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모순』속 아버지가 딸 진진에게
진진아. 너는 나를 ‘행방불명된 아버지’ 혹은 ‘가끔 돌아와 어머니를 괴롭히는 난봉꾼’으로 기억하겠지. 네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네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죄인이고, 너와 진모에게는 반면교사조차 되지 못할 부끄러운 그림자였다.
하지만 딸아, 변명 같겠지만 딱 한 번만 이 못난 아비의 영혼을 들여다봐 주겠니.
세상 사람들은 나를 두고 “책임감이 없다”고 손가락질한다. 사회학자들은 나 같은 놈들을 일컬어 ‘산업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도태된 남성성’이라 분석하더구나.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가장, 권위를 상실한 채 폭력으로 위엄을 가장하는 지질한 수컷.
맞다. 나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그 ‘성실한 톱니바퀴’가 되기엔, 태생적으로 규격이 맞지 않는 불량품이었다.
명리학(命理學)으로 나를 설명하자면, 나는 ‘무근(無根)’의 사주다.
땅에 뿌리를 박지 못한 나무, 혹은 정처 없이 떠도는 구름. 내 팔자에는 ‘역마(驛馬)’가 병(病)처럼 깊게 박혀 있다. 네 어머니가 그토록 억척스럽게 시장 바닥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 ‘거목(巨木)’이라면, 나는 그 곁을 맴돌다 흩어지는 ‘바람(風)’이었다.
바람이 나무 곁에 오래 머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나무는 흔들리고, 잎은 찢어진다. 내가 집에 붙어있을 때마다 네 어머니와 밥상을 엎으며 싸웠던 건, 단순히 성격이 안 맞아서가 아니다.
정착하려는 자(어머니)와 떠나려는 자(나)의 에너지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파열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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