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미움, 증오, 혐오, 반감...
어쩌면 잔인하리만큼 흔한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성실히 사랑하며 살아도 부족한 시간 속
한정된 체력과 에너지는
타인을 싫어하는 데에도 쓰인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내 마음이 비좁았던 탓일까.
흘러가는 날들에 거슬리는 이들은 어김없이 출몰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싫은 이유가 파고 파도 계속 나오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런 와중, 그가 뒤에서
내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까지 뒤늦게 알게 됐고
내 반감은 차오를 대로 차올랐다.
날카로운 생각들이
필터 없이 우수수 쏟아져 머릿속을 맴돌았다.
뒷이야기가 나온 사실 자체가 기분 나쁜 게 아니었다.
지적을 해도 하필, 그 인간이라서.
그것도 별 그지 같은 이유로. 짜증이 솟구쳤다.
뭘 해도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이는 게 콩깍지라면
나는 그 반대의 무언가가 씐 게 틀림없었다.
이젠 난 그가 뭘 해도
모든 게 아니꼬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지인이 내게 와서 말했다.
함께한 프로젝트에서 이번에도 그는 어떤 보탬도 되지않았고 사람들의 불만은 쌓일대로 쌓인 상태였다.
"그 사람 이번에도 무임승차야. 내일 아침에 자연스럽게 한마디 해줘. 망신 좀 주게."
솔깃했다.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괜스레 통쾌하기까지 했다.
나는 조금 들뜬 채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럴까요?"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괜스레 한숨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를 한 방 먹일 생각에
잠시나마 들떠 있던 내 모습이 한심했다.
내 얄팍한 마음이 왠지 더 초라해 보였다.
'나 왜 이렇게까지...
누굴 열심히 싫어하고 있는 거지.'
사실 갑작스레 든 감정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물어뜯던 날들이
겹겹이 쌓이고 감정의 날이 서갈수록
마음 한편이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별로인 인간을 대할 때면
여지없이 별로인 생각들이 따라붙었다.
뭔가 잘못됐다.
언젠가부터 내가, 그리고 내 심보가
함께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꼬인 건 분명 그 사람이었는데.‘
흔히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한다.
내가 심은 친절도,
내가 뿌린 혐오도 언젠가는 기어코 내 것이 된다.
뿌린 것을 거둬들이는 계절은 오고야 만다.
두려웠다.
누군가를 찔러대던 모진 생각들이
언젠가 방향을 틀어 나를 찌를 것 같았다.
그를 경멸하는 내 마음이, 내 미움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것 같을 때마다
객기를 부리듯
두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실랑이를 벌였다.
‘그럼 어때? 그러라 해.’
‘그래도 그건 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어느 쪽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 사람인지라 그럴 수 있겠다'라는
3초의 관용은
정확히 3초 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반감으로
변질되는 것도 예삿일이다.
여전히 모르겠다.
미운 사람을 포용할 그릇을 품고픈 이 욕심은
연민일까 아님 오만일까.
존경하는 허준이 교수의 졸업식 축사 중
이런 구절이 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중략)
몇 번이고 되새기고 직접 필사까지 병행하며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았던 구절이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포용과 인내 그리고 사려 깊은 사랑을 이토록 섬세하게 아우르는 문장이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그 문장을 이해하고
완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무례와 혐오가 숨 쉬듯 익숙한 시대에
타인을 미워한 대가는
언제나 최대가 본전일 뿐이란 사실이 새삼 재밌다.
그토록 계산적이고 효율적인 사람들 역시
손해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으면서도
스스로를 잃지나 않으면 다행인,
얻을 것 하나 없는 이 싸움에 발을 건다.
그만큼 타인을 나로, 나를 타인으로 대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조금 더 현실적으로
내 마음을 다스릴 때 늘 생각한다.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인간은 매일 저마다의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
그들을 포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겠다는 자비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미움을 덜어내는 방법 중 하나로
저 사람도 인간임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해.
'나만 아픈 것이 아니다.'
'나만 불안하고 지친 게 아니다.'
'저 인간도 마찬가지일 거다.'
부족할 거 없어 보이는 이들조차도
저마다의 삶의 무게가 있듯
내 눈앞의 모든 이들은
필요한 만큼 아파하며 여기까지 왔고
또다시 아플 것이다.
우린 그저 주어진 내 몫의 고통만 받으면 된다.
각자의 몫을 해치우기에도 분주한 삶에
타인을 미워하는 고통까지 감내한
성급한 수고는 필요치 않다.
또한
하루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기 위함 속
전력을 다한 미움의 결과는 무섭도록 허무할 뿐이다.
그러니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라는 포용이 버거울 땐
'인간이기에 숱하게 아플 것이다'라는
삶의 섭리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삶이
다양한 영역에서,
무수한 난제들로
나 대신 그들을 상대해 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