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권력이 될 때, 편관(偏官)의 칼날 위 춤사위

숙종 & 장희빈, 왕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 통치할 뿐

by 덕원

"그 입에 사약을 들이부어라."

사랑했던 여인의 입을 쇠몽둥이로 벌리고 독약을 쏟아붓게 한 남자. 조선의 19대 왕, 숙종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치정에 얽힌 복수극으로 소비하지만, 실록의 행간을 비틀어 보면 이것은 연애가 아니라 소름 끼치는 '정치적 숙청'이었습니다.


숙종은 14세에 보위에 올라 46년간 재위하며, 조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습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환국(換局)', 즉 신하들의 판을 뒤집어버리는 공포스러운 정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환국의 가장 화려하고도 잔혹한 도구가 바로 장희빈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장희빈은 악녀인가'라는 케케묵은 질문을 던지지 않겠습니다. 대신, "왜 왕은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살해해야만 했는가"를 인문명리학적 시선으로 파헤쳐보려 합니다.


1. 신금(辛金)의 군주, 기토(己土)의 여인 - 착각과 오판


명리학적으로 숙종을 분석하면, 그는 전형적인 '신금(辛金)'의 기질을 보입니다. 신금은 가을의 서리이자, 이미 제련된 보석입니다. 예민하고, 날카로우며,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서 빛나야 하는 나르시시스트입니다. 그는 자신의 완벽함에 흠집을 내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반면 장희빈은 '기토(己土)'의 물상입니다. 기토는 밭이나 정원 같은 습한 흙입니다. 흙(土)은 금(金)을 생(生)해줍니다. 숙종이 처음에 장희빈에게 빠져든 것은, 그녀가 주는 헌신적인 사랑과 중인 역관 가문의 막대한 재력(생명력)이 자신의 왕권을 빛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토생금(土生金)'의 달콤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 만남은 태생부터 '계급 투쟁'의 씨앗을 품고 있었습니다. 장희빈은 역관 가문 출신의 궁녀, 즉 서인 세력이 보기에 '천한 것'이었습니다. 숙종이 그녀를 왕비로 올린 기사환국(1689)은 단순한 총애가 아니었습니다.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왕권을 위협하는 서인 세력을 쳐내기 위해, 남인 세력의 상징인 장희빈을 '정치적 파트너'로 선택한 고도의 계산이었습니다.


장희빈은 착각했습니다. 왕이 자신을 사랑해서 왕비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숙종에게 그녀는 서인을 찍어내기 위한 '도끼'였을 뿐입니다. 도끼는 나무를 다 베고 나면, 창고에 처박히거나 버려지는 법입니다.


2. 편관(偏官)의 사랑 - 나를 죽여야 내가 산다


명리학에는 앞선 편에서도 자주 언급되었지만 '편관(偏官)'이라 불리우는 작용이 있습니다. 정관(正官)이 합리적인 법과 질서라면, 편관은 거칠고 강력한 힘, 즉 '살(殺)'입니다. 장희빈에게 숙종은 정관(남편)이 아니라 편관(호랑이)이었습니다. 편관은 나를 빛내주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나를 물어뜯어 죽이는 양날의 검입니다.


장희빈이 왕비가 된 순간, 명리학적 역학 관계가 뒤집힙니다. 흙(Jang)이 너무 많아져서 금(Sukjong)이 묻혀버리는 '토다금매(土多金埋)'의 형국이 된 것입니다. 장희빈의 기세가 등등해지고 남인 세력이 득세하자, '신금'인 숙종은 자신이 묻힐까 두려워졌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숙종은 '경계성 성격장애'에 가까운 변덕을 보입니다. 대상을 이상화(Idealization)했다가, 수틀리면 가치 절하(Devaluation)하여 폐기해 버립니다. 인현왕후를 쫓아낼 때도, 다시 장희빈을 죽일 때도 그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숙종에게 사랑은 '통제의 수단'이었습니다. 내 말을 잘 들을 때는 '사랑'이고, 내 권위를 넘보려 할 때는 '역모'였습니다. 장희빈의 강한 자의식과 투기는 숙종의 '나르시시틱 레이지(Narcissistic Rage, 자애적 분노)'를 건드렸습니다. 감히 흙 따위가 보석을 덮으려 하다니. 왕은 다시 칼을 뽑아 흙을 파헤쳐버리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이 갑술환국(1694)입니다.



3342.png "왕은 장기판의 말을 옮기듯 여자를 바꾸었고, 여자는 살기 위해 주술에 매달렸습니다. 그것은 악독함이 아니라, 벼랑 끝의 절규였습니다."


3. 변심(變心)의 본질 - 권력은 나눌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숙종이 숙빈 최씨(동이)에게 맘을 뺏겨 장희빈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낭만적인 오독입니다.


숙종의 변심은 '구조적 필연'이었습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장희빈은 왕비가 됨으로써 '정치적 라이벌'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들(경종)이 세자가 된 상황에서 장희빈과 남인 세력이 건재하다면, 숙종의 왕권은 위협받습니다. 조선 역사상 왕비가 막강한 당파의 수장이 된 전례는 위험했습니다.


숙종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왕권을 독점하기 위해 그녀를 죽여야 했습니다. 숙빈 최씨는 그저 명분이었을 뿐입니다. 무수리 출신으로 정치적 기반이 전무한 숙빈 최씨야말로 숙종이 안심하고 데리고 놀 수 있는, 위협이 되지 않는 장난감이었으니까요.


사약을 내리는 순간, 숙종은 장희빈을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 게 아닙니다. '왕은 사랑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을 신하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행한 것입니다. 그 잔혹함이야말로 그가 지키고 싶었던 절대 왕권의 증명이었습니다.



3343.png

"사랑했던 여인의 비명소리는 왕의 귀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다음 판을 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 현대인에게 전하는 통찰 - 당신의 사랑은 권력인가


장희빈과 숙종의 이야기는 현대의 남녀 관계에도 서늘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상대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소유하고 통제하려 하는가?"


현대 심리학의 '가스라이팅'이나 '데이트 폭력'의 기저에는, 상대를 내 뜻대로 조종하려는 권력욕이 숨어 있습니다. 숙종처럼 상대를 내 자존감을 채워주는 도구로만 여길 때, 그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착취가 됩니다.


또한 장희빈의 비극은 '분수에 넘치는 탐욕'에 대한 명리학적 경고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그릇(사주)을 넘어서는 과도한 성취(왕비)는 반드시 탈을 부릅니다. 재생관(財生官), 내조를 통해 남편을 빛낼 때는 좋았으나, 자신이 관(官)을 깔고 앉으려 했을 때 그녀는 파멸했습니다.


사랑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에로스(열정), 아가페(헌신), 필리아(우정).

하지만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은 '마니아가 변질된 루두스(Ludus)', 즉 집착이 섞인 유희이자 게임이었습니다. 그 게임의 판돈은 목숨이었고, 승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사랑을 돌아보십시오. 혹시 당신도 숙종처럼 상대를 내 입맛대로 바꾸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장희빈처럼 사랑을 지키기 위해 독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칼날 위에서 추는 춤은 화려하지만, 멈추는 순간 발바닥은 피투성이가 된다는 것을.


"사랑이 권력이 되는 순간, 침실은 전장이 되고
연인은 가장 치명적인 자객이 된다."


3344.png "박물관의 유물로 남은 그들의 사랑. 300년이 지난 지금도 유리관 너머의 그들은 서로를 용서하지 못한 눈빛입니다."



이전 13화칼 쥐고 앉은 밤, 비견(比肩)의 고독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