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좋아져 버린 것들에 대하여

by YUN

어느샌가 나도 몰래 좋아져 버린 것들이 있는지.


사람도, 물건도 어느 장소도 늘 곁에 머물고 있는 게 당연해 몰랐다. '아, 내가 실은 이걸 좋아하고 있었구나.' 느끼는 순간이 문득 소중해진다.


처음엔 나쁘지 않아서, 그냥저냥 괜찮아서.

지나고 보니 삶은 대체로 무심한 그런 것들이 자리를 잡고 늘러 붙는다.


한철에 유행했던 옷보다는 손때가 탄 니트를 더 자주 꺼내 입고, 한때 붙어 다녔던 친구보다는 예상도 못한 친구와 더 자주, 더 오래 본다.


당시엔 사랑했던 것들에 이제는 놀라울 만큼 감흥이 없어지고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엔 다시 눈길이 간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많은 게 변했다. 그럼 나는 또 괜스레 슬펐다가 또 괜찮아졌다. 이상했다. 좋아서 들이댔던 것들, 좋아서 자꾸 욕심이 나 마구 쟁여놓았던 것들이 이제는 떠나가고 흐릿해져만 간다.


그때는 원했던 걸, 이제는 원치 않는다는 걸 느꼈을 때, 어쩌면 조금은 변해버린 나를 발견했을 때, 어떤 씁쓸함을 삼켜내야만 했다.


좋아서, 미치게 좋아서.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는 그런 순간과 감정이 하나 둘 옅어져 갈 일들만 남은 걸까?

그걸 아무 의심도 저항도 없이 받아들이는 재미없는 어른이 돼 가는 길만 남은 건 아닐까 문득 겁이 난다.


하지만 눈을 돌리면 미처 알지 못한 것들이 다시 나를 맴돌고 있다. 좋아 미치지도 않지만, 나를 편하게 만들어 주는 무심한 것들. 속이 좁고 유치했던 나의 맘은 그 존재와 의미를 생색내지 않는 것들에 은은히 스며 들어갔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자꾸 보다 보니 싫지 않아서, 말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잘 맞아서, 꾸준히 들여다보니 사랑스러워서.

어느새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가끔은 처음부터 너무 좋은 것들보단 오래 볼수록 괜찮은 것들을 더 알아가보고 싶다. 당시엔 몰랐지만 시간이 흘러 하나 둘 발견되어 가는 그것들만의 매력을.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이들이 많은 듯하다. 작정하고 외로움에 빠졌다가도 다시 손을 뻗는 머쓱함을 딛고서 반전 가득한 것들이 늘어가기를 바란다.


시간의 흐를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것들이 여전히 주위에 가득하다. 어쩌면 서서히 스며드는 것들이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나도 몰래 좋아져 버린 것들이 더 끈질기다.


온갖 새로움이 쏟아지는 세상 속, 짜릿한 도파민을 찾아 헤매기보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건 어떨까.

행복이 크기가 아닌 빈도로 찾아오듯 나를 크게 웃게 하는 것보다 나를 자주 편안히 해주는 것들의 존재를 더 눈치채주길. 우리의 행복은 생각보다 그리 멀리 있지 않으니.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