을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시에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특히 타인에 의한 강압적인 설득으로는 더더욱.
하여 다시 마음을 비우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상대가 그런 감정을 느꼈어. 그건 분명해.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자.
근데 정말 나는 바라는 게 단 하나도 없었나?
정말 그랬다면 나는 그 말이 왜 그리 서운했을까?’
곰곰이 생각을 파헤쳤다.
누군가에 서운한 마음이 들 때면 나도 모르게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너무해 ‘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난 주변인들에게 감정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 나만큼 챙겨주는 사람이 어딨어 ‘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선행을 베푸는
나 자신에 도덕적 우월감을 느꼈던 것이다.
호의는 호의에서, 배려는 배려에서 끝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호의와 배려 사이에 은근한 기대와 보상심리가
깃드는 순간 그 빛나는 행위들엔 점점 잿빛이 섞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선으로,
자신만의 방식대로 사람을 대한다.
누군가는 타인을 위해 나 자신을 잃어선 안되며,
스스로의 색깔을 잊어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상대를 배려하고
서로 맞춰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중 누구의 의견이 전적으로 맞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다.
온전히 내 뜻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면 자칫 좁은 시야에 갇힐 수 있다.
또 상대와의 조화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인내와
스스로의 강한 자아를 조금 내려두는 자세 역시 필요하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인간관계에 있어 나의 평생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돌아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아량을 빚지며
여기까지 왔는지 그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역시 관계는 어렵다.
사람이란 동물이 그리 논리적이지 않을뿐더러
쓸데없이 감정적이기까지 하는 존재이기에.
그럼에도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애틋해지는 것이 나 역시 한낱 감정적인 인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기대 살 수밖에 없는 유약한 존재들.
어쩌면 서로의 불완전함에 온기를 덧대며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관계가 아닐까?
변화는 어렵고 불편하다.
그러나 소중한 이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돼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은 나를 깨나가 보려 한다.
세상 모든 사랑과 헌신은
온갖 비효율과 낭비를 동반하고
그것은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러니 소중한 이들을 대할 땐
늘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기도록 하자.
...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대도,
아무것도 얻는 게 없대도,
그저 당신이라서. 당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