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 의빈 성씨, 완벽한 시스템을 붕괴시킨 거룩한 결함
궁궐은 거대하고 정교한 기계였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암투 속에서,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정조)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완벽한 '시스템(System)'으로 개조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계산된 것이었고, 그의 감정은 겹겹의 방화벽 안에 갇혀 있었다.
침전의 지붕 위로 자객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던 밤에도 그는 책을 읽으며 숨소리조차 통제했다. 그는 조선이라는 국가를 재설계하려 했던 냉철한 아키텍트(Architect)였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하게 짜인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치명적인 버그(Bug)는 발생하는 법이다. 정조가 스스로에게 걸어둔 금욕과 절제의 보안 프로그램을 뚫고 들어온 유일한 '우호적 바이러스'. 그 변수의 이름은 성덕임, 훗날의 의빈 성씨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은(聖恩)을 입은 궁녀의 신데렐라 서사가 아니다. 이것은 권력의 정점에 선 절대자와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존재가 만들어낸,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을 방불케 하는 지독하고도 팽팽한 존재론적 얽힘이다.
명리학의 서늘한 잣대로 정조의 내면을 해부해 본다.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는 것을 목격한 소년은 평생을 '편인(偏印)'의 감옥 속에서 살았다. 편인은 깊은 사색과 천재성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극심한 의심과 고독, 그리고 끝없는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흉성(凶星)으로도 작용한다. 정조의 곁에는 정관(正官)이라는 촘촘한 규율만 가득했을 뿐, 삶의 온기를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 먹을 갈고 글씨를 쓰던 궁녀 덕임은, 정조의 굳어버린 사주에 생기를 불어넣는 '식상(食傷)'이라는 에너지였다. 식상은 억눌린 감정을 밖으로 분출하게 하고, 웃고 떠들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원초적인 생명력이다.
정조에게 덕임은 정복하고 소유해야 할 '재성(財星·여자)'이었으나, 뜻밖에도 덕임은 두 번이나 왕의 승은을 거절한다. 천하의 주인이 내린 명령을 궁녀가 거부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행위였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극단적인 '비대칭적 균형'을 만들어낸다. 물리적 권력은 완벽하게 정조에게 쏠려 있었으나, 정서적 권력의 주도권은 철저히 덕임이 쥐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는 자신의 명령 한마디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지만, 덕임의 마음 하나만은 통제하지 못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통제 불가능성'이야말로 편인의 감옥에 갇혀 있던 정조가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는 인간'임을 느끼게 해주는 숨구멍이 되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거절은, 완벽한 기계장치 속에서 유일하게 박동하는 인간의 심장 소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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