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 태양을 묻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제국의 황혼을 버틴 단 하나의 온기

by 덕원

바람이 아립니다.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유독 손끝이 시려오는 장(章)이 있습니다. 고려라는 늙은 제국의 마지막 불꽃,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랑 타령이 아닙니다. 제국의 침략과 생존, 그리고 한 인간의 영혼이 타인에게 얼마나 깊이 뿌리박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처절한 생존기이자, 파멸의 대서사입니다.


공민왕, 왕전(王顓). 그는 볼모였습니다. 거대한 원나라의 황궁에서 그는 이방인이었고, 언제 폐위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고려의 왕자였습니다. 노국대장공주, 보탑실리(寶塔實里). 그녀는 정복자의 딸이었습니다. 고려를 감시하기 위해 보내진 황실의 여인.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가장 차가운 정치적 거래 속에서 가장 뜨거운 연대를 피워냈습니다.


오늘은 두 사람의 서사를 통해, 사랑이 어떻게 한 시대를 지탱하고, 그 상실이 어떻게 한 세계를 무너뜨리는지 인문명리학의 시선으로 해부해보려 합니다.


1. 겨울 산과 태양의 만남 - 물상(物象)의 필연성


명리학적으로 공민왕의 기질을 들여다보면, 그는 한겨울에 우뚝 솟은 ‘고산(高山)’과 같습니다. 차갑고, 외롭고, 날카로운 금(金)의 기운을 품은 바위산입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예민하고(편인),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개혁적 성향(상관)을 지녔으나, 그 내면은 시릴 정도로 고독합니다. 볕이 들지 않는 겨울 산, 그것이 왕전의 운명이었습니다.


반면 노국공주는 그 얼어붙은 산을 비추는 ‘태양(丙火)’이자, 만물을 품어내는 따뜻한 ‘대지(己土)’였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남녀의 결합이 아니었습니다. 명리학에서는 이를 ‘육합(六合)’ 이상의 강력한 인력으로 봅니다. 춥고 습한 사주를 가진 공민왕에게 노국공주는 조후(기후)를 해결해 주는 유일한 불씨, 즉 용신(用神)이었습니다.


공민왕의 사주에 흐르는 편인(偏印)의 기질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뇌하게 만듭니다. 현실 감각보다는 이상과 예술을 좇게 하죠. 이때 노국공주의 기운은 ‘재극인(財剋印)’의 작용을 합니다. 즉, 현실적인 판단력(재성)으로 공민왕의 망상과 불안(인성)을 제어하고, 그를 현실 정치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녀는 공민왕이 개혁 군주로서 칼을 휘두를 수 있게 만든 칼자루이자, 칼집이었습니다.


5552.png "그녀는 정복자의 딸이 아닌, 고려의 방패가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태양은 산을 버리지 않습니다."


2. 안전 기지의 상실과 병적 애도


심리학적으로 볼 때, 공민왕에게 노국공주는 완벽한 ‘안전 기지(Secure Base)’였습니다. 볼모 생활로 인한 불안정 애착을 지닌 공민왕은, 자신의 조국인 원나라까지 배신하며 남편의 편에 선 노국공주에게서 전폭적인 수용과 사랑을 경험합니다.


"나는 고려의 왕비다."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까지 피난을 갔을 때도, 흥왕사의 변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때도 그녀는 공민왕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이것은 사랑을 넘어선 ‘동지애’였고, 생사를 공유한 ‘운명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1365년, 난산 끝에 공주가 숨을 거두자 공민왕의 세계는 붕괴합니다. 안전 기지가 사라진 어린아이처럼, 그는 퇴행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직접 그렸다는 노국공주의 초상화. 밤낮으로 그 앞에서 통곡했다는 기록. 이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닙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멜랑콜리아(Melancholia)’, 즉 병적인 애도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을 때, 건강한 자아는 애도의 기간을 거쳐 다시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공민왕은 대상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자신의 자아를 대상과 동일시하며 함께 죽어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3. 꺼진 불과 신돈이라는 허상


명리학적으로 다시 돌아와 봅시다. 태양(화 기운)이 사라진 겨울 산은 어떻게 됩니까? 다시 칠흑 같은 어둠과 추위 속에 잠깁니다. 공민왕의 사주에서 온기를 주던 관성(官)과 재성(財)이 사라지자, 그는 미친듯이 ‘불’을 찾아 헤맵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요승 ‘신돈’입니다. 공민왕은 신돈을 통해 다시금 개혁의 불씨를 지피려 했으나, 그것은 태양의 따뜻한 빛이 아니라 산을 태워버리는 산불이거나, 실체 없는 도깨비불에 불과했습니다.


공주의 죽음 이후 공민왕이 자제위를 설치하고 기이한 성적 탐닉에 빠진 것은, 생명력을 상실한 자가 느끼는 극단적인 공허를 채우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명리학적으로는 식상(본능, 배설)의 기운이 통제(관성)를 잃고 폭주하는 ‘상관견관(傷官見官)’의 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질서가 무너지고, 파격만이 남은 것입니다.


그가 노국공주의 영전을 짓기 위해 국고를 탕진하고 백성을 노역에 시달리게 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철저히 무너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왕으로서의 책임감(관성)은 사랑하는 아내(재성)와 함께 무덤으로 들어갔습니다.


5553.png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광기뿐이었습니다. 겨울 산은 스스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4. 에필로그. 유동하는 시대, 단단한 사랑을 위하여


현대의 사랑은 가볍습니다. '썸'이라는 이름으로 간을 보고, '가성비'를 따지며 관계를 소비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유동하는 사랑'의 시대입니다. 언제든 접속을 끊을 수 있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깊이 빠져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비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엄중합니다. 그들의 사랑이 위대했던 것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속삭였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등을 지켜주며 같은 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끝은 파멸이었으나, 그들은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우주였습니다. 나의 결핍(겨울 산)을 채워주는 존재(태양)를 알아보고, 그 존재를 위해 자신의 모든 배경(원나라 황실)을 등질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바로 격국을 뛰어넘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당신의 사랑은 소비재입니까, 아니면 생존의 토대입니까?

찬 바람이 부는 이 시대, 당신의 겨울 산을 비춰줄 태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역사는 묻고 있습니다. 팔자를 바꿀 만큼 치열하게 사랑하고 있느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