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거리보다 기대에서 생긴다
밖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 "세상 젠틀한 김 대리"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폭군으로 돌변하곤 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사소한 실수에는 "그럴 수도 있죠" 하며 웃어넘기면서, 어머니가 국을 조금 짜게 끓이거나 배우자가 치약을 중간부터 짰을 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는 낯선 이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예의 바르지만, 나의 가장 내밀한 사람들에게는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다. 우리는 이것을 '편해서'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인문학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타자성(Otherness)의 상실'이다. 상대를 나와 분리된 인격체가 아닌, 내 몸의 일부나 소유물로 착각하기 때문에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내 손발이 말을 안 듣는 것처럼 화가 나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예의는 얇아진다. 이것이 관계의 가장 큰 비극이다.
이 현상을 명리학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에너지 역학이 보인다. 밖에서 우리가 쓰는 상냥한 가면은 명리학에서 '관성(官星, 예의)'이라 부른다. 관성은 나를 통제하고, 규칙을 지키며, 체면을 차리게 하는 에너지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이 '관성'의 배터리를 모두 소진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통제가 풀린 무방비 상태인 '비겁(比劫)'의 상태가 된다.
'비겁'은 나와 동등한 에너지, 혹은 형제나 친구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 비겁의 에너지가 과잉되어 좁은 공간(가정)에 갇힐 때 발생한다. 사주에서는 비슷한 기운끼리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서로를 밀어내고 부딪치는 '군겁쟁재(群劫爭財)'나 '형(刑)'살이 발동한다고 본다.
숲의 나무들을 보라. 적당히 떨어져 있는 나무들은 각자 햇볕을 받으며 곧게 자란다. 하지만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나무들은 서로의 뿌리를 옥죄고 가지를 찌른다. 이를 명리학에서는 '형(刑)을 짠다'고 표현한다. 조정하고, 깎아내고, 수술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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